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이 지난 4일 개최한 CBDC 활용성 테스트 추진 계획 공동 기자설명회 모습. 사진=한국은행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이 지난 4일 개최한 CBDC 활용성 테스트 추진 계획 공동 기자설명회 모습. 사진=한국은행

[이코리아] 차세대 지급결제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는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 국내 도입을 위한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한국은행·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은 지난 4일 미래 통화 인프라 구축을 위한 실험(CBDC 활용성 테스트)을 공동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CBDC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로 변동성이 큰 암호화폐와 달리 법정통화와 연동돼 가치 변동의 위험이 낮고,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만큼 공신력이 보장된다. 현금 이용이 감소하고 경제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안정적인 디지털 지급결제 수단으로서 CBDC 개발의 필요성은 점차 강조되고 있다. CBDC 도입에 소극적이었던 각국 정부도 글로벌 스테이블코인의 등장과 중국의 적극적인 디지털 위안화 개발에 자극받아 점차 도입 논의에 참여하는 추세다. 

한은과 금융당국이 공동 추진하는 ‘CBDC 활용성 테스트’는 다수의 민간 은행이 참여하는 민관 공동 프로젝트로 진행된다. CBDC는 가계·기업 등 일반 경제주체들이 직접 사용할 수 있는 ‘범용 CBDC’와 금융기관 간 자금거래 및 최종 결제 등의 용도로 금융기관 등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기관용 CBDC’로 구분되는데, 이번 테스트는 기관용 CBDC를 중심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상용화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수많은 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CBDC는 이미 주요국 중앙은행의 핵심 과제로 자리잡고 있다. 실제 국제결제은행(BIS)의 지난해 연례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86개 중앙은행 중 93%가 CBDC 연구·개발을 진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중국·인도 등 세계 중앙은행의 25%는 소액결제용 CBDC를 대상으로 시범실시  테스트를 진행 중이며, 이 가운데 일부는 1~2년 내 출시가 예상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중국이다. 중국인민은행은 이미 지난 2014년부터 관련 연구를 시작해 현재 전국 26개 지역에서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디지털 위안화’의 시범 사용을 진행 중이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시범 사용을 시작한 이후 디지털 위안화의 총 거래 건수는 9.5억건, 거래금액은 1.8조 위안, 발행된 디지털 지갑은 1.2억개, 평균 거래액은 약 1895위안 수준인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 6월말 기준 디지털 위안화의 유통량은 165억 위안 규모로 아직 현금의 0.16%에 불과하지만, 점차 사용이 확대되는 추세다. 

중국이 이처럼 다른 국가보다 CBDC 개발에 높은 적극성을 보이는 이유는 지급결제시장에 대한 정부의 장악력을 강화하고, 달러 중심의 국제통화질서에 대항해 위안화의 국제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다. 현재 중국 결제시장은 대부분 위챗, 알리페이 등의 민간사업자가 장악하고 있는데, 이런 상태에서 시스템적 위험이 현실화할 경우 통제불능 사태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 만약 CBDC 중심의 지급결제 인프라가 구축된다면 민간 결제시장에 대한 정부의 통제력이 크게 강화될 수 있다.

실제 중국의 CBDC는 서구권 국가와 달리 철저하게 정부 주도로 개발되고 있으며, 탈중앙화라는 가상자산 시장의 흐름과는 동떨어져 있다. 

중국의 CBDC 도입 배경에는 달러 중심의 국제통화시장에 대항해 위안화의 국제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목적도 숨어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세계 각국 외환보유고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6월 기준 2.88%에 불과하다. 미국 달러화의 경우 2000년 73%에서 지난해 6월 58.8%까지 하락했으나, 여전히 기축통화의 지위가 견고한 상태다.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의 국제화에 성공해 달러화의 위상이 낮아진다면, 미국이 누리는 기축통화국으로서의 특혜도 축소될 수 있다.

실제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019년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자체 개발 디지털화폐인 ‘리브라’를 변호하며 중국의 디지털 화폐 시장 주도권을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상대적으로 CBDC 도입 논의에 소극적이었던 미국도 최근 들어 CBDC 연구에 속도를 내고 있다. CBDC 활성화로 국제통화질서에 변화가 발생할 경우 미국에 미칠 영향에 대비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당초 현금수요 감소, 결제인프라 고도화 등 CBDC 도입 이유가 미국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으나, 지난 2020년부터 입장을 바꿔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다.

또한  크리스토퍼 지안카를로 전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장인이 설립한 ‘디지털 달러 재단’도 지난 2020년부터 ‘디지털 달러 프로젝트’(DDP)를 추진하고 있는데, 지난 1월 발표한 CBDC 백서에서는 각국 중앙은행의 CBDC 연구 현황을 소개하벼 디지털 달러 발행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국 또한 이러한 국제적인 흐름에 발맞춰 CBDC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은은 지난 2021~2022년 모의실험 연구와 금융기관 연계실험을 통해 분산원장 기술 기반 범용 CBDC 시스템의 기술적 구현 가능성을 검증했으며, 범용 CBDC 도입시 제기될 수 있는 법·제도적 이슈에 대한 검토와 함께 거시경제·금융시스템에 미치는 파급효과 또한 연구해왔다. 

한편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4일 열린 공동 기자설명회에서 “이번 CBDC 활용성 테스트는 혁신의 동력을 살리면서 소비자 피해, 시장질서 교란을 막는 ‘잘 규율된 혁신’의 과정”이라며 “정부는 그동안 가상자산법, 토큰증권 규율체계 등을 하나하나 마련해온 것처럼, 계속해서 새로운 변화의 움직임을 수용할 수 있도록 선제적으로 제도를 정비하고 국민들의 권리에 대한 확고한 보장을 전제로 새로운 테스트도 지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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