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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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 연말이 다가오면서 금융사 인사에 대한 다양한 전망이 오가고 있다. 정부가 금융사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나타난 만큼, 금융사 임원의 적격성을 검증할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도 확산하고 있다. 

이영경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해외의 금융회사 임원 적격성 심사제도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주주의 이익과 사회적 이익에 가장 부합할 수 있는 적격자를 금융회사의 대표이사 등 임원으로 선임하도록 하기 위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금융권은 연말 인사 시즌 마다 ‘셀프 연임’, ‘관치’, ‘낙하산’, ‘금융사고’ 등의 논란으로 몸살을 앓아왔다. 최근에는 주요 금융지주사 수장이 교체되는 흐름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회장 후보를 추천하는 위원회 구성에 현직 회장이 직접 영향력을 행사해 연임에 성공하는 사례를 찾아볼 수 있었다. 

관 출신 인사가 경영진으로 선임되면서 전문성이나 업무 연관성이 떨어진다거나, ‘낙하산’ 인사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올해 초에도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 이석준 농협금융지주 회장 등 행정고시 출신 CEO가 취임하면서 다시 ‘관치’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금융사고에 연루되거나 징계를 받고도 자리를 보전하는 경우도 흔하다. 실제 DLF·라임 등 사모펀드 사태로 인해 상당한 피해가 발생했지만, 다수의 판매사 대표는 임기를 지키거나 연임에 성공했다. 

이 연구원은 “은행이 부실화된 경우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정상화시키는 등 단순한 사적 기업과 달리 정부의 보조를 받는데, 금융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이 일반 사기업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기 때문”이라며 “따라서 단순히 사적 기업으로서 주주의 이익 뿐 아니라 금융시장의 신뢰성 등 사회적 이익을 고려할 때 금융회사 임원의 적격성에 관한 문제는 보다 엄격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해외 주요국은 주주의 이익과 사회적 이익을 모두 고려해 최적의 인재를 금융사 임원으로 선임할 수 있도록 엄격한 적격성 심사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영국에서는 금융감독당국이 직접 고위 경영자에 대해 적격성을 심사하고 핵심기능을 수행하는 직원에 대해서도 적격성 구비를 요구하는 제도가 정착돼있다. 

영국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고위 경영자 및 인증제도(SMCR)를 도입해 금융사의 유형에 따라 임원이 갖춰야 할 적격성 요건을 규정하고, 고위 경영자에 대해서는 감독당국의 심사와 허가를 거치도록 했다.

감독당국은 ▲정직성 ▲진실성 및 평판 ▲능력과 역량 ▲재무건전성 등의 기준에 따라 임원의 적격성 여부를 검증하며, 후보의 형사기록뿐만 아니라 이전 직장에서의 업무 성격 및 징계 기록 등도 확인한다.

만약 금융사가 감독당국의 적격성 심사 및 허가를 받지 않고 임원을 선임할 경우 견책, 벌금 부과, 인가 정지·취소 등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또한 감독당국의 허가를 받아 선임된 임원에게 이후 부적격 사유가 발생하면, 감독당국은 기존 허가를 철회하고 규제대상 업무 수행을 금지할 수 있다 .

싱가포르와 홍콩, 유럽연합(EU) 등도 금융사의 임원 선임 시 감독당국이 적격성 여부를 심사하고 허가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대체로 영국과 비슷한 방식의 심사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홍콩도 ▲재무상태와 지급능력 ▲수행할 기능과 관련한 교육 및 자격·경력 ▲규제행위를 정직·공정하게 수행할 능력 ▲평판, 품성, 신뢰성 및 재무건전성 등의 기준에 따라 임원 후보자의 적격성 여부를 판단한다. 

EU는 유럽중앙은행(ECB)가 금융사의 신뢰성과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직접 금융사 경영진 구성원의 적합성을 평가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ECB는 금융사가 속한 국가의 감독당국과 함께 ▲경험 ▲평판 ▲이해상충 및 사고의 독립성 ▲시간 투입 ▲경영진의 집합적 적합성 등의 요소를 고려해 임원의 적격성 여부를 판별한다. 

또한 중대 금융사는 매년 임원에 대한 적격성 평가를 최소 1회 이상 반복해서 실시해야 하며, 임원의 적격성 유지를 위한 적절한 교육 정책도 마련해야 한다. 만약 금융사 경영진이 적격성 요건을 구비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되면 감독당국은 해당 경영진에 대한 교육 및 업무분장 변경, 해임 등을 요구할 수 있으며 인가 철회 등의 행정적 제재도 부과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금융회사지배구조법에서 은행, 증권회사, 보험회사, 금융지주회사 등 금융회사 임원의 자격요건을 정하고 있지만, 소극적 요건으로서 결격사유를 정할 뿐 사외이사 외에는 적격성에 관한 적극적 요건을 부과하고 있지 않다. 임원의 적격성는 감독당국의 개입 없이 금융사가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 연구원은 “현행법상 금융회사 임원의 적격성에 관한 요건을 적극적으로 부과하고 있지 않은 것은 금융회사가 사회경제적으로 가지는 중요성에 비추어 문제가 있으므로, 임원의 적격성 요건을 법규에서 명시적으로 요구할 필요가 있다”라며 해외 사례를 참고해 구체적인 적격성 기준을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 연구원은 “우리나라는 관치금융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어왔으므로 감독당국이 직접 개입하는 방식은 적절하지 않고 금융회사가 자체적으로 공정하게 심사하는 방안이 바람직할 것”이라며 “금융회사 임원의 적격성 확보를 위해 금융회사가 임원의 자격요건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경우 부과되는 벌칙 수준을 상향하고 감독당국의 적극적인 제재권한 행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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