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징기업 중 한계기업 비율 추이. 자료=한국경제인협회
국내 상징기업 중 한계기업 비율 추이. 자료=한국경제인협회

[이코리아] 고금리 기조가 계속되면서 이자조차 제대로 내기 어려운 ‘한계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하루 남겨둔 가운데, 국내 기업의 부실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금리 기조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3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집계 가능한 국내 상장법인(코스피·코스닥) 1665개사의 올해 1분기 이자보상배율을 분석한 결과, 1을 넘기지 못한 기업이 730개로 전체의 43.8%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자보상배율은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값으로, 1을 넘지 못한다는 것은 해당 기업이 번 돈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에프앤가이드 조사 기준 지난해 이자보상배율 1 미만 기업 비율은 33.7%로, 올해도 고금리 기조가 계속되면서 부실기업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3년 연속으로 이자보상배율이 1을 넘지 못해 생존이 어려운 상황에 처한 ‘한계기업’ 비중도 증가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연)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상장사 중 17.5%가 한계기업인 것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지난 2016년(9.3%)보다 8.2%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또한 지난달 발표한 ‘2023년 2분기 시중 자금흐름 동향과 주요 이슈 점검’ 보고서에서 국내 외부감사대상 비금융 법인 가운데 한계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4.4%로 2018년(9.8%) 대비 4.6%포인트 증가했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2018~2022년 일부 업종 부진, 트렌드 대응 실패, 양극화 등으로 국내 한계기업이 지속적으로 증가했다”며 “코로나19 충격 완화를 위한 정책적 지원 및 금리하락 등으로 한계기업 구조조정이 지연된 점도 최근 한계기업을 증가시킨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이자 부담에 짓눌린 기업의 연체율도 상승하는 추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기업대출 연체율은 지난 6월 기준 0.37%로 전년 동월 대비 0.15%포인트 상승했다. 대기업 연체율은 0.11%로 전년 동월 대비 0.03%포인트 하락했지만, 중소기업 연체율은 같은 기간 0.24%에서 0.43%로 0.19%포인트 상승했다. 

하반기 국내 기업의 실적 개선 전망도 밝지 않다. 유명간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지난 22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최근 국내 기업들의 이익 모멘텀은 부진한 모습”이라며 “5월 말부터 반도체 업종을 중심으로 2024년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상향 조정 흐름을 보였지만, 7월 말 이후에는 다시 정체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유 연구원은 이어 “이익모멘텀 둔화는 당분간 지속될 수 있어 실적 장세로의 전환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매출이 크게 늘어나기 어려운 환경이고, 남은 하반기 실적 시즌에는 기업들의 재고 문제가 다시 부각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기업 실적이 악화되고 한계기업이 늘어나는 배경에는 가파른 금리상승이 놓여 있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발표한 ‘금리 기조의 구조적 전환 가능성과 기업부채’ 보고서에서 “올해 상반기는 금리상승으로 인한 여러 불안 요소가 시장의 불확실성을 확대했다”며 ▲이자 상