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 싱가포르호. 사진=뉴시스
HMM 싱가포르호.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취임 이후 산적한 구조조정 과제를 처리해온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이 HMM 매각을 앞두고 진퇴양난에 빠졌다. 해외 기업을 인수 후보에서 배제해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확산되는 가운데, 국내 기업의 인수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3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KDB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 등은 동원산업, LX인터내셔널, 하림-JKL파트너스 컨소시엄 등 세 곳을 적격인수후보(숏리스트)로 선정한 반면, 지난 21일 독일 해운사 ‘하팍로이드’(hapag-lloyd)에게는 최종입찰 자격을 주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팍로이드의 숏리스트 탈락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다. HMM은 한진해운 파산 후 남은 국내 유일의 해운선사다. 만약 해외 기업인 하팍로이드가 최종입찰 자격을 받아 HMM에 대한 실사를 진행할 경우 경영상의 중요 정보가 해외로 누출될 우려가 있기 때문. 강석훈 산은 회장은 지난 6월 20일 열린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국적선사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만큼 HMM 인수를 통해 한국 해운산업에 기여하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고 자본·경영 능력을 갖춘 업체가 인수 기업이 되길 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해운업계도 HMM을 해외 기업에 매각해서는 안 된다며 반대 목소리를 내왔다. 앞서 한국해양산업총연합회와 부산항발전협의회는 지난 23일 성명을 내고 “국책은행인 KDB 산업은행에서 독일 선사인 하팍로이드를 예비입찰사로 포함시킨 것에 대해 500만 해양인들은 분노를 금치 못하는 바이다”라며 “만일 HMM의 해외 선사 매각이 성사될 경우 우리의 컨테이너 운송자산, 터미널 및 수십 년간 쌓아온 해운물류 노하우 등의 정보자산 등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국가자산이 해외로 유출되어 경제 및 안보 측면에서 우리나라에 큰 손실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하팍로이드가 예비입찰에 참여한 기업 중 가장 풍부한 자금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하팍로이드의 현금성 자산은 6월말 기준 74억 달러로 우리 돈으로 약 9.8조원에 달한다. 반면 예비입찰에 참여한 국내 기업의 경우 LX인터내셔널이 LX그룹 기준 약 2.4조원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림과 동원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각각 1.6조원, 6000억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HMM의 매각가격은 최소 5조원 이상으로 전망되는데, 예비입찰에 참여한 기업 중 외부 자금 조달 없이 자체 현금만으로 HMM을 인수할 능력이 있는 곳은 하팍로이드가 유일하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하팍로이드 인수를 지지하는 성명을 준비 중이던 HMM 소액주주들은 하팍로이드 탈락 소식이 알려지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HMM 소액주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하팍로이드 탈락 이유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나머지 기업은 무슨 근거로 해운업 발전에 기여한다는 건가”, “소액주주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결정”, “주가 떨어지라고 일부러 그러는 것 같다” 등 거친 성토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일부 소액주주들은 산은이 하팍로이드의 본입찰 참여 기회를 박탈한 것은 배임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소액주주들은 이미 산은이 지난달 1조원 규모의 HMM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하면서 주가가 급락한 것에 상당한 불만을 품고 있다. 당시 영구채 전환가액(5000원)보다 HMM 주식(1주당 약 2만원 상당)이 4배가량 높았던 만큼, 산은이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을 경우 배임 논란이 불거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영구채의 주식 전환 직전인 지난 20일 2만300원이었던 HMM 주가는 이후 3거래일 연속 큰 폭으로 하락하며 25일 종가 기준 1만6300원까지 급락했다. 29일 종가 기준 HMM 주가는 1만7500원으로 이전 가격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소액주주들은 HMM 주식 전량 매수가 가능한 유일한 원매자인 하팍로이드를 숏리스트에서 배제하는 것은 공적자금 회수를 포기하는 것이라며 배임 소지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산은이 배임 소지 때문에 소액주주들의 피해에도 불구하고 영구채 주식 전환에 나선 만큼, 같은 논리로 자금력이 풍부한 하팍로이드도 숏리스트에 포함시켜야 했다는 것. 

숏리스트에 포함된 국내 기업이 HMM 인수 절차를 완주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된다. 숏리스트에 포함된 세 후보 중 외부 자금 조달 없이 HMM 인수가 가능한 곳은 없다. LX인터내셔널은 모그룹의 유상증자 및 재무적 투자자(FI) 섭외, 하림은 사모펀드인 JKL파트너스와의 컨소시엄, 동원은 한국투자금융그룹을 통해 모자란 자금을 수혈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급격한 금리상승으로 자금조달에 따르는 이자비용이 급증한 상황에서 국내 기업의 HMM 인수전 참여에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강 회장이 구조조정 숙제를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HMM 매각을 졸속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강 회장은 지난해 취임 후 대우조선해양과 쌍용자동차 매각을 마무리한 뒤 최근에는 하나금융지주를 KDB생명보험 매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는 등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강 회장은 취임 1주년을 맞아 가장 뜻깊은 성과로 ‘기업구조조정’을 꼽으며, HMM 매각도 신속하게 추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반면, 한국해양기자협회(해기협)는 지난 28일 “새우가 고래를 삼키는 HMM 매각에 반대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매각 참여기업들의 자체 인수자금이 최대 1조5000억원에 불과해 HMM의 지분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4~5조 원 가량을 사모펀드로부터 조달할 수 밖에 없다”며 “사모펀드의 속성상 어렵게 회생한 국내 유일의 원양선사인 HMM이 다시 망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해운업계에서는 ‘졸속’ 매각에 대한 우려가, 소액주주들로부터는 배임 소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진퇴양난에 빠진 강 회장이 HMM 매각 성공을 위해 어떤 묘수를 찾아낼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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