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탄소배출권 가격 추이.(단위: $/ton) 자료=한국개발연구원
국내외 탄소배출권 가격 추이.(단위: $/ton) 자료=한국개발연구원

[이코리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발맞춰 우리나라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상향하는 등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 나서고 있다. 하지만 국내 탄소배출권 가격이 계속 하락하면서, 핵심 과제인 에너지 전환이 지연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탄소배출권거래제는 지난 2015년 국내 도입된 이후 참여 기업과 배출량 커버리지를 꾸준히 늘려왔다. 하지만 배출권 가격은 최근 수년간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윤여창 한국개발연구원(KDI) 산업·시장정책연구부 연구위원이 지난 7월 발표한 ‘배출권거래제의 시장기능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배출권 가격은 2019년 말에서 2020년 초반까지는 주요국 배출권시장 중 가장 높은 수준이었으나, 2020년 이후 3분위 1수준으로 하락했다. 실제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가장 거래가 활발한 KAU22(2022년 배출권) 가격은 지난 1일 종가 기준 7750원으로 1년 전(2만7600원)의 30% 수준이다.

반면 해외에서는 기후 관련 규제가 강화되면서 배출권 가격이 급격하게 오르고 있다. 코로나19 직전인 2020년 초 1톤당 20유로 중반대에서 거래됐던 유럽 배출권은 코로나19 이후 가격이 급등해 올해 3월 21일에는 사상 처음으로 장중 100유로를 돌파하기도 했다. 이후 천연가스 가격 하락으로 배출권 가격도 동반 하락하면서 현재 80유로 후반대를 횡보 중이지만, 여전히 유럽 배출권 가격은 국내보다 16배가량 높은 수준이다. 

코로나19 이후 배출권 가격이 2~3배 이상 오른 해외 주요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배출권 가격이 오히려 급락하면서 기업들이 저탄소 에너지를 사용할 유인도 줄어들고 있다. 인프라 부족으로 재생에너지가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비싼 국내에서는 굳이 큰 비용을 들여 저탄소 에너지로 전환하는 것보다 화석연료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값싼 배출권을 구매하는 편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권동혁 BNZ파트너스 상무는 지난 6월 발간된 ‘기후변화와 탄소중립’ 25호에 기고한 글에서 “배출권가격이 단기적으로 급등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을 유도하기 위해서든 안정적인 가격상승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배출권 가격이 지나치게 낮으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자금 조달도 어려워질 수 있다. 정부는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과 녹색성장 촉진을 위해 지난해 1월부터 ‘기후대응기금’을 설치·운용하고 있다. 문제는 기후대응기금의 주요 재원 중 하나가 바로 배출권 판매 수입이라는 것. 배출권 가격이 지나치게 낮으면 판매 수입이 줄어 기후대응기금 마련이 어려워질 수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해 기후대응기금은 2조4594억원으로 계획됐으나 실제 확보된 것은 2조465억원(94.3%)에 그쳤는데, 저조한 배출권 판매 수입이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실제 지난해 배출권 판매 수입은 3188억원으로 당초 계획액(7306억원)의 43.6%에 그쳤다. 약 4000억원의 배출권 판매 수입 미달액만큼 기후대응기금이 덜 걷힌 셈이다. 

국내 배출권 가격이 지나치게 낮은 이유로는 배출권 이월 제한 조치가 꼽힌다. 기업은 보유한 온실가스 배출권이 실제 배출량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되면, 잉여분을 시장에 판매하거나 나중을 대비해 다음 해로 이월할 수도 있다. 문제는 기후 관련 규제가 강화될수록 배출 총량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기업이 남는 배출권을 바로 매각하기보다는 최대한 보유해두려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 배출권 공급량이 지속적으로 제한되면서 실제 배출권이 필요한 기업은 물량을 구하지 못하는 상태가 발생한다. 정부는 이러한 부작용을 막고 기업의 배출권 판매를 유도하기 위해 이월할 수 있는 배출권 수량에 제한을 두고 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국내 배출권시장의 유동성을 증대시키기 위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월 제한 조치가 배출권 가격 상승을 억제하는 주된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윤여창 KDI 연구위원은 “이월 제한은 거래시장에서의 매도를 유도하기 위해 도입된 만큼, 배출권 가격을 하락시키는 주요 원인”이라며 “또한 초과 배출권을 다음 연도 이후에 활용하는 것이 제한되어 배출권을 추가 확보할 유인이 감소한다”고 말했다. 윤 연구위원은 이어 “따라서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상향되어도 그 기대가 현재의 배출권 수요에 반영되지 않아 가격이 오르지 않는 것”이라며 “배출권거래제의 가격시그널 기능이 적절히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낮은 가격이 유지됨에 따라, 조기 감축이 충분히 효율적인 기업들조차 감축 노력을 줄이고 배출권을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정부가 배출권 이월 제한 조치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윤 연구위원은 “배출권거래제의 도입 목적을 고려하면, 2026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제4차 계획기간에는 상향된 감축목표가 반영되면서 배출권 총공급량이 급격하게 줄어들 전망”이라며 “만약 이월이 제한되지 않는다면 공급량의 급격한 감소에 따른 충격이 여러 해에 걸쳐서 분산될 수 있지만, 이월이 제한된 상황에서는 제4차 계획기간이 시작되는 2026년을 기점으로 그 영향이 단기간에 집중되어 시장 변동성이 확대되고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기업의 대응 부담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월 제한 조치가 완화되면 다시 배출권시장의 유동성이 줄어들 수 있는 만큼, 추가적인 보완장치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윤 연구위원은 “이월 제한의 완화로 인해 우려되는 거래시장의 공급 부족에 대비해 배출권의 공급 창구를 확대하고 시장 운영의 장기적 예측 가능성을 개선하는 방향의 정책이 모색될 필요가 있다”며 “배출권 가격이 지나치게 높을 경우 계획된 예비분을 공급할 수 있도록 명시적인 시장안정화 제도를 도입하고, 경매 참여 대상을 확대해 배출권이 공급될 수 있는 창구를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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