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CATL 공식 엑스닷컴 갈무리
출처=CATL 공식 엑스닷컴 갈무리

[이코리아] 중국 기업들이 배터리를 만들어도 너무 많이 만들면서 다른 나라에 저가 덤핑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과거 태양광이나 철광, 알루미늄 덤핑 때의 악몽이 재연되는 것은 아닌지 산업계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3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중국 배터리 생산 능력이 자국 수요의 2배를 뛰어넘을 것으로 추정됐다. 

FT는 원자재시장 분석업체인 CRU그룹 데이터를 인용해 “중국 배터리사들의 생산능력이 올해 1500기가와트시(GWh)에 달할 것”이라며 “이는 전기차 2200만대분으로, 중국의 올해 배터리 수요 예측치(636GWh)의 236%에 해당한다”고 보도했다.

외신은 “중국은 전기차와 대규모 에너지저장 수요를 훨씬 뛰어넘는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며 “중국 제조업체의 국제적 확장을 지원하는 막대한 보조금과 무제한 은행 대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중국에서 전기차용 배터리·에너지저장시스템(ESS) 등 ‘에너지 저장업’으로 등록된 업체 수는 약 10만 9000곳으로, 3년 전보다 2배 이상 늘었다. 

CRU그룹 샘 애드햄 배터리 분야 책임자는 “많은 제조업체가 과잉생산으로 재고를 쌓아놓고 있다”며 “지난해 중국 배터리 생산량은 550GWh로 최종 제품에 들어가 수출된 450GWh를 앞질렀다”고 말했다.

이미 발표된 중국 배터리공장 건설계획에 따르면 오는 2027년에는 과잉생산량이 내수 필요용량의 4배 가까이 급증할 전망이다. 또 2030년까지 중국 전체 자동차가 전기를 공급받기 위해 필요한 용량의 두 배로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시장 관계자들은 배터리 제조업체들이 철강, 알루미늄, 태양광과 같은 다른 산업에서 보여주는 패턴을 따르고 있다고 경고했다. 

르노가 지원하는 프랑스 배터리 스타트업 베르코르의 공동 창업자 올리비에 뒤포는 FT와의 인터뷰에서 “현재의 양상이 알루미늄 (덤핑)과 매우 유사해서 걱정이 된다. 선점 이상의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FT는 “저가 태양광 제품을 쏟아내 외국기업들의 채산성을 압박했던 방식으로 중국업체들은 배터리 해외 덤핑에 나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웨덴 배터리 기업 노스볼트의 패트릭 안드레아슨 부사장은 “유럽의 그리드 에너지저장 부분은 중국 수출(공세)에 특히 취약하다”며 “중국의 저가 배터리를 많이 수입한다면 유럽의 지속가능성이 약해질 수 있다. 큰 전략적 실수가 될 일”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배터리가 중국이 석탄에서 에너지 전환 기간 동안 간헐적인 재생 에너지로부터 전력을 지원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기에 용량 과잉에 대한 우려가 너무 크다는 지적도 있다. 골드만 삭스는 중국의 배터리 에너지 저장 요구량이 2030년까지 70배 증가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중국 배터리업체들은 서방의 공급망 다각화 전략에 따라 해외 현지 합작도 추진 중이다. 

세계시장 점유율 37%를 차지하는 CATL은 지난 2월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 포드와 기술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중국계 엔비전 AESC도 인도 타타그룹의 영국 배터리공장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할 예정이다.

중국의 배터리 과잉생산이 서방과의 새로운 갈등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FT는 “과잉생산 문제가 악화되면 덤핑 수출에 나서는 중국 배터리기업이 늘어나고, 이는 중국과 서방 간 지정학적 긴장을 고조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미국 상무부는 불법 보조금을 문제 삼아 10년 넘게 중국산 태양광 관련 제품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한편, 올해 중국 배터리 공급 과잉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면 자연히 해외 수출 물량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한국 배터리 3사가 중국 경쟁사의 저가 공세에 직접적으로 대응해야만 할 수도 있는 셈이다. 과거 태양광 패널 시장에서 벌어졌던 중국산 덤핑 사태가 배터리 산업에서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중국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탑재한 모델을 잇달아 선보이면서 우리 K-배터리 업체들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LFP 배터리는 상대적으로 주행거리는 짧지만 값이 싸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중국산 LFP 배터리는 국내 배터리사가 주로 생산하는 NCM 계열보다 20% 가량 저렴한데다 덤핑까지 하게 되면 안 쓸 이유가 없어진다. 또 이미 누적된 배터리의 경우 1,2년이 지나면 배터리 상태의 문제도 커지고 불량품 검증의 고민도 생긴다”면서 “글로벌 배터리 시장의 기본 밸류체인에 혼란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국내 배터리 업계에서는 당장 긴급한 이슈가 발생할 것으로는 보고 있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특이사항인 만큼 관심 있게 지켜보며 추이를 관망하고 있다. 

한국배터리산업협회 관계자는 5일 <이코리아>와 한 통화에서 “배터리 같은 기술집약적 산업 특성상, 수요-공급 법칙 외에 혁신성과 안정성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하고 있어, 단순 공급 과잉으로 어떤 결과가 도출될 지 예단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동차의 경우 개발부터 양산까지 보통 3~5년 걸리는데 신차 개발 단계부터 배터리 스펙을 확정해 개발, 양산하며 이미 수주된 물량만으로도 국내 배터리 업계는 초과 수요 상태인 점”이라고 말했다. 

관계자는 또 “협회 차원으로는 이런 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관련 업계의 애로사항을 지속적으로 청취하고 필요시 정부 지원을 요청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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