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우아한 제로 웨이스트 여행' 펴낸 신혜정 작가.
'이토록 우아한 제로 웨이스트 여행' 펴낸 신혜정 작가.

[이코리아] 지구 곳곳이 일회용 플라스틱 오염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그린피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1인당 연간 일회용 플라스틱을 1312개를 쓰고 버린다고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국인의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량은 역대 최대로, 앞으로도 계속 늘 것이라는 암울한 통계도 있다. 사실상 현대인에게 쉽게 쓰고 버리는 일회용 플라스틱 없는 삶이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 그런데 플라스틱 없이 1년이 넘는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 있다. 

기후 대응 비정부단체(NGO)에서 일하던 신혜정 환경활동가는 매너리즘을 극복하기 위해 유라시아 대륙을 자전거로 횡단했다. 저탄소·일회용 플라스틱 제로에 도전하면서 말이다. 

제로 웨이스트 여행을 위해 그녀는 2018년 5월에 출국해 2020년 3월에 귀국했다. 튀르키예의 이스탄불까지는 주로 자전거를 탔고 버스와 기차도 심심찮게 이용했다. 페달을 밟은 거리는 1만2555킬로미터(km). 1년 반 만에 도착한 이스탄불에서 자전거를 먼저 한국으로 보내고는 흑해에서 배를 타고 우크라이나를 지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탔다. 

지난 9월 초 출간된 에세이 '이토록 우아한 제로 웨이스트 여행'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신혜정 작가는 "1년 반 동안 튀르키예까지 페달질하며, 이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에서 사람들도 문화도 환경도 모두 서로 연결돼 있음을 봤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일회용 플라스틱 없는 여행을 목표로 했다는 신 작가. 더위와 자전거로 열이 오른 몸으로 차가운 콜라 페트병을 외면해야 할 때는 눈을 질끈 감을 만큼 힘들었지만, 그래도 페트병 하나만큼의 보람이 있었다. 그 보람이 쌓이고 쌓여 나중에는 습관이 되었다고. 

신간 '이토록 우아한 제로 웨이스트 여행'의 신혜정 작가를 <이코리아>가 6일 서울 동작구 사당역 근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다음은 신혜정 작가와  일문일답.

 

◇기후대응 NGO에서 환경활동가로 오랫동안 활동했는데, 처음 환경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무엇이었나?

대학생 때 해남 땅 끝에서 통일전망대까지 국토종단을 하면서 무슨 일을 하던 생명과 환경을 주제로 살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의미 있는 가치를 주제로 삶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에 환경활동가로 10여년 일했다. 

기후 대응 NGO '푸른아시아'에서 2년간 몽골에서 과일나무를 심으며 사막화된 마을 공동체를 돕는 일도 했다. 현장에서 힘이 든 적도 많았지만 내가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보면 버틸 힘이 생겼다. 그 일을 하는 동안은 내내 '행복' 비타민을 먹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 실크로드 특히 파미르 고원을 자전거로 횡단하고, 그 긴 여행 내내 일회용 플라스틱을 쓰지 않으려는 노력이 무척 인상 깊었다. 

원래 책 제목은 '착하게 살겠습니다. 살아 돌아간다면'이었다(웃음). 실크로드도 여러 갈래다. 정확히 실크로드를 따라간 것은 아니지만, 실크로드 서쪽 중심지 역할을 했던 이스탄불을 종점으로 정하고, 내가 가고 싶었던 곳을 세 곳 찍은 뒤 대략의 루트를 짰다. 일회용 플라스틱을 쓰지 않겠다는 결심은 여행 시작부터 했다. 

