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동의청원 갈무리
= 국민동의청원 갈무리

[이코리아]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올라와 6일 만에 동의 5만 명을 달성한 게임물 사전심의 의무 폐지 청원이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폐기 수순에 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10월 7일에 올라온 해당 청원은 게임물의 사전심의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한 헌법 21조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해외처럼 게임에 대한 사전심의 의무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외의 경우 미국은 ESRB (오락 소프트웨어 등급 위원회), 일본은 CERO (컴퓨터 오락 등급 기구), 유럽은 PEGI (범유럽 게임 정보)라는 민간기구가 각각 게임의 심의를 담당하고 있다.

청원인은 사전심의 제도의 폐해가 드러난 사례로 2019년에 일어난 주전자 닷컴 사태를 언급했으며,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출범 이후 게임업계 종사자가 심의에서 배제되는 등 전문성 논란이 여러 차례 있었다는 부분 역시 지적했다.

해당 청원은 당시 터진 게임물관리위원회 서브컬처 게임 등급 재분류 사태와 겹쳐 게이머들의 큰 관심을 끌었으며, 시작된 지 일주일 만에 5만 명의 동의를 얻어 요건을 충족해 위원회 심사 단계로 넘어갔다. 관련법에 따라 30일 이내에 5만 명의 동의를 받은 청원은 관련 상임위원회에서 논의되어야 하며 150일 이내에 청원 심사를 마쳐야 한다. 

하지만 정해진 기간 내에 심사를 마치지 못한 문체위가 청원 심사 기간을 국회 임기 만료일까지로 연장하며 해당 청원 역시 임기 내에 심사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내년 4월에 총선이 예정되어 있는데, 다음 달 국정감사 기간이 지나고 나서도 해당 청원이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면 문체위가 관계 기관과 협의한 뒤 개정안을 발의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임기 만료 이전에 심의받지 못한 청원은 자동으로 폐기 수순을 밟게 된다.

= 국민동의청원 갈무리
= 국민동의청원 갈무리

게이머들은 5만 명이 동의한 청원이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폐기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12일에는 국민동의청원에 동일한 내용의 청원이 다시 올라와 하루 만에 5천 명의 동의를 받기도 했다.

청원인은 "5만 명의 동의를 받은 게임물 사전심의의무 폐지가 임시 국회 만료일까지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그대로 폐기되어버리는 것은 도저히 두 눈 뜨고 지켜볼 수 없어 청원을 다시 올리게 되었다."라고 취지를 밝혔다. 또 시대에 맞지 않는 제도로 대한민국 게임 발전을 막고 있는 게임물 사전심의의무를 폐지하는 것을 국회에서 진지하게 검토해 달라고 재차 요청했다.

위원회 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청원들 = 국민동의청원 누리집
위원회 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청원들 = 국민동의청원 누리집

한편 게임물 사전심의 의무 폐지 청원 외에도 많은 청원이 국회의 처리를 기다리고 있지만, 국회가 국민동의 청원을 제대로 심사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21대 국회의 임기가 시작된 2020년 5월부터 지금까지 5만 명의 동의를 얻어 성립된 청원은 총 76건이다. 하지만 이 중 5건의 청원은 본회의 불부의(본회의에서 심의하지 않도록 논의) 되었으며, 1건은 대안반영 폐기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대부분의 청원은 위원회 심사 단계에 계류되어 있다.

지난 2020년 7월에 성립된 '포괄적 차별금지법 반대에 관한 청원'은 3년째 소위원회 심사 단계에 머물러있으며, '군무원의 처우개선을 위한 법률 개정', '직업군인의 처우개선', '학교폭력 공소시효 청원', '아동학대 범죄 신상공개 청원'등 국민적 관심을 받은 사회 제도 개선을 호소하는 청원들도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잠들어있다.

= 박주민 의원실 제공
= 박주민 의원실 제공

지난 5월 31에는 민주노총, 차별금지법제정연대, 4·16연대, 10·29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 참여연대 등 노동시민사회단체와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동의청원으로 국회에 회부된 법안들을 조속히 처리할 것을 촉구했다.

박주민 의원은 헌법에 따라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한 바에 의해 국가기관에 문서로 청원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국가는 이를 심사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회법은 청원이 장기간 심사를 요구하고 9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지 못할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심사 기간의 추가 연장을 요구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결국 대부분의 청원은 국회 임기 만료일까지 심사 기간이 연장되기 일쑤이고, 결국 임기 만료로 폐기되는 수순을 밟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박 의원은 국민청원은 국가의 의사 형성에 국민의 의견이나 희망을 직접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란 점에서 청원 심사 기간이 무분별하게 연장되다가 임기 만료로 폐기되는 것은 사실상 국민의 청원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국회는 1년 남은 임기 동안 국민들이 올린 청원들을 제대로 심사하도록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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