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전 언론인.
임순만 전 언론인.

[이코리아] 노부부가 강아지 한 마리를 키웠다. 강아지 이름은 호리였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다정한 노부부였다. 날마다 함께 공원엘 나갔고, 돌아올 때는 메밀국수나 함흥냉면, 아니면 만두를 사 먹었다. 메밀국수와 함흥냉면을 먹는 경우는 주로 여름이었고, 솥뚜껑을 열 때마다 김이 모락모락 나오는 찐만두는 겨울에 먹었다.

부부가 호리를 데리고 외출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부부는 강아지 입장이 가능한 식당을 알고 있었고, 강아지는 메밀국수나 함흥냉면도, 만두나 순두부도 다 잘 받아먹었다.

다정한 노부부가 다투기 시작한 것은 순전히 신문 탓이었다. 신문에는 매일 싸움꾼들의 이야기가 가득했다. 야당인사는 집권 세력을 정책이라는 죽창을 든 약탈꾼이라고 공격했고, 집권당의 대변인은 그 야당 인사를 개인적 복수심과 원한에 사로잡힌 망령이라고 공격했다. 싸우더라도 재담과 문자를 섞어서 촌철살인하고 미소 짓게 하던 시대는 지난 거였다. 알 수 없는 유행어와 줄임말과 노골적인 험담을 최대한으로 구사하는 것이 일상화된 시절이었다. 매일 신문을 보는 할아버지는 신문을 전혀 보지 않는 할머니에게 신문의 흉내를 내서 말했다. “망국 단식을 하고 매국 협상을 벌이는 자는…” 신문과 다른 것이 있다면 할아버지는 지방 사투리를 쓴다는 점이었다. 

-이 XX는 마누라 바가지 긁는 소리를 듣고 왔나 왜 허구한 날 욕설을 함둥? 

-그런 소리는 그만 두세요.

-할망구는 좀 쉐라.(쉬어라)

-쉴 시간이 어디있어요? 뭐라도 해야지요.

-그만 도라. 종일 뭐 한다고 그런 소리르 한단 말임둥?

-나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아요.

-무시기 어쩌구 어째?

-소리를 좀 낮춰요.

-거짓부레를 말아라. 한숨도 쉬지 않는다고? 그런 거짓부레를!

할아버지가 매일 험상궂게 큰소리를 치자 할머니가 어느 날 시원한 바람 좀 쐬라며 아파트 현관문을 열어놓았다. 그 사이 호리가 아파트 현관문을 통해 도망을 쳤다. 할머니는 밤새 강아지를 부르면서 골목골목을 다녔다. 다음날 옆집 아가씨 금미가 전단지를 만들어 붙이고 녀석의 행방을 찾으려고 할머니와 아가씨가 동네를 다 돌아다녔지만, 강아지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여섯 달 동안 강아지를 찾으러 공원으로, 골목으로 눈물을 흘리며 다녔다. 신문에는 더욱 포악한 말로 정치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기승을 부렸다. 

어느 날 아침 할아버지가 책상에 앉아서 신문을 보다가 벌떡 일어섰다. 할머니가 맛있게 끓여준 팟죽의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혀끝에서 사라지지도 않은 시간에 신문은 여야의 극한대립을 지상으로 중계하고 있었다. 신문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형을 시켜야 할 범죄자’ ‘매국노’ ‘국회농단’ 따위의 극한 언어들이 가득했다. 잔뜩 화가 난 할아버지는 서랍 속에서 가위를 찾아내 신문 한 귀퉁이를 오려내 그 위에 검정 매직팬으로 ‘신문투입 절대사절’이라고 썼다. 그는 테이프를 들고 그것을 현관문 앞에 거칠게 부착할 심산이었다. 

