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서울 도심 아파트단지의 모습. 사진=뉴시스
사진은 서울 도심 아파트단지의 모습.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정부가 내년도 부동산 공시가격의 시세반영률을 올해와 같은 수준에서 동결한다. 또 오는 2035년까지 시세의 90%까지 공시지가를 올리는 문재인 정부의 로드맵에 대해 '원점 재검토' 입장을 발표하면서 전 정부가 세운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사실상 폐기할 전망이다. 

국토교통부는 21일 중앙부동산가격공시위원회에서 2024년 공시가격에 적용할 현실화율을 올해와 동일하게 2020년 수준으로 동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부동산 공시가격은 보유세와 건강보험료, 기초연금 등 67가지 행정제도의 기초자료로 사용되는 중요 지표다. 최근 고금리 등으로 부동산 시장의 침체 신호와 함께 물가 상승 등으로 국민들의 부담이 더해진 상황이어서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기존 안대로 추진하면 국민의 불만이 더 커질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부동산 민심을 의식한 결과로도 해석된다.

이에 내년 공시가 현실화율도 문재인 정부의 '현실화 계획' 이전인 2020년 수준으로 맞춰져, 공동주택 평균 69%, 단독주택 평균 53.6%, 토지 평균 65.5%로 유지된다. 

올해와 동일한 현실화율이 적용됨에 따라 공시가격 변동이 최소화될 전망이며, 2024년의 최종 공시가격은 올해 말 부동산 시세를 반영해 내년 초 결정될 예정(표준주택·표준지 1월, 공동주택 4월)이다.

국토부는 윤석열 대통령 공약과 국정과제에서 밝힌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재수립 방안'도 의결했다고 밝혔다. 

2020년 세운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재검토하기로 한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실화 계획을 통한 공시가격 산정 방식은 공정한 공시가격에 대한 국민 일반의 기대와 실제 공시가격이 괴리되는 결과를 낳았다"면서 "기존 현실화 계획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부분적 개선 만으로는 국민의 보편적 인식과의 간극 해소에 한계가 있음을 고려해 기존 계획을 원점 재검토 하겠다"고 재검토 배경을 설명했다. 

또 "고가 주택(9억 원 이상)과 토지에 대해서는 빠른 시세 반영을, 저가 주택(9억 원 미만)에 대해서는 균형성 제고를 우선적 목표로 설정해 공정한 공시가격 산정이 이뤄지지 못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9억원 미만 주택의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69.4%, 9억∼15억은 75.1%, 15억원 이상은 81.2%로 정해 15억원 이상 주택과 9억원 미만 주택 간 요율 차이가 11.8%포인트(p)에 달했다. 2020년 7.2%포인트였던 차이가 더 벌어진 것이다. 

이는 결국 국민의 세 부담 증가로 이어져 국민의 재산세·종부세 부담이 3년 새 4조7000억 원을 더 늘었다.

정부는 내년 1월부터 기존 현실화 계획의 필요성·타당성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연구용역을 실시한 뒤 이를 토대로 내년 하반기 중에 근본적 개편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현실화 계획 및 공시가격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도 실시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현실화율 목표 수준을 낮추거나 속도를 조절하는 등의 조치가 검토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임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은 2035년까지 토지·단독·공동주택 등의 현실화율을 90%까지 높이는 것이었다. 

다만 시세에 맞게 부동산 보유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고려도 같이 진행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나아가 개편안 발표 시점이 내년 4월 총선 이후라는 점에서 총선 결과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에 대한 재검토는 필요한 사안으로, 현 상황에서는 임시조치이지만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임채우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21일 <이코리아>와 한 통화에서 "실수요로만 시장 활성화엔 한계가 있다. 투자 수요도 있어야 된다. 공시가격이 높으면 높을수록 재산세 부담이 올라가서 거래자체가 많이 이뤄지지 않는 측면이 있다. 다주택자들의 경우 종부세 부담이 커진다. 과도한 세금 규제는 시장경제 전반에 나쁜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제가 전반적으로 안 좋은데 과도한 세금은 소비 활성화에 도움이 안 되며, 부동산시장 거래활성화 측면에서 적정 수준의 속도감 조절은 필요하다"면서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이번 안은 적절한 조치가 아닌가 싶다"라고 평가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2020년 수준으로 공시가격을 인하해 보유세 부담이 올해 한결 낮아진 경향이 있는데 공정시장가액이나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상 집값이 떨어져도 시간에 따라 보유세 부담이 높아질 이슈는 있는 것 같다"면서 "지금의 경기 또는 부동산시장의 냉각을 고려했을 때 공시가격의 시가반영비율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고 보고 지금 그러한 논의가 합리적인 것 같기는 하다"고 평가했다. 

이번 정부의 현실화율 동결은 아파트를 선호하는 시장 수요를 반영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종전에 임시로 도입했던 방안을 연장 적용하는 것이지만, 일단 현재 시세보다는 낮게 적용될 가능성이 높아 긍정적이다. 고가부동산이 아닌 주택소유자들에게도 마찬가지"라면서 "‘지나치게 강화된 부동산규제 완화를 통한 시장 정상화’라는 국정과제에 비추어보면, 전전 정부 수준으로 되돌리는 것이 1차적인 검토목표가 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연립·다세대는 공시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환금성, 전세사기 등으로) 시장수요가 변동했다는 것이 관건으로, 전국의 모든 주택가격이 오르던 시기가 지나고 주택상품의 성격에 따른 가치가 다시 종전처럼 자연스레 차별된 결과"라면서 "주요 지역을 중심으로 분양가와 청약경쟁률이 상승하는 것과 정비사업에 고밀개발을 적용하는 것 등도 결국은 아파트를 선호하는 주택수요에 부응하려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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