환경 단체 일을 했지만 일회용 플라스틱은 개인적인 관심사였다. 사실 도시에서 일하면서 일회용 플라스틱 일주일 안 쓰기를 도전해 본 적이 있는데, 매번 실패했다. 텀블러를 잘 챙기다가도 꼭 커피를 사러 나갈 때는 까먹어 일회용 테이크아웃 컵에 담아오길 일쑤였다. 일상에서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할 집중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이제는 일이 아니라 일상에 집중할 수 있는 여행자니까 다시 도전해 봐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파키스탄 카라코람 하이웨이에서 신혜정 작가. 사진=조수현
파키스탄 카라코람 하이웨이에서 신혜정 작가. 사진=조수현
태국의 한 마을에 위치한 쓰레기 재활용장에서 일한 신혜정 작가. 옆 사람은 비닐봉지를 분류하는 방법을 알려준 스승이다. 사진=조수현
태국의 한 마을에 위치한 쓰레기 재활용장에서 일한 신혜정 작가. 옆 사람은 비닐봉지를 분류하는 방법을 알려준 스승이다. 사진=조수현

◇플라스틱 재활용은 어떻게 보면 '언어'같다는 책 속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천차만별의 분류 체계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할 핵심 플라스틱 재활용 규칙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쓰레기 분리수거에 관심이 많았는데 태국 방콕에서 재활용 봉사를 하면서 짧은 경험이나마 플라스틱 재활용의 까다로움을 절감했다. 종이나 캔이나 병 분류는 가는 곳마다 고만고만했는데, 플라스틱 분류 방식은 다 달랐다. 

전 세계를 아우르는 플라스틱 재활용 규칙이라는 게 만약 있다면 자본주의에 의해 작동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중국에서 병과 캔을 줍는 사람들을 하루 동행한 적이 있다. 그 분들이 에너지드링크 캔은 줍지 않는데 냉차 캔은 줍더라. 철캔보다 알루미늄 캔이 더 비싸고, 재활용상에서 잘 받아주니까 그런 거다. 

또 지역이 어딘지, 가까운 곳에 재활용공장이나 재활용품수집장이 있는지에 따라 인건비와 운송비가 달라지고 재활용품의 가격도, 따라서 재활용 여부도 달라질 것이다.  

사실 재활용이 답은 아니다. 최선은 애초에 적게 쓰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쓰게 된다면 그 때 재활용을 하는 것이다. 

플라스틱은 훌륭한 재료다. 가볍고 저렴하고 편리하다. 그걸 지나치게 많이 쓰는 것이 문제지. 1950년대 스웨덴에서 일회용 비닐봉지가 처음 발명됐는데, 마구 벌목되는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들었다. 비닐봉지가 탄생한 배경은 아름다웠지만 재활용도 까다롭고 잘 썩지도 않는 것이 남용이 된 것이다. 필요 이상으로 많아지면 쓰레기가 된다. 

그리고 쓰레기 처리가 생각보다 더럽지 않다. 사실 따지고 보면 버리니 쓰레기지 안 버리면 물건이고 음식이다. 

◇제로 웨이스트 여행 책을 쓴 작가인 만큼 일상 속 제로 웨이스트는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주변 시선에 배달도 신경 쓰일 것 같은데? 

일단 배달 앱은 내 스마트 폰에 없다. 책이 나오기 전부터 내가 뭐라고 하지 않는데도 주위에선 '비닐봉지를 쓰면 네 생각이 난다' '빨대 쓰는 거 괜찮냐'고 물어보기도 한다(웃음). 제 어머니는 예전 같으면 일회용 비닐장갑을 한 번 쓰고 버렸다면 지금은 쓰던 비닐장갑을 냉동실에 보관하고 다섯 번은 더 쓰고 버리는 등 조금씩 행동에 변화를 주고 계신다. 

환경에 관한 실천은 계단을 오르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오를 수 있는 계단을 하나라도 오르면 된다고 본다. 오를 수 있는 계단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채식을 하고, 어떤 이들은 제로 웨이스트를 하고 말이다. 마음이 가는 만큼 실천하면 된다고 본다. 

◇대학원 박사 과정 중이지만 작은형제회와 국제기후종교시민네트워크에서 기후 대응 일을 돕고 있다고 들었다. 정확히 그 곳 단체들에서 어떤 업무를 보고 있나? 

