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전 언론인.
임순만 전 언론인.

[이코리아] 일본축구의 상승세가 가파르다. 세계 축구 전문가들 사이에서 아시아 나라 중 다음 월드컵게임에서 4강 가능성이 있는 나라로 유일하게 일본을 꼽고 있다. 

21일 발표된 FIFA랭킹에서 1~10위까지는 아르헨티나 프랑스 브라질 잉글랜드 벨기에 크로아티아 네델란드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이 올랐다. 이 순위는 지난번 랭킹과 변함이 없다. 미국은 11위, 일본은 19위, 한국 26위다. 실력이 좋은 상대를 이기면 많은 포인트를 얻고, 실력이 낮은 상대에게 패하면 많은 포인트를 잃게 되는 방식으로 고안된 피파랭킹은 대체적인 순위를 보여주는 데는 적합하다. 그러나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지난 랭킹 20위에서 한 단계 상승한 일본의 랭킹은 현재까지의 점수 누적일 뿐, 현 단계의 정확한 순위라고 보기 어렵다. 19위보다 훨씬 상위 수준이다.

1, 세계의 벽을 넘는 일본축구

최근 A매치 기간의 주인공은 일본이었다. 일본은 9월 9일 독일 폭스바겐 아레나에서 열린 독일과의 평가전에서 4-1 대승을 거뒀다. 3일 후인 12일 벨기에 헹크에서 열린 투르키예전에서도 4-2 승리를 챙겼다. 

놀라운 것은 어쩌다 이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피파랭킹 1위에 올랐던 독일의 베스트 11과 독일 현지에서 맞붙어 압도적으로 이겼다는 점이 돋보인다. 독일전 승리도 대단하지만, 터키전 승리는 더욱 놀랍다. 일본은 독일전 선발로 나섰던 선수들을 대거 제외하고 2군이 터키전에 임했다. 그럼에도 일본은 일관된 경기 스타일을 유지했고 완승을 거뒀다. 이 두 게임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는 독일 축구팀이 한지 플릭 감독을 해임했고, 곧 이어 튀르키예 대표팀도 슈테판 쿤츠 감독을 경질한 데에서도 알 수 있다.

일본은 지난 6월 엘살바도르전, 페루전 승리부터 연승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의 네 경기에서 기록한 득점만 무려 18골이다. 지난 2022년 카타르 월드컵 E조 예선에서 ‘전차군단’ 독일과 ‘무적함대’ 스페인을 연달아 물리치고 승점 6점으로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던 것이 운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성적이다.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 도대체 일본 선수들은 어디서 이처럼 밀려오는 것인지 탄성이 터져 나온다. 2차 대전 때 끝없이 ‘돌격 앞으로!’를 감행하던 일본 보병들의 전투를 보는 것 같다.

2.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한국축구

위르겐 클린스만호가 이끄는 한국축구 대표팀은 올해 A매치 6경기에서 단 한 차례 승리를 거뒀다. 지난 9월 13일 영국 뉴캐슬에 위치한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 9월 A매치 친선 경기에서 1-0으로 이긴 것이 유일한 승리다. 클린스만 감독이 한국 사령탑 부임 후 6경기 만에 거둔 첫 승이다. 콜롬비아와 2-2로 비겼고 우루과이에 1-2로 패했다. 페루에 0-1로 패한 뒤에 엘살바도르와 1-1로 비겼다. 웨일스전과는 0-0으로 비겼다. 단순히 결과를 챙기지 못한 것만이 아니라 내용도 부실했다. 뚜렷한 방향과 컬러를 제시하지 못하고, 감독의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과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한·일전에서 한국 남자대표팀은 2020년 이후 일본과 무승부도 없이 다섯 경기 연속으로 0대 3 패배의 수모를 기록하고 있다. 한일간의 실력 차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대표팀 핵심 전력인 유럽파의 존재감도 차이가 크다. 일본은 9월 A매치를 위해 소집한 26명의 선수 가운데 21명이 유럽파다. 같은 기간 한국 유럽파는 절반 수준인 11명에 불과하다. 손흥민, 김민재를 제외하면, 각 소속팀에서 주전으로 뛰는 비중 역시 일본이 크게 앞선다.

한국축구는 볼을 잡으면 선수가 우물쭈물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상대가 압박을 해오면 백패스를 한다. 일본축구는 돌파한다. 백패스 같은 건 없다. 측면 공격수를 폭넓게 활용한다. 축구 시야가 매우 넓다. 일본 선수들은 자신들만의 전술을 마스터하고 그라운드에 나왔다는 인상을 준다. 세계 어느 팀과 붙어도 밀리지 않는다는 당당한 자신감이 엿보인다. 

