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ESG펀드의 반기별 순자산 및 자금흐름.(단위: 억 원) 자료=서스틴베스트
국내 ESG펀드의 반기별 순자산 및 자금흐름.(단위: 억 원) 자료=서스틴베스트

[이코리아] ‘녹색’ 금융상품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친환경을 위장해 금융소비자를 오도하는 ‘그린워싱’(Green washing·위장환경주의)에 대한 각국의 규제도 강화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펀드가 순조로운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만큼, 투자자 보호를 위해 세심한 규제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국내 ESG 펀드, 상반기 자산·수익성 모두 개선

ESG 평가 및 투자자문기관 서스틴베스트에 따르면, 국내 ESG 펀드 순자산은 전기 대비 10.9% 증가한 15조6041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2021년 큰 폭으로 성장한 국내 ESG 펀드 순자산은 2022년 상반기 다소 주춤했으나, 이후 다시 꾸준히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국내 ESG 펀드의 이 같은 성장세는 글로벌 흐름과도 일치한다. 미국 금융정보업체 모닝스타(Morningstar)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글로벌 지속가능성 펀드의 순자산은 2조3680억 달러로 지난해 말보다 13.5%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글로벌 펀드 순자산 증가율(9.07%)을 상회하는 것으로 녹색 금융에 대한 전지구적인 관심을 보여준다. 자금 흐름 측면에서도, 상반기 약 490억달러가 ESG 펀드로 순유입되며 자금 유입세가 이어졌다.

ESG 펀드의 수익률 또한 투자자들의 기대에 부합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국내주식형 액티브 ESG 펀드 수익률은 19.61%로 코스피200(13.75%) 대비 5.86%포인트 높은 성적을 기록했다. 국내채권형 ESG 펀드 또한 KIS 종합채권지수를 0.23%p 상회하는 3.32%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특히 친환경 테마의 펀드 수익률이 높았다. 국내주식형 ESG 펀드 중 가장 수익률이 높았던 것은 미래에셋 TIGER 2차전지테마증권 ETF(74.51%)였으며, 이 밖에도 타임폴리오 탄소중립액티브증권 ETF, KBSTAR 배터리 리사이클링 iSelect 증권 ETF 등 친환경 ETF 상품들이 수익률 상위권에 포진했다. 해외시장 ESG 펀드 수익률 순위에서도 친환경 테마 펀드의 선전이 두드러졌다.

이 같은 ESG 펀드의 성장세는 하반기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서스틴베스트는 “미국의 IRA(인플레이션 감축 법안) 등 주요국에서 친환경 정책이 강화됨에 따라 친환경 전환이 가속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따라서 2차전지, 기후변화, 배터리 등을 키워드로 하는 환경 테마 펀드의 순자산 증가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며 ESG 펀드 시장도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

◇ 금융권 그린워싱 규제 나선 해외 주요국, 국내 현황은?

이처럼 녹색 금융 열풍을 타고 ESG 펀드의 성장세가 계속되고 있지만, 자칫 일반 펀드와 별 차이 없는 금융상품이 이름만 ‘ESG’를 내세워 투자자들을 오도할 위험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해외 주요국에서는 이미 금융상품의 그린워싱을 방지하기 위한 규제체계를 정비하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금융상품의 그린워싱 규제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증권시장청(ESMA)은 지난해 말 금융사가 펀드 명칭에 ‘ESG’ 또는 ‘지속가능성’ 용어를 포함시킬 경우 따라야 할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펀드 명칭에 ‘ESG’를 사용하려면 투자의 80% 이상을 지속가능금융공시규정(SFDR)에 따른 환경·사회(S) 부문에 투자해야 한다. 만약 상품명에 ‘ESG’나 ‘지속가능성’ 용어가 포함된 펀드가 관련 분야에 일정 비중을 실질적으로 투자하지 않는다면 기후·임팩트·기후변화·생물다양성 등 ESG·지속가능성과 관련된 용어를 사용할 수 없다. 나아가 ESMA는 EU 벤치마크 규정에 명확한 ESG 기준을 도입하는 ‘ESG벤치마크 라벨’을 통해 투자자가 금융사의 그린워싱에 속을 위험을 방지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호주 증권투자위원회(ASIC)도 그린워싱 방지를 전체 규제에서 우선순위로 두고 있으며, 올해 3월까지 9개월간 그린워싱과 관련해 35건의 규제 개입을 실시했다. 자본연에 따르면, ASIC은 ESG 자산이 2025년까지 53조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그린워싱 위험도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에 따라 ASIC은 그린워싱이 투자자들의 판단·결정을 왜곡하고 시장 신뢰를 훼손할 것을 우려해 기업법을 통해 그린워싱을 규제하는 한편 금융사를 위한 관련 지침(INFO 271)을 게시하고 있다. 

일본 금융청 또한 지난해 말 ‘금융상품 거래업체 등을 위한 종합적인 감독 지침’을 일부 개정해, ESG투신거래업자용 지침을 추가하고 ESG공모투자 신탁의 그린워싱 배제 정책을 명확히 했다. 이 지침에 따라 금융사는 ESG 공모투자신탁에 해당하는 상품의 경우 ESG 관련 내용과 운용 프로세스 책정의 이유, 창출 효과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또한 ‘ESG’, ‘그린’, ‘탈탄소’, ‘임팩트’, ‘지속가능성’ 등을 강조하며 ESG 공모투자신탁에 해당하지 않는 상품을 ESG 상품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광고도 금지된다.

우리 금융당국도 그린워싱 관련 규제 정비에 나서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3월 7개 운용사 및 금융투자협회, 자본시장연구원 등과 함께 ‘ESG 펀드 공시기준 도입 태스크포스(T/F)’를 출범했다. 금감원은 해외 주요국의 공시규제를 참조해 ESG 펀드의 공시 대상과 투자전략, 운용능력, 운용실적 등에 대한 공시기준을 마련해, 투자자의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고 그린워싱을 방지하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금감원은 지난 1월 신용평가사가 ESG채권 인증평가를 할 때 따라야 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도 했다. 기존에는 ESG채권 발행 후 자금 사용처에 대한 전문가의 검증 의무가 없어 투자자들이 발행사가 공개하는 자금사용 정보를 신뢰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새로 제정된 가이드라인은 신평사가 ESG채권 인증평가 업무를 계약할 때 자금사용 검증을 포함하도록 했다. 따라서 신평사가 녹색프로젝트에 실제 자금이 집행됐는지 확인하게 된 만큼 그린워싱 방지 효과가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과도한 그린워싱 규제가 녹색 금융시장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는 만큼 세심한 정책 설계와 집행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경희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그린워싱에 대한 규제는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 필요하지만, 과도한 규제는 오히려 기업의 친환경 투자를 오히려 저해하는 부정적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며 “그린워싱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과 다양한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소비자의 금융상품과 기업에 대한 신뢰를 제고하고, 글로벌 동향에 부합하는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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