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24년도 예산안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24년도 예산안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중국의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안(碧桂園·컨트리가든)이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에 이어 또 다른 부동산업체 헝다(恒大·에버그란데) 그룹이 미국 맨해튼 파산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차이나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이에 그 여파의 국내 확산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당장 직접적인 악영향은 적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24일 정부·금융권 등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추경호 부총리 지시로 기재부 경제정책국 내 '중국경제 상황반'을 설치하는 한편, 관계기관간 고위급 소통 채널에서도 중국 상황을 상시 검토하기로 했다. 

중국의 부동산발 위기론이 불거지면서 국내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막기 위해 24시간 모니터링 강화에 나섰다. 

시장 심리가 지나치게 악화한다고 판단할 경우 범정부 차원의 시장점검회의나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소집해 상황에 맞는 대응 조치를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우리나라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의 경기 부진이 심상치 않은 가운데 부동산 업체 파산 위기까지 직면하며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주요 국제기관들은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한 바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지난 7월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지난 4월보다 0.2%포인트 낮춘 1.3%로 제시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6월 직전 3월 전망치보다 0.1%포인트 낮은 1.5%의 전망을 내놨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지난 4월 1.5%에서 7월에 1.4%로 하향했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은행은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종전 전망치 1.4%를 유지했다. 

한국은행은 24일 발표한 '5월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1.4%로 제시했다. 지난 5월 발표한 전망치 1.4%와 동일하다. 다만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2.3%에서 2.2%로 1%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미국의 경제 성장세가 양호함에 따라 우리 경제도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신 올해 경제전망에서 미국 경제가 올해 1.8% 성장할 것으로 0.2%포인트 상향 수정했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미국의 2분기(4월~6월) 실질 국민총생산(GDP) 규모가 직전분기 대비 후 연 환산으로 2.4% 커졌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미국이 중국산 의류·완구·기계류·전자제품 수입을 24% 줄이면서 중국은 미국의 3번째 수입국으로 밀려났다. 중국이 1위 자리를 뺏긴 건 2006년 이후 17년 만에 처음이다. 

반면 올해 우리나라 1~3월 수출에서 미국 수출 비중은 17.7%로, 20년 전(2003년 17.7%) 수준까지 올라섰다. 우리의 수출 상위 10개국 가운데 최근 5년간 수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한 나라는 미국이 유일하다. 

이와 관련해 정여경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이 주도해 신공급망을 구축하는 시대 흐름 속에서 중국의 위상이 약해질 전망"이라며 "길게 보면 글로벌 교역시장에서 중국과의 수출 경쟁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가운데 태양광 등 업종에서 한국 업체들의 반사 수혜가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실제 중국은 그동안 만성 적자를 보여 온 하이테크 제품 및 자동차 교역에서 지난해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국별로는 대만 > 한국 > 일본 순으로 적자가 컸지만 미국에 대해서는 흑자를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의 대미 주력 수출품은 자동차(19.7%, 품목 비중, 2021년 기준)와 자동차 부품(7.2%), 반도체(9.4%), 컴퓨터(5.7%)다.

정부는 위기 대응과는 별도로 중국인 관광 활성화 대책을 9월초 발표할 예정이다.

6년 5개월 만에 재개된 중국인의 단체관광을 예년 수준으로 끌어올려 내수와 여행수지에 도움이 되게 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현안질의에 참석해 "중국 경제가 생각보다 회복이 느린 것과 중국의 단체관광객 허용의 영향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부동산 리스크와 그 여파의 국내 확산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당장 직접적인 악영향이 불어 닥치진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중국 무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수출 방식의 변화와 새로운 시장 개척 통해 리스크 완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업계에선 중국의 성장 둔화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과거보다는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대중 수출 의존도가 20% 아래로 내려가는 등 무역 환경이 과거와 달라진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6년 대중국 수출 비중이 25%에서 2022년 23%로 소폭 줄어들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코스피 시가총액의 33%에 해당하는 기업(자동차·부품·건설자재·철강 업종 중심)들의 중국생산법인 매출 비중은 2016년 16%에서 2022년 5%로 급감했다. 중국 시장이 침체한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비율이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 발간한 '우리 경제의 중국 리스크 점검' 보고서에서 "대중 수출에서 중간재가 차지하는 비중(79.6%)이 소비재(3.4%)보다 크다. 중국 내수가 1% 감소해도 한국 GDP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에 대한 국내 수출품들은 최종재가 아닌 대부분 중간재다. 최종재는 중국 경제가 나빠지면 바로 영향을 받지만 중간재는 상황이 다르다"면서 "중국에 대한 수출이 주는 건 첫 째로 중국 경기가 나빠진 것이고, 둘째로는 한국산이 중국 중간재에 비해 품질 대비 가격이 비싼 이유 등의 혼재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중국 부동산 발 디폴트 리스크 관련 중국 경제위기 우려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다. 

