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국민연금공단
사진=국민연금공단

[이코리아] 글로벌 연기금이 앞다퉈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투자 확대에 나서고 있지만, 국민연금의 탄소중립 행보는 굼뜨다는 지적이 나온다. 석탄투제 배제 기준 도입을 미루고 있는 데다, 책임투자 규모를 부풀렸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국민연금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미국 최대 연기금인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 캘퍼스)는 지난 13일(현지시간) 2030년까지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해 약 10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마시 프로스트 캘퍼스 최고경영자(CEO)는 “지속가능한 투자를 위한 우리의 2030 전략은 장기적인 투자 수익을 높이는 동시에 기후변화와의 싸움에서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했다.

캘퍼스는 현재 약 470억 달러 규모의 저탄소 자산을 보유 중인데, 계획에 따르면 이는 7년 내 2배 이상 확대될 예정이다. 댄 비엔베뉴 캘퍼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캘퍼스는 지속가능한 투자를 촉진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돕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기업·프로젝트·기술 등을 지원하기 위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공하고 있다”라며 “우리 계획은 광범위하며, 화석연료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을 아우르는 기후변화 대응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주주행동주의의 선구자로 알려진 캘퍼스는 친환경 투자 분야에서도 글로벌 연기금 중 가장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캘퍼스는 미국 내에서도 ESG를 최초로 도입한 연기금으로 ‘포커스 리스트’(중점 감시 대상 기업 목록)를 작성해 온실가스 감축, 탈석탄 등 기후변화 대응에 소극적인 기업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에 나서고 있다. 

또한 캘퍼스는 석탄 관련 매출 비중이 50% 이상인 기업에 대해 투자를 제한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캘퍼스는 기후변화로 인한 리스크를 반영해 자산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고 있으며, 기후변화에 악영향을 미치는 기업에 대한 투자를 축소하는 반면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이끄는 기업에 대한 투자는 확대하고 있다. 

◇  ‘ESG워싱’ 비판받는 국민연금, 석탄 투자배제 원칙 마련도 지연

기후변화 대응 필요성을 인식하고 투자 결정에 반영하는 글로벌 연기금은 캘퍼스뿐만이 아니다. 네덜란드 공적연금와 노르웨이 국부펀드 또한 석탄 관련 매출 비중이 30% 이상인 기업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고 있다. 특히,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지난 9월 15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투자 대상 기업에게 강화된 기후 전환 계획을 세우고 진행 상황을 공개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글로벌 연기금이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 나서고 있는 만큼, 국민연금의 움직임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앞서 국민연금은 지난 2021년 5월 국내외 신규 석탄산업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겠다며 ‘탈석탄 선언’에 나선 바 있다. 당시 국민연금은 석탄배제 투자기준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한편, 이를 토대로 2022년 상반기 중 단계적 추진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국민연금의 책임투자(기업의 재무적 특성뿐만 아니라 ESG 요소를 고려한 투자방식) 규모도 상당히 늘어났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기금 공시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책임투자를 고려하는 자산군의 투자” 규모는 지난 2021년 말 130조2000억원에서 2022년 말 384조1000억원으로 3배가량 늘어났다. 

문제는 국민연금이 책임투자와 관련해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 의혹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0일 열린 국민연금공단 국정감사에서 “2022년 말 책임투자 자산이라고 공시한 국내외 위탁운용 주식과 채권 자산의 98%는 책임투자 자산이 아니거나 그 근거가 매우 박약하다”라며 “이는 금융기관이 주로 저지르는 그린워싱, ESG 워싱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실제 지난해 말 국민연금의 책임투자 자산 중 직접운용은 99조7000억원, 위탁운용은 284조4000억원에 달한다. 국민연금은 외부에 위탁한 모든 자산을 책임투자 자산으로 집계해 공시했다. 한 의원은 “위탁운용 자산 284조4000억원 중 6조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책임 투자 자산이 아니거나 근거가 매우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탈석탄 선언과 함께 약속한 석탄산업 투자제한 정책 도입 또한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이미 딜로이트안진이 지난해 4월 최종 연구용역 결과를 제출했지만, 기금위 논의는 좀처럼 진전되지 못하는 모양새다. 딜로이트안진은 석탄 관련 매출 비중이 30% 이상인 기업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는 1·2안과 50%로 기준을 완화한 3안 등 세 가지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 국민연금, 환경오염·인권침해·대량살상무기 등에 6조원 투자

투자배제 기준 마련이 지연되는 동안 국민연금의 투자활동은 글로벌 연기금의 추세와 반대되는 방향을 향하고 있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연금공단에서 받은 ‘해외 연기금 투자배제 기업의 국내주식 보유액’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기준 석탄 관련 기업 1곳에 9991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밖에도 국민연금은 환경오염 기업 3곳에 2조4626억원을 투자했으며, 대량살상무기 기업 5곳에 3597억원, 담배 관련 기업 1곳에 8939억원, 인권침해 기업 1곳에 2973억원, 환경오염 및 인권침해 기업으로 분류된 1곳에 400억원의 투자금을 넣은 것으로 확인됐다. 투자배제 대상은 아니지만 심각한 부패 등으로 감시기업으로 분류된 기업 3곳에 대한 투자금도 1조1172억원에 달했다. 

이러한 기업들에 대한 국민연금의 투자 규모는 총  6조1698억원으로, 전년말 대비 500억원 늘어났다. 정 의원에 따르면 노르웨이 국부펀드(NBIM), 네덜란드 사회보장기금(PGGM), 스웨덴 국가연금기금(AP4), 캐나다 연금(CPPIB) 등은 모두 기후변화, 인권침해, 대량살상무기 등과 관련해 투자배제 기준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국민연금의 투자활동으로 인해 배출된 온실가스도 적지 않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과 AI 기반 ESG 평가기관인 후즈굿(Who’s Good)이 국민연금 자산 포트폴리오 내 국내 보통주 1168개 중 온실가스 배출량을 공시한 기업 312개에 대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산정한 결과, 2021년 말 기준 국민연금의 금융배출량은 총 2710만3018tCO2e에 달한다.

국민연금의 투자 대상 중 일부만을 대상으로 집계한 배출량만으로도 같은 해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6억7960만톤)의 3.98%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한편, 한 의원은 “건전한 ESG 생태계를 구축하고 감시해야 할 주체인 국민연금의 ESG 워싱은 자본시장 전반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우리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저하시킨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질타했다. ‘탈석탄 선언’ 후에도 소극적인 행보로 비판받아온 국민연금이 기후변화 대응을 고려한 투자활동에 적극 나설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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