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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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 기후변화로 인해 인류의 먹거리가 위협받는다는 징후가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 11일 체코, 영국, 스위스 공동 연구팀은 지구 온난화가 맥주의 품질과 맛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여름이 더 덥고 길어지며 맥주의 핵심적인 원료인 홉의 생산량이 감소하고 맛도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에는 체코 과학 아카데미, 캠브리지 대학교, 체코 생명과학대, 체코 수문기상학 연구소, 마사리크대, 영국 로담스테드 연구소, 스위스 연방 연구소가 참가했다.

연구진은 독일, 체코, 슬로베니아 등 주요 홉 생산국가를 대상으로 1971년부터 2018년까지 기후변화와 홉 생산량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1994년 이후 홉 생산량은 연간 헥타르(㏊)당 0.2t 감소했고 홉의 알파산 함량은 약 0.6% 감소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기온이 상승하고 강수량이 줄어듬에 따라 나타난 결과이다. 

또 해당 기후모델을 활용해 미래의 홉 생산량을 예측한 결과 2050년까지 홉의 생산량이 4~18% 감소하고 맥주 특유의 향을 내는 ‘알파산’ 성분의 함량 역시 20~31%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 결과가 나왔다. 

연구진은 이에 따라 맥주 산업 안정화를 위한 즉각적인 적응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홉을 재배하는 농업인들은 홉 밭을 더 높은 고도에 있는 지하수면이 있는 계곡 위치로 재배치하고, 관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작물의 방향과 간격을 변경하고, 저항력이 더 높은 품종을 육종해야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는 것은 맥주뿐만이 아니다. 그린피스는 지난해 2월 ‘기후위기 식량 보고서’를 통해 지구의 평균온도 상승을 억제하지 못하면 기후위기로 2100년까지 커피 등 8개의 농작물이 사라지게 될것이라고 예측했다. 커피의 경우 미주 개발은행이 2050년까지 전 세계에 커피 재배에 적합한 지역이 최대 50%까지 줄어들 수 있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 6월에 미국에서 발생한 스리라차 소스의 품귀현상도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했다. 아메리카 대륙을 덮친 기후변화와 가뭄으로 인해 붉은 할라페뇨 고추의 수확량이 줄어들면서 이를 원료로 하는 스리라차 소스의 가격 역시 치솟은 것이다. 미국에서 스리라차 소스를 생산하는 식품업체 후이퐁 푸드는 이미 3년째 할라페뇨 고추의 흉년으로 인해 생산 차질을 겪고 있는데 지난해에도 일시적으로 스리라차 소스 생산을 중단하기도 했다.

기후변화의 여파는 기호식품 뿐만 아니라 식량작물에도 미치며 전 세계적으로 식량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네이처 클라이밋 체인지에 발표된 ‘온난화로 인한 수확 빈도와 수확량 감소가 세계 농업 생산을 감소시킨다’ 논문에 따르면 지구에서 2050년까지 전체 식량 공급이 4% 이상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온난화로 한대 지역에서 재배지가 늘어난다고 해도 더운 지역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만회하기 힘들다는 연구 결과다.

또 지난 2021년 미국 항공우주국은 현재의 대기 상태가 유지되면 10년 안에 옥수수 생산량이 24% 감소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이에 대한 대응은 어떨까. 식량자급률이 낮은 국가 중 하나인 일본은 지난 4월부터 지정학적 위험이나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 위기에 정부 차원에서 대응하도록 하는 식량안보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식량안보법은 식량위기 발생 시 곡물생산을 늘이고 민간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식량의 판매를 명령하는 권한을 포함하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에는 국내에서도 이와 유사한 식량안보 특별법이 국회에서 발의되었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우리나라의 경우 밀, 콩, 옥수수 등 쌀을 제외한 주요 곡물들이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실질적인 식량자급률이 44%, 곡물 자급률은 21% 수준에 불과해 식량안보가 취약한 국가 중의 하나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공급하기 위한 정책에 대한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식량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국민 건강에 기여하기 위해 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정부 부처가 기후변화의 영향을 식량 정책에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 8월 감사원은 정부가 미래의 기후변화에 따른 위험 예측 없이 물·식량 관련 중장기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는 감사 결과를 내놓았다.

감사 결과를 보면 환경부는 지난 2021년 1차 국가물관리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물 부족 심화 등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해 관련 정책을 만든 것으로 나타났으며, 농업 관련 정책에서도 물 부족량이 과소평가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농식품부가 농업용수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미래 가뭄 위험에 대한 고려 없이 사업지역을 선정했다고 판단했다.

감사원은 기후변화가 국내외 식량 생산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해 식량 안보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식품부는 과거 추세에 기반한 예측에 의존해 적정 재배면적을 설정하고, 기후변화에 따른 국제적인 곡물 수급 위기상황도 예측하지 않고 식량안보 정책을 추진해왔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감사원은 환경부 등 관계 부처에 미래 기후변화 요인을 고려해 사업대상을 조정하거나 정책목표를 재검토하는 등 개선방안을 마련하도록 통보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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