박재곤 산업연구원 글로벌산업실 선임연구위원은 24일 <이코리아>와 한 통화에서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중국 부동산 기업들은 중국 전체 시장규모에서 은행 자산 중 5% 정도에 불과하다. 부정적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나 넓게 보면 중국 경제 전반에 큰 문제는 아닐 수 있다"며 "전 세계적인 경기불황과 더불어 터진 문제고, 또 중국 정부가 2020년부터는 부동산 기업들의 재무건전성을 위한 3가지 레드라인 설정 등 전방위 규제를 통해 정비 중에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섣부른 ‘차이나 디리스킹’은 실익이 없을 뿐 아니라 한국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반도체·배터리·희토류의 경우 중국이 지난 10년간 아프리카 등에 투자해서 광산 채굴권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5년간은 대체하기 어려울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경제는 내수 크기가 크지 않아 수출을 통해 성장을 도모해 왔다.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는 중장기적으로는 줄여나가는 게 맞다"면서도 "중국에 너무 의존해도 문제지만 중국을 제외하고 마땅한 대체시장이 없는 산업 구조도 갖고 있다. 다변화가 필요하지만 당장은 쉽지 않은 문제"라고 전했다. 

한편, 정부는 하반기 수출 회복과 상반기의 2배가량 경기 반등을 이루는 '상저하고’ 흐름에 대한 전망에는 변화가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6일 기획재정부 기자실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하반기에는 1.7~2.0%로 상반기 경기 흐름의 두 배 정도 회복세를 전망한다"며 "중국 경기의 불확실성과 글로벌 금융 불안, 유가 급등 등 불확실한 요인들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으나, 우리 경제의 전반적인 경기 전망에는 변화가 없다"고 설명했다. 

기재부는 여전히 단기 부양을 위한 재정 동원에는 선을 긋고 있다. 긴축 재정 기조 가운데서도 경기부양책 도모 및 세수 부족 상황 등의 당면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 상황이다. 대신 민간 투자 활성화를 통한 경제 체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겠다는 방침이다. 

추경호 부총리는 지난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빚내서 재정을 확대해 경기 부양하는 것이 바로 모르핀 주사다. 이렇게 하면 경제가 죽는다. 민간 투자를 활성화해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그간 민간 투자 활성화를 위해 대기업 감세를 포함한 적극적인 감세 정책을 썼다. 하지만 경제가 활성화되기 위해선 세금 감소가 소비나 투자로 연결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9월 참여연대의 '월간 복지동향'을 통해 "전방위인 감세정책은 대기업, 고자산계층에 이익을 안겨주지만 그러한 정책이 낙수효과를 일으켜 투자가 증가하고 좋은 일자리가 증가할 가능성은 낮다"며 "현재와 같이 노동에 대한 보호가 약한 수준에서는 기업이 설령 투자를 늘리고 일자리를 늘린다고 해도 그것이 좋은 일자리일 가능성도 낮으며 설령 좋은 일자리라 해도 고숙련 소수에게 돌아갈 것이므로 양극화 심화일 것이다. 그만큼 이러한 정책은 부작용이 크다"고 말했다. 

특히 차이나 리스크 등 외생변수로 경기 침체가 심화될 때 세금 감소분은 소비로 연결되지 못한다. 소득세의 감세 혜택이 주로 돌아갈 고소득 부유층은 이미 소비를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감세해준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소비를 늘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경기 저점을 통과하고 있는 국내 경기의 경우 중국 리스크가 증폭된다면 하반기 국내 경기의 반등 지속성 혹은 반등 속도를 장담하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차이나 리스크를 기회로 삼아 긴축 재정에서 오히려 경기부양을 통해 난국을 헤쳐 나가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IMF 금융위기 당시 긴축재정을 했다면 국내 경제가 어떻게 됐겠느냐. 이명박 정부 시절 당시 최고 수준의 재정 지출을 단행했기에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을 넘어갈 수 있었다"면서 "긴축재정으로 인해 가계부채가 늘어나고, 또 부동산 경기도 살리려다 보니 가계부채는 더 늘어나는 상황이다. 꼭 필요할 때 빚을 내는 것도 필요한데, 그걸 안 해서 국내 경제가 덜 성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IMF나 OECD 보고서를 보면은 재정 건전성이라는 단어 대신에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둔다. 부채도 무조건 줄이는 게 최선이 아니라 절묘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가장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라면서 "현 정부가 전 정부의 재정 확장을 비판하며 국가 재정 지출을 줄이겠다는 정책 발표에 매여 스스로 딜레마에 빠진 것이 아닌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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