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보유액 추이.(단위: 억 달러) 자료=한국은행
외환보유액 추이.(단위: 억 달러) 자료=한국은행

[이코리아] 미국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계속된 고환율에 물가상승까지 겹치면서 기준금리 인상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고 있지만, 가계부채와 경기침체 우려로 인해 한국은행이 추가 인상을 단행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141.2억 달러로 8월말 대비 41.8억 달러 감소했다. 이는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를 돌파했던 지난해 10월(4140.1억 달러) 이후 1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외환보유액은 올해 들어 등락을 거듭하다 지난 8월부터 2개월째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외환보유액이 줄어든 배경에는 ‘강달러’ 현상이 놓여있다. 실제 7월 중순만 해도 1260원대에서 움직였던 원·달러 환율은 8월 들어 급격한 상승세를 이어가다 지난 4일에는 1363.5원으로 11개월 만에 최고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미국 경기회복으로 고금리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달러화에 대한 수요는 더욱 커지고 있다. 김찬희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연휴기간 동안 미국 지표가 양호하게 발표되면서 미국의 상대적인 경기 우위에 근거한 고금리 장기화 경계가 달러화 강세를 자극했다”며 “일각에서 기대했던 한국 WGBI(세계채권지수) 조기 편입이 불발되면서 선진입했던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 압력도 공존했다”고 최근 강달러 현상을 설명했다. 

고환율이 계속되면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에 대한 전망도 확산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5차례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동결하는 동안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추가 인상에 나서며 한미 금리차는 역대 최대 수준인 2.0%포인트까지 벌어진 상태다. 한미 금리차가 벌어지면 외국인 투자 자금이 이탈해 원화 가치가 추가 하락할 위험이 커진다. 

진정되지 않는 물가도 금리 인상 필요성이 제기되는 근거 중 하나다. 통계청에 따르면, 9월 소비자물가는 고유가 등의 영향으로 전년 동월 대비 3.7% 올라 2개월 연속 3%대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4월(3.7%) 이후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한은의 목표 물가상승률(2%)과는 격차가 크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非)OPEC 주요 산유국 협의체 OPEC+의 감산 정책에 따른 국제유가가 크게 오른 데다 최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는 분위기다.

문제는 한은이 쉽게 금리인상을 결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계부채에 따른 리스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은에 따르면, 국내은행의 가계대출는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지난 8월 기준 1075조원을 돌파했다. 8월중 증가한 대출 규모는 6.9조원으로 2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기업대출도 마찬가지다. 8월 국내은행 기업대출은 1,226.9조원으로 7월보다 8.2조원 증가했다. 8월 기업대출 증가폭은 관련 통계 작성 이후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이처럼 대출이 크게 확대된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할 경우 차주의 이자 부담이 가중되면서 경기회복 속도가 느려질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한은이 환율과 한미 금리차를 고려해 기준금리를 조정하는 것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여온 점도 추가 인상을 전망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앞서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2월 기자간담회에서 “변동환율제도 하에서 (한미 금리차의) 적정 수준은 없다”며 “금리차가 기계적으로 몇 %포인트 이상이면 위험하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이 총재는 지난 5월 기자간담회에서도 “환율을 결정하는 것은 금리차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며 한미 금리차가 환율을 형성하는 결정적 요인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오는 19일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열고 기준금리 동결·인상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다. 고환율·고물가 압박과 가계대출·경기침체 리스크 사이에서 한은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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