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동국제강 포항공장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자가발전 설비 모습. 사진=동국제강
사진은 동국제강 포항공장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자가발전 설비 모습. 사진=동국제강

[이코리아] 유럽의 탄소국경세 시행이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국내 관련업계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12일 정부·관련 업계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오는 10월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시범 도입한다. 

CBAM은 환경 규제가 약한 EU 역외국에서 생산돼 탄소비용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제품이 EU 내로 수입될 때, EU 생산제품과 같은 수준의 탄소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다. 탄소국경세는 오는 2026년부터는 전면 시행될 예정이며, 올해 10월부터는 철강·시멘트·비료·알루미늄·전기·수소 등 6개 품목의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탄소배출량 의무보고가 우선 실시된다. 

국내에서는 특히 철강업계가 다른 CBAM 품목보다 탄소배출이 많고, EU 수출액도 압도적으로 높아 탄소세가 본격 도입될 경우 비용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3년간 한국이 EU로 수출한  탄소국경세 대상 철강제품의 평균 수출액은 27억6300만 달러(약 3조6604억 원)다. 이는 해당 철강제품 수출총액 270억 달러의 10.2%로 EU는 한국이 세 번째로 많이 철강을 수출하는 국가다.

EU가 탄소국경세를 도입하면 수출 기업들은 제품에서 발생하는 탄소의 총량에 따라 'CBAM 인증서'를 구매해야 하는데, 연 2583억 원이 들어갈 것으로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추정했다. EU 대상 철강제품은 국내 총 수출액의 8.1%에 해당한다.

이와 관련 국내 대응 상황은 어떨까. 현재 정부 주도 태스크포스(TF) 팀을 통해 민관이 EU 탄소국경세 이슈에 합동 대응하고 있다. 

정부는 그간 EU의 CBAM 제도 발표 이후 다양한 협력 채널을 통해 업계와 소통하며 국내 철강산업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모색해 왔다. 

EU와는 이행법안 발표 이전부터 △국내 배출권거래제의 배출량 보고방식 인정 △세부 제도가 WTO 규범에 합치되는 방향으로 설계 등을 요구하는 등 우리 측 요청사항을 협의해 왔다.

지난 6월 13일에 발표된 CBAM 이행법안 초안에는 배출량 보고 의무의 완화규정(Derogation)이 포함됐다. 산업부는 EU로 수출하는 우리 철강기업 등의 배출량 보고 의무가 상당부분 경감될 것으로 전망했다.

EU는 전환기 초반에 해당하는 10월부터 2024년 말까지는 EU의 산정 방식이 아닌 제3국 규정에 따라 계산된 배출량을 보고하는 경우도 한시적으로 인정할 방침이다.

이에 한국 기업들도 일단은 국내 탄소배출권 거래제도인 K-ETS에 근거해 보고하기 시작할 것으로 관측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향후 제도의 본격 이행에 있어서도 우리 기업이 기존 활용 중인 국내 배출량 산정방식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EU와 지속 협의할 것"이라며 "10월부터 시행되는 전환기간 중 기업들이 차질 없이 배출량 보고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세부 가이드라인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정부는 탈탄소 산업구조 전환 촉진을 위해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 등을 대상으로 한 탄소중립 산업핵심기술 개발 사업에 올해부터 오는 2030년까지 총 9352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철강업계는 단기적으로 전기로를 활용한 제품 생산을 확대하고, 장기적으로는 무탄소 제철공법 도입 등으로 탄소국경세에 영향을 받지 않는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하지만 획기적인 탄소 감축 공정이 도입되지 않는 한 막대한 탄소세 지출은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의 분위기다.

포스코는 지난 8월부터 사내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는 등 대응 체계를 구축해 대비하고 있다. 2025년까지 수소환원제철 기술(가루 상태의 철광석과 수소를 활용해 쇳물을 제조하는 기술)을 확보하고 2050년까지 기존의 탄소기반 제철설비를 수소환원제철 방식으로 전환할 방침이다.

또 독자적인 수소환원제철법인 '하이렉스' 기술을 활용해 2033년까지 350만톤 규모의 철강을 생산한다는 계획이지만 극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선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대제철은 당진제철소 전기로 투자를 통해 2030년까지 연간 500만톤의 저탄소 제품을 공급한다는 목표다. 신전기로에는 현대제철의 독자 기술을 바탕으로 한 저탄소 제품 생산체계인 '하이큐브(Hy-Cube)' 기술이 적용된다.

동국제강그룹은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10% 감축할 계획이다. 동국제강은 철 스크랩 예열 및 장입 방식 개선 등으로 에코아크 전기로 전력 효율을 높이고 에너지 효율을 향상해 하이퍼 전기로 기술을 완성한다.

앞서 지난 3월 동국제강은 총 125억원을 투자해 포항공장 3개동 지붕 5만평에 태양광 자가발전설비를 설치 완료하고 최근 본격적인 발전에 돌입했다.

태양광 자가발전 설비 도입은 동국제강 ‘Steel for Green’ 전략의 일환이다. 동국제강 탄소배출량은 철강업종 전체의 2% 수준이지만, 2030년까지 기존 대비 10%의 탄소 배출 추가 절감을 목표로 친환경 지속 성장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일각에선 민·관 공동 대응 체계를 현재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들린다.

탄소국경조정제도는 우리나라처럼 탄소배출에 대한 규제가 느슨한 국가에게 불리하다. 규제가 강한 국가로 상품을 수출할 때 해당 상품의 탄소배출량 추정치를 EU의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ETS)와 연동해 세금을 물리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국내 탄소배출권 거래제도인 K-ETS에 따라 탄소배출권을 지불한 기업이 EU로 수출할 때 CBAM 인증서를 또 구매해야 하는 이중 과세를 적용해 우려를 해소하고, 개별 기업이 파악하기 힘든 탄소배출량 정보를 공유하는 협력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EU는 향후 철강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 관련 직접 배출량뿐 아니라 외부로부터 구매한 열과 전기를 사용할 때 발생하는 탄소 배출에도 간접세를 부과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이에 중장기적으로는 국내 철강산업이 석탄을 주 원료·연료로 하는 산업구조를 친환경 수소 등으로 전환하는 획기적인 변화를 미룰 수 없는 시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당장 탈탄소 제철 공정으로 전환하기에는 공급망 체인 관점에서 기술 개발 및 상용화와 더불어 공급망 형성에 어려움이 있다. 수소환원제철 기술과 친환경 전기로 기술 등을 개발하고 상용화하려면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며, 이로 인한 원가 상승은 수요 기업들이 녹색철강 구매를 주저하게 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철강업계의 전환을 위해 마중물 역할을 해줄 정책과 금융 지원이 필요하다"며 "녹색철강 시장이 충분히 성숙해질 수 있도록, 정부 및 지자체의 초기 시장 형성을 위한 정책 및 금융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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