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 사진=뉴시스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육군사관학교가 교내에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을 외부로 옮기기로 결정하면서 논란이 격화되고 있다. 언론은 대체로 정부가 불필요한 이념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며, 소모적인 논쟁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육군사관학교는 지난달 31일 보도자료를 통해 교내 충무관 입구에 설치된 독립전쟁 영웅 5인 흉상 중 홍 장군의 흉상은 외부로, 나머지 흉상은 교내 다른 장소로 이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육사는 “홍범도 장군 흉상은 육사의 정체성과 독립투사로서의 예우를 동시에 고려해 육사 외 독립운동 업적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적절한 장소로 이전하고, 홍 장군 외 5위의 흉상은 육사 교정 내 적절한 장소로 이전할 것”이라며 이는 “각계각층 의견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육사가 홍 장군 흉상을 이전하기로 결정한 배경에는 홍 장군의 소련 공산당 가입 및 활동 이력 등이 놓여있다. 국방부는 지난달 28일 “육사의 전통과 정체성, 사관생도 교육을 고려할 때 소련공산당 가입 및 활동 이력 등 논란이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육사에, 사관생도 교육의 상징적 건물인 충무관 중앙현관에 있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논란이 있어 왔다”며 흉상 이전을 추진하는 이유를 설명한 바 있다.

◇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 보도, 언론 초점은 ‘尹心’?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뉴스 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서 ‘홍범도’를 검색한 결과, 지난달 28일부터 9월 1일까지 총 1029건의 기사가 보도된 것으로 집계됐다.

홍 장군 흉상 이전 논란 관련 기사에 가장 자주 등장한 연관키워드는 ‘육군사관학교’였으며, 그 뒤는 ‘국방부’, ‘독립운동’ 등의 순이었다. 홍 장군과 함께 육사에 흉상이 설치된 ‘김좌진’, ‘이범석’, ‘지청천’ 등 독립운동가들의 이름도 연관키워드 목록에 포함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름도 홍 장군 흉상 이전 관련 기사에 자주 등장했다. 이는 홍 장군 흉상 이전에 대한 윤 대통령의 입장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달 25일 국방부가 홍 장군 흉상 이전 방침을 발표한 뒤에도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던 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열린 비공개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에게 해당 문제에 대해 “무엇이 옳고 그른지 생각하고 판단해 보라”며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이 처음 홍 장군 흉상 이전 문제에 대해 직접 언급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날 ‘홍범도’ 관련 기사는 이번 주 들어 가장 많은 244건이 보도됐다. 다만 대통령실은 논란이 확산되자 “윤 대통령은 오늘 국무회의를 포함해 지금까지 이 문제와 관련해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한 적이 없다”라고 해명했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하루 전인 28일 열린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 모두발언에서도 “국가에 정치적 지향점과 국가가 지향해야 될 가치에서 일 중요한 것이 이념”이라며 “명확하게 방향 설정을 하고, 우리 현재 좌표가 어디인지를 분명히 인식해야 우리가 제대로 갈 수가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경향신문은 지난달 31일 기사에서 “국방부가 논란을 무릅쓰고 홍 장군 흉상 이전을 강행한 배경에는 윤 대통령의 이념적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며 “윤 대통령은 기회가 될 때마다 분단 현실에서 자유민주주의 가치가 중요하다며 북한을 공산전체주의로 규정해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국방부가 홍 장군의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하면서도 소련공산당 가입 이력을 문제 삼은 것과 맞닿아있다”고 분석했다.

 

8월 28일부터 9월 1일까지 보도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 관련 기사의 연관키워드. 자료=빅카인즈
8월 28일부터 9월 1일까지 보도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 관련 기사의 연관키워드. 자료=빅카인즈

◇ 언론, 홍범도 흉상 이전 논란에 “편협한 발상” 비판

언론은 대체로 홍 장군 흉상 이전 논란과 관련해 정부에 비판적인 논조를 보이고 있다. 보수성향의 매체들조차 홍 장군의 공산당 이력에 대한 시비가 편협하다며 소모적 논쟁을 중단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문화일보는 지난달 28일 사설에서 “소련 공산당 이력의 홍 장군이 논란의 핵심으로, 육사가 지난 25일 그를 포함한 5인의 흉상을 ‘교내 다른 장소나 교외로 이전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힌 것부터 편협한 발상”이라며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국회에서 ‘육사에 공산주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서 되겠느냐는 지적이 있었다’고 한 것도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문화일보는 “(홍 장군의) 1927년 소련 공산당 입당은 이념적 선택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처한 환경에 따라 사회주의 진영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것도 자연스러웠던 시기”라며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카자흐스탄 지역으로 강제이주 당한 그는 해방 전인 1943년 현지에서 별세했다. 북한 정권이 태어날지 여부조차 몰랐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 또한 이날 사설에서 “홍범도 장군이 1927년 소련 공산당에 가입하고 모스크바 국제공산당 대회에 참석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소련 치하에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고 1937년엔 스탈린에 의해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당하는 고통을 겪었다”며 “북한과 아무 관련이 없고 반국가적 활동을 한 적도 없는 홍 장군의 공산당 가입 경력만 문제 삼는 것은 이념적이고 편협하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31일 사설에서도 “느닷없이 나온 홍범도 등의 흉상 이전에 어리둥절해 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밀어붙이기보다는 시간을 갖고 검토하는 게 불필요한 분란을 막는 길”이라며 “흉상 문제 평지풍파는 국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때아닌 이념 논쟁으로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초래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경향신문은 지난달 29일 사설에서 “1987년 직선제 도입 후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보다 이념을 앞세운 대통령은 윤 대통령이 처음”이라며 “윤 대통령은 왜 이념전쟁에 매몰돼 국민통합과 협치를 포기하고 나라를 두 동강 내려는가”라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독립운동 영웅’인 홍 장군에 대한 예우는 보수·진보를 떠나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사안이다. 이런 사안까지 철 지난 ‘자유 대 공산’ 구도를 소환하는 것은 국가정체성 바로 세우기가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색깔론일 뿐”이라며 “윤 대통령은 민주화 시대를 거슬러 반공을 국시로 삼았던 권위주의 시절로 역사의 시계추를 되돌리려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한국일보는 30일 사설에서 윤 대통령의 국민의힘 연찬회 발언에 대해 “최근 ‘공산전체주의’와의 대결을 집중 언급해온 대통령이 여권의 결속과 ‘이념투쟁’ 강화를 주문한 것”이라며 “이런 발언은 국민 공감을 위한 노력, 의지와는 거리감이 커 보인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날 선 발언 내용들은 국민 입장에서 난감하고 당혹스러운 게 사실”이라며 “분단과 전쟁을 겪은 우리 사회가 이념과 역사 문제에 예민한 건 사실이지만, 과도한 재단과 편 가르기는 우리 사회 성숙과는 정반대의 길”이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