작은형제회 정의평화창조질서보전위원회에서 일하는데, 주로 한 달에 한 번 기후변화와 관련된 영화를 상영하는 '기후변화 씨네톡' 행사를 돕는다. 이 행사팀은 다른 시민단체들과 더불어 '바로, 지금(가제)'이라는 한국 기후위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기도 하다. 국제기후종교시민네트워크에서는 '기후위기비상행동'이라는 기후대응을 위한 단체/개인들 네트워크의 간사 업무를 지원하고 있다. 

◇기후대응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된 순간이라면? 또 가장 벽에 부딪힐 때는 언제인가? 

작년에 크게 벽에 부딪쳤던 적이 있다. 여행을 했던 나라들마다 기후 재난이나 쿠데타나,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거기에 기후변화까지 더해진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하니 막막해졌다. 나는 상황이 어떻든 내 길을 가면 된다, 내가 생각하는대로 살면 된다,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그 길의 조명이 다 꺼져가는 느낌이었다. 우울해졌었다.

그때 본 책이 사회학자 김홍중의 책이었는데, 그분은 이 시대가 '파상의 시대'라고 말했다. 예전에 잘살아보자고, 발전해보자고 달려온 꿈이 이제는 깨지면서, 꿈을 꿀 때는 몰랐던 부작용들을 이제는 볼 수 있는 때라고 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파상, 꿈이 깨지는 순간을 각자의 자리에서 목격하는 것이라고 했다. 꿈이 깨지고 난 자리에서 새로운 꿈의 씨앗이 움틀 수도 있고, 움트지 않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 여부는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견뎌내면서 꿈이 깨지는 것을 목격하면서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보니 지금 역사의 흐름에 절망만이 남은게 아니라, 꿈을 꾸었다 깨어지고, 또 꾸었다 깨어지고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중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조금 마음이 가벼워졌다.    

인도 마니푸르에서 만난 가족이 있는데, 얼마 전에 마니푸르의 친구가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내왔다. 비가 안 와 강이 말랐다고 했는데, 산에 사는 소수민족이 돈을 벌기 위해 양귀비를 심느라 나무를 모조리 벤 영향으로 기후가 변했다고 이야기하더라. 

기후변화는 사실 선진국들이 탄소를 너무 많이 뿜어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메시지를 보냈지만 그 친구가 이해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해한다고 해도 거기서 뭔가 하기는 어렵다. 탄소를 거긴 더 줄일 것도 없다. 마니푸르 지역은 기본적으로 인도 정부의 관리권에서 소외된 곳이라 정부에 기후 대응을 요구할 수도 없다.

마니푸르에 비하면 한국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아 보였다. 그렇게 고개를 들어보니 여행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생각났고,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크든 작든 자신이 선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던 사람들. 기후대응과 관련해 아주 작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다짐을 했다. 결국 이 세상 모든 것은 아주 작더라도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말씀해 달라. 

환경은 나무, 풀, 물만이 아니라 물건, 도로, 건물, 동물, 식물, 인간, 그러니까 나까지 포함된 것이라고 믿는다. 물건을 아낀다든지, 음식을 남기지 않고 다 먹는다든지 뿐만 아니라 주변에 어려운 이를 챙기고, 국내외 어려운 사정에 있는 사람들에 할 수 있는 만큼 손을 내미는 것도 결국은 나와 연결된 지구를, 그래서 나를 보호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아끼듯이 모든 것에 감사하면서 존중하는 것이 나에게는 제로웨이스트의 출발이다.     

예전에는 '아껴야 잘 산다'는 말이 미덕이었는데, 사회가 풍요로워 지면서 어느 순간 물건을 오래 쓰고 아껴 쓰는 게 궁상이 된 분위기다. 하지만 자원을 쓰고 버리고를 무한히 계속할 수는 없다. 자원이 순환되어야 사회가 지속될 수 있다. 

내가 버린 것은 결국 나와 연결돼 있다. 여행을 통해 작은 것도 살뜰하게 아끼고, 나와 다른 존재들과 우리의 터전을 존중하는 문화가 '궁상'이 아닌 '우아함'일 수 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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