3. 아시안게임, 한국과 일본축구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23세 이하의 선수들이 출전한다. 나이 제한을 받지 않는 와일드카드는 세 명까지 선발할 수 있다. 아시안게임은 오는 23일 막을 올리지만, 축구 등 일부 종목은 먼저 예선을 진행하고 있다.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한국 U-23팀은 19일 열린 E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쿠웨이트를 9대 0으로 대파했다. 21일 열린 태국전에서는 4대 0을 기록해 남은 경기와 관계없이 E조 예선 1위에 올랐다. 상대가 약체팀이긴 하지만, 과거 한국축구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패기에 넘치는 경기를 보이고 있다.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축구는 1986년 이후 28년 동안 정상에 오르지 못하다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과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며 2연패에 성공했다. 이번 대회에서 아시안게임 3연패라는 아시아 신기록에 도전하고 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선 손흥민이 와일드카드로 출전해 이승우, 황희찬, 조현우 등 같은 해 러시아 월드컵에 출전했던 초호화 멤버들과 결집해 금메달을 따냈다. 당시 손흥민은 병역특례 혜택을 받아 토트넘에서 롱런하는 중요한 기반이 됐다. 

아시아에서 첫 3연패에 도전하는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 황선홍 호에서 가장 기대를 모으는 선수는 이강인이다. 이강인은 소속팀인 프랑스 최강 파리 생제르맹(PSG)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차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독일)와의 홈 경기를 치르고 20일 아시안게임에 합류했다. 

E조 1위를 차지한 한국은 D조 2위와 8강 진출을 다투게 되는데, D조는 일본, 팔레스타인, 카타르로 이뤄져 있다. 2024년 파리 올림픽을 대비하는 일본은 이번 대회에 가능 연령 보다 두 살 어린 2001년생 위주로 대표팀을 꾸리고, 와일드카드는 한 명도 뽑지 않았다. 올림픽 축구 역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부터 만 23세 이하의 선수와 와일드카드 3명을 선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일본이 이번 아시안게임 선수를 이렇게 꾸린 것은 아시아 축구에 머물지 않겠다는 것을 뜻한다. 일본축구는 세계 축구의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은 강했다. 20일 밤 카타르와의 예선에서 일본은 시종일관 카타르를 압도한 끝에 3대 1의 여유로운 승리를 챙겼다. 카타르는 지난 6일 창원에서 열린 2024년 23세 이하(U-23) 아시안컵 예선에서 한국을 2-0으로 완파한 팀이다. 

​4. 한국축구는 감독문제부터 해결해야

수준 높은 축구를 하려면 넓은 축구 시야와 전후반 뛰어다닐수 있는 체력, 정확도 높은 숏패스 롱패스 등의 기본기와 전술 이행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한국 주전 11명과 서브 자원들은 아직 이런 능력이 부족하다. 한국 축구는 오랫동안 감독 선임에 갈등을 겪어왔다. 한국추구를 만들려면 우리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 감독을 키워야 한다. 축구는 세계 어디서나 하는 것이지만 선진 축구를 소화한 바탕 위에서 우리의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야 월드컵 8강이 가능하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독일과 미국 대표팀 시절에도 잦은 외유와 재택근무로 도마에 오르기도 했는데 한국 대표팀 감독을 맡은 이후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중이다. “대한민국에 상주하겠다”는 그의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A매치가 있었던 3, 6월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이 있는 미국에서 보냈다. 그는 대한민국 대표팀보다는 다른 곳에 시선이 쏠려있는 듯이 보인다.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에 집중하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조 추첨식에 참가하는 등 대한민국 대표팀 사령탑으로서 무책임한 태도를 보인다는 지적이 그치지 않는다. 대표팀 선수 발탁 기자회견은 보도자료로 대체하는 등 성의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지난 20일 대한축구협회는 “클린스만 감독이 전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자택이 있는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떠났다”고 전했다. 14일 선수단 본진과 함께 귀국한지 닷새만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16일 전주 월드컵경기장에서 전북-강원전을 지켜봤다. 3개월만의 K리그 직관이었다. 이어 17일에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서울과 광주의 경기를 봤다. 그리고 미국으로 갔다.  

클린스만의 경기는 특색이 없다. 입으로는 공격축구를 부르짖지만, 정작 6경기에서 5골 뿐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내년 1월 카타르에서 펼쳐지는 아시안컵에서 자신을 평가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본축구의 체질 개선은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의 고집이 완성한 결과물이다. 모리야스호의 공격은 측면 공간 활용이 핵심인데, 전방부터 후방까지 전체적인 라인을 내리고 지역 방어에 치중하면서 공간을 내주지 않는다. 후방 빌드업을 통해 압박에서 벗어나면, 빠른 공수 전환을 통해 측면 공간으로 공을 배급해 상대 페널티박스 안까지 빠르게 도달하는 것이 특징이다. 전방을 압박해 후방에 빈 공간을 만드는 것이 모리야스 감독의 전술적 접근법이다.

우리도 우리의 축구를 만들어야 한다. 매번 감독 논란에 휩싸이는 한국축구는 제자리걸음을 되풀이하고 있다. 한국을 아는 감독이 필요하다. 우리를 알아야 우리의 전술이 나온다. 시선이 다른 곳에 가 있는 감독은 새로운 기술을 우리 것으로 만들어 세계 무대에 당당히 나가기 어렵다. 우리 감독을 체계적으로 키워야 한다. 

임순만 작가 · 전 국민일보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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