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3일 오전 서울 관악구 신림역 '묻지마 흉기난동' 사건 현장에서 시민들이 추모 메시지를 읽고 있다. 사진=뉴시스
7월 23일 오전 서울 관악구 신림역 '묻지마 흉기난동' 사건 현장에서 시민들이 추모 메시지를 읽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최근 ‘이상동기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흉악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확산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신림역 칼부림 사건과 같은 흉악범죄를 억제하려면 국내에서는 실질적으로 폐지된 사형제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된다. 

◇ 연이은 칼부림 사건, 사형제 부활 여론 확산

지난 7월 21일 발생한 신림역 칼부림 사건을 시작으로 연달아 불특정 다수 상대의 이상동기 범죄가 발생하면서 사형 재개를 요구하는 여론은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다. 실제 신림역 사건 이틀 뒤인 7월 23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는 ‘신림역 칼부림 사건 가해자에 대한 엄격한 처벌 요청에 관한 청원’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본인을 신림역 사건 피해자의 사촌형이라고 밝힌 청원인은 “유족들은 살인으로 가족을 잃은 만큼의 죄를 묻고 싶지만 그런 형벌조차 없는 현실이 더 화가 난다”며 “이 사건이 한낱 흘러가는 단순 묻지마 사건으로 묻히지 않도록, 가장 엄중한 벌인 사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다시는 저런 악마가 사회에 나오지않도록 국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신림역 사건이 발생한 이후 행정안전부 온라인 청원서비스 ‘청원24’에는 사형 집행을 재개해달라는 청원이 수십 건이나 올라오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도 사형 집행 재개 여론에 동참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24일 페이스북을 통해 “흉기로 사람을 죽였는데 단기 5년 선고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러니 흉악 살인사건이 끊이지 않는 것”이라며 “연쇄 살인범과 악질 현장 살인범의 경우는 반드시 사형을 집행하여 선량한 국민들을 안심시키고 사회정의를 확고히 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8월 24일 페이스북을 통해 살인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며 사형 집행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진=페이스북 갈무리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8월 24일 페이스북을 통해 살인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며 사형 집행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진=페이스북 갈무리

◇ 사형제의 범죄억지력, 여전히 논쟁 중

그렇다면 사형제는 정말 흉악범죄, 특히 살인범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을까? 국내외 연구결과를 종합하면, 사형제가 흉악범죄를 억제한다는 사실을 뚜렷하게 입증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사형집행이 흉악범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측이 주로 인용하는 것은 미국의 연구결과다. 아이작 에를리히(Isaac Ehrlich) 시카고 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1975년 사형제가 살인범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는데, 해당 논문은 사형이 집행될 때마다 살인 7~8건이 줄어든다는 결론을 담고 있다. 에를리히 교수의 논문이 발표된 이후 미국 내에서는 잠시 중단 됐던 사형 집행이 재개됐고 사형제의 범죄 억제 효과에 대한 논쟁도 다시 치열하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2000년을 전후해 축적된 통계 자료와 발전된 계량적 연구방법을 토대로 에를리히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네이시 모칸 콜로라도대 경제학과 교수, 폴 짐머만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이코노미스트 등은 1980~19990년대 미국 주별 사형 집행 및 살인범죄 관련 통계를 분석해 사형제의 범죄 억제 효과를 지지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반면 이러한 연구들이 자료와 방법론적 한계로 인해 사형제와 살인범죄 간의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지난 2006년 존 도노휴 스탠퍼드대 법학과 교수와 저스틴 월퍼스 미시건대 경제학과 교수는 2000년 이후 발표된 사형제의 범죄억제 효과에 대한 주요 논문 6편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들은 앞선 연구들이 사형제의 범죄 억지력이라는 일치된 결론에 이르기에는 자료와 방법론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한 잠재적 범죄자가 사형집행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결국 사형집행이 실시될 때마다 살인범죄가 줄어든다는 가정을 증명해 주는 증거는 매우 희박하다고 주장했다.

미국 국립연구위원회(NRC) 또한 지난 2012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살인에 대한 사형의 효과에 대해 현재까지 이뤄진 연구는 사형이 살인율을 증가, 혹은 감소시키는지에 대해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따라서 협의회는 사형제가 살인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판단에 이러한 연구들을 활용하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며 “결론적으로 사형제가 살인율을 증가·감소시키거나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등의 연구결과들은 사형제에 대한 정책적 판단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유엔(UN)도 지난 1988년, 2002년 두 차례에 걸쳐 사형제와 살인율의 관계에 대해 조사한 결과 사형제가 종신형 등 다른 형벌보다 살인을 억제하는 효과가 크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국은 지난 1997년을 마지막으로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어 실질적 사형폐지국가로 분류된다. 한국의 살인범죄 발생비(인구 10만명 당 살인 건수)는 1990년대 초반까지는 1.5 내외였으나, 사형 집행이 중단된 1990년대 후반 2.0으로 증가했다가 2021년 기준 1.6명 수준으로 다시 감소했다. 국내에서도 사형제의 범죄억지력을 입증할만한 일관된 추세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닌 셈이다. 

◇ 검증결과

판단유보. 학계에서는 여전히 사형제의 범죄억지력에 대한 상반된 주장이 엇갈리고 있으며, 사형제가 살인범죄를 감소시킨다는 일치된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유엔 등 국제기구 또한 사형이 다른 형벌보다 범죄억지력이 크다고 주장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 참고문헌

미국 국립연구위원회(NRC), 2012, “Deterrence and the Death Penalty”

범죄통계포털 ‘범죄와 형사사법 통계정보’(CCJS)

박철현, 2009, “정치적 민주주의와 사형의 효과: 억제 Vs. 야수화”, 형사정책연구 20권 1호

홍기원, 2010, “사형제도의 범죄억지력에 관한 최근 미국 법경제학의 연구성과에 대한 검토”, 고려법학 57호

홍문기, 2017, “사형제도의 위하력 효과에 대한 연구의 최근 동향: 미국에서 발표된 선행연구를 중심으로”, 형사정책연구 28권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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