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하반기 ‘상저하고’에 대한 기대감이 점차 낮아지는 가운데, 경제 회복을 위한 재정정책을 두고 여야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야당은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재정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여당은 재정 건전화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앞서 지난 22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25년 만에 일본에 역전당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며 “재정이 가장 필요한 경기침체기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감나무 밑에서 홍시가 떨어지기만 기다린다”고 비판했다. 진선미 민주당 의원 또한 “세수 결손으로 재정지출이 축소되면 성장 하방 위험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정부는 재정 투자를 고민하지 않고 여전히 재정 건전화에만 집중한다”고 지적했다.

경기회복을 위해 재정 확대가 필요하다는 야당의 지적에 정부는 재정 건전화가 우선이라며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우리 재정 상황이 녹록치 않다”며 “단기적 부양을 위해서 재정을 쉽게 동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했다. 추 부총리는 이어 “민간이 세계시장에 진출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며 “대통령도 같은 선상에서 생각하고 같은 방향의 메시지를 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야당이 재정 확대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 경제가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액은 503억3000만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16.5% 감소했는데, 이는 지난해 10월부터 10개월 연속으로 줄어든 것이다. 무역수지 또한 15개월 연속으로 적자를 기록하다 지난 6월에야 흑자로 전환했다. 2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동기 대비 0.6% 증가했지만, 이는 소비와 투자, 수출이 모두 줄었음에도 수입이 더 크게 줄어 만들어진 ‘불황형 성장’으로 해석되고 있다. 

‘상저하고’에 대한 기대감도 이미 찾아보기 어렵다. 실제 국내외 주요 기관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조정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5월 올해 실질 GDP 기준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6%에서 1.4%로 내렸으며, 한국개발연구원도 이달 1.8%에서 1.5%로 경제성장률 전망을 수정했다. OECD와 IMF 또한 최근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1.5%, 1.4%로 제시했는데 이는 기존 전망치보다 0.1%포인트 하락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가 재정 확대에 선을 그은 것은 재정건전성 지표가 악화하는 상황에서 세수마저 줄어들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박명호 홍익대학교 교수는 지난 6월 ‘나라재정’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코로나19 기간 한국 정부부채가 다른 국가에 비해 큰 폭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박 교수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한국 일반정부 부채 비율(D2)은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42.1%에서 2022년 53.3%로 12.2%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IMF가 선진국으로 분류한 국가들의 같은 기간 평균 D2 상승률(5.4%포인트)의 두 배가 넘는다. 

한국의 정부부채 비율은 선진국 평균(72.8%)보다는 낮지만 오름세가 가파른 데다, OECD 회원국 중 한국과 같은 비기축통화국 평균(47.1%)에 비해서는 높다. 박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의 재정은 언뜻 보기에 다른 나라보다 튼튼해 보인다. 그러나 그 내면을 조금만 들여다봐도 전혀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며 “특히 우리 사회가 당면한 인구구조 변화 및 저성장 추세 등을 고려하면 특단의 재정적 조치가 없다면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재정은 전혀 지속 가능하지 않을 수 있음을 국내외의 많은 기관이 경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수 감소도 문제다. 기재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누적 국세수입은 178.5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9.7조원이나 감소했다. 특히 경기침체로 기업 실적이 악화되면서 상반기 법인세 수입(46.7조원)이 전년 동기 대비 16.8조원(-26.4%)이나 줄어들었다.

다만, 정부가 재정 건전화를 주장하면서 동시에 감세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정부는 지난 7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며 종부세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작년 수준으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해 종부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공정시장가액비율을 한시적으로 하향했는데, 올해 부동산 시장이 위축되며 세부담이 줄어든 만큼 공정시장가액비율을 다시 높여 세수를 추가 확보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정부는 공정시장가액비율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유력한 세수 확보 수단 하나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세수 부족을 우려해 건전재정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세수 확보를 위한 대책은 마련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나라살림연구소는 최근 지난해 세제 개편안 및 반도체 등 세액공제 확대 등을 고려하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오는 2028년까지 6년간 총 89.3조원의 세수가 감소할 것이라는 분석을 발표했다. 나라살림연구소는 “세수 감소와 재정건전성 두마리 토끼는 동시에 잡을 수 없으며, 이는 최근 역대 최악의 세수결손을 통해 증명되고 있다”며 “감세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국민에게 재정건전성과 감세는 동시에 추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솔직히 시인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추 부총리 또한 지난 22일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강준현 민주당 의원이 올해 세수 결손에 대해 묻자 “올해 세수는 아직 정확히 추계하고 있지는 않지만, 6월까지의 수치보다는 세수 결손이 더 크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답했다. 세수 부족과 건전재정, 경제회복이라는 서로 다른 목표 사이에서 정부가 균형잡힌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