신문의 공격적 언사에서 자극받은 할아버지는 현관 밖에 거부의 깃발을 꽂으려는 열정에 취한 나머지, 다리가 불편한 자신의 육체적 한계를 망각했다. 책상에서 현관 밖까지 한걸음에 달려 나가려고 후다닥거리는 순간 그는 낙지처럼 여러 개의 다리를 내뻗고 있는 회전의자에 걸려 방바닥에 나자빠졌다. 다리가 불편한 데다가 체중이 불어날 대로 불어난 할아버지가 넘어지는 꼴은 마치 두 사람이 네발을 묶어 양쪽에서 짊어지고 가던 돼지가 끈이 끊어져 통째로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것처럼 갑작스럽고 무지막지한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본 할머니는 일순 통쾌하게 웃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남편에게 몰려온 시간의 무자비함 때문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과거에 할아버지는 산을 날아다니는 함흥 사나이였다.  방안에서 저리 모질게 넘어지는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역시 몸이 가볍지 않은 할머니는 한쪽 발을 절룩거리며 달려와 남편을 부축해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세상에, 괜찮아요? 어쩌나, 이를 어쩌나!” 그런 아내에게 할아버지는 소리를 질렀다. “내버려 둬, 날 건드리지 마!” 그는 아내가 자신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기라도 한 것처럼 있는 힘을 다해 아내에게 화풀이를 했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의 허리띠를 잡고 남편을 일으켜 세우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자 남편은 더욱 사납게 건드리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것은 엄청난 통증을 이겨내려는 늙은이의 고함이자. 오래된 고집과 품위를 지키기 위한 남자의 몸부림이었다. 그때 할머니는 알았다. 이게 그냥 단순한 넘어짐이 아니라는 것을. 어쩌면 지난 밤에 저승사자가 다녀간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한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할머니는 부들부들 떨면서 멀리에서 사는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 너, 너, 너희 아버지가 의자에 걸려 넘어지셨다.

-넘어지셨으면 일어나면 되지 않나요?

딸은 유쾌한 코미디언 같았다.

-얘, 그런 게 아니란다. 일어나지 못하니까 문제지.

-그럼 돌아가셨나요?

-그것도 아니란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신다. 

여간해서는 자식들의 도움을 청하는 않는 어머니라는 것을 안 딸은 그제야 사태가 심각하다고 생각했다.

-아무 데도 전화하지 마! 아내의 전화 통화를 들은 할아버지는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다.

딸은 119에 전화해 응급환자가 있다고 신고했다.

할아버지는 손목 골절과 외상후 격분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수술을 받았고, 깁스를 하고 있는 두 달의 입원 기간 동안 신문구독은 금지됐다. 교감신경을 조절하는 약물을 복용했고, 명상과 복식호흡 지도를 받았다. 딸은 어머니를 모시고 자기의 집으로 가 매일 모친과 함께 아버지의 병상을 찾아갔다. 그녀는 부모님의 빈집에 들러 문 앞에 던져놓은 신문지들을 차곡차곡 모아 문 앞에 쌓아놓은 후 아버지가 써서 테이프로 붙이려 했던 ‘신문투입 절대사절’ 종이를 현관 앞에 반듯하게 부착했다. 아버지의 의도와는 다르게 공손한 마음으로 붙였다.

할아버지가 퇴원하는 날은 딸이 새벽부터 일어나 손수 차를 말끔히 세차한 후 실내에 기분 좋은 아로마향을 조금 뿌렸다. 그녀의 남편은 장모님이 이제 장모님네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기뻐하는 눈치였다. 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세 사람이 부모님의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현관문 앞에는 차곡차곡 쌓아놓은 것 외의 더 이상 던져놓은 신문은 없었다. 딸이 현관문 비밀번호를 콩콩콩 누르고 있을 때, 어디선가 개가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파트 복도 계단 쪽에서 호리가 달려왔다. 평소에 하얀 털이 복스러웠던 호리는 때에 잔뜩 찌들어 잿빛 털을 가진 개로 변해있었다. 호리는 할아버지의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임순만 작가 · 전 국민일보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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