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서울 도심 아파트단지의 모습. 사진=뉴시스 
사진은 서울 도심 아파트단지의 모습.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정부가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사실상 퇴출시키고, 고소득자 대상 특례보금자리론도 중단하기로 했다. 최근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등을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6조 원 넘게 급증하자 금융당국이 대출 규제를 강화한데 따른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13일 기획재정부 등 유관기관과 '가계부채 현황 점검회의'를 열고 이 같은 가계대출 관리 방안을 확정했다.

금융 당국은 이날부터 50년 만기 대출을 받더라도 전 기간에 걸쳐 상환 능력이 입증되기 어려운 경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 만기를 최대 40년으로 제한하도록 했다.

즉, 50년 만기 주담대를 받더라도 대출 한도를 40년 만기 기준으로 산정하는 것이다. 만기가 줄수록 연간 갚아야할 원리금은 늘기 때문에 전체 대출 가능 금액은 감소하게 된다. 다만, 2030 쳥년층이나 노후 소득이 확실히 있는 중·장년층 등 50년간의 상환 능력이 인정되는 사람에게는 DSR 산정에서 50년 만기가 여전히 적용된다. 

대출 한도가 더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금융당국은 현재 소득 뿐 아니라 미래소득까지 감안해 대출한도와 대출 만기를 설정하도록 금융회사를 지도할 방침이다. 

이에 변동금리 대출에 대해서는 향후 금리상승 가능성을 감안해 엄격한 수준의 DSR 규제가 이뤄질 수 있도록 DSR 산정 시 일정 수준의 가산금리를 적용하는 '스트레스(Stress) DSR 제도'를 도입한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연 소득 5000만원인 차주가 금리 4.5%의 변동금리 대출시 가산금리 1%포인트가 적용돼 대출한도가 3억 4000만 원으로 현재의 4억 원 대비 6000만 원 축소된다. 또 9억 원 이하 주택은 소득에 상관없이 5억 원까지 빌릴 수 있는 '특례보금자리론'도 단계적으로 사라진다. 

오는 27일부터 일반형(부부합산 연소득 1억원 초과 차주 또는 6억원 초과~9억원 이하 주택 대상) 특례보금자리론의 접수가 전면 중단된다. 지난 1월 출시된 특례보금자리론은 부부 합산 연소득 1억원 이상의 고소득자도 대출이 가능해 인기를 끌어왔다. 

다만, 소득 제한이 있는 우대형(주택가격이 6억원 이하인 동시에 부부 합산 연소득이 1억원 미만)은 내년 1월까지 공급된다. 

금융 당국이 50년 만기 주담대와 특례보금자리론을 손보기로 한 것은 이들이 가계대출 증가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가 발표한 '가계대출 현황'에 따르면 지난 8월 가계대출 증가액은 6조 2000억 원으로 전월 5조 3000억 원 대비 1조원 가까이 증가폭이 벌어졌다. 집값이 바닥을 쳤다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가계대출은 5개월째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원인은 지난 여름 급증한 주택담보대출이다. 50년 만기 주담대는 올해 대출 규모만 8조 3000억 원이다. 다른 대출은 4000억 원 줄어드는 동안, 주담대는 7~8월 두 달 동안에만 6조 7000억 원으로 급증했다. 대출은 최대한 많이 받고, 상환은 미루자는 이른바 '영끌족'이 다시 움직인 걸로 분석된다. 

이와 관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24일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가계부채 연착륙이 제겐 한은 총재가 된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며 "가계부채 비중을 점진적으로 (GDP 대비)80% 수준까지 낮추는 것이 기본적인 한은의 목표"라고 밝혔다. 당국이 50년 만기 대출 규제를 시작으로 가계부채에 고삐를 죄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셈이다. 

앞서 한은은 지난 4월 '가계신용 누증 리스크 분석과 정책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80%를 넘으면 성장률이 낮아지고 경기침체 발생 확률도 높아지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5%를 넘어선 상황이어서 가계부채 관리가 특히 중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은은 또 14일 국회에 제출한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서 향후 가계대출에 대해 주택 매매거래 확대와 하반기 아파트 입주 물량 증가에 따라 단기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중장기적인 시계에서 정책당국과의 공조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조치를 두고 당국이 정책 혼선을 자처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당장 50년 만기 주담대를 계산해 내 집 장만을 하려던 소비자들은 계획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은행권과 당국 내부에서도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시장에 혼선을 주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금리인상기에 차주들의 월상환액 부담을 낮추기 위해 주담대 만기 연장을 당국이 장려했다가 이제 와서 급증하는 부채에 조기 대출 중단 및 은행들의 느슨한 대출관리 행태라고 비난하는 건 정책 신뢰도를 깎아 먹었다는 것이다. 

은행들은 잇달아 50년 만기 주담대 판매를 중단하거나 연령을 34세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결국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에 미리 대응한 차주들만 이익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은 14일 <이코리아>와 한 통화에서 "부동산 가격이 여전히 높은 상태에서, 또 가계 부채가 사실상 전 세계 최고 수준임에도 부동산을 부양키 위해 정부가 무리수를 두다 보니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줘 영끌족이 더 빚을 낸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내놓은 특례보금자리론의 경우 DSR도 적용이 안 되다 보니 부채 증가에 미치는 영향이 컸다. 부동산이 연착륙할 수 있던 기회를 많이 훼손한 셈"이라면서 "50년 만기 주담대도 DSR 산정기간을 10년 단축해 40년으로 줄였지만 불씨가 여전히 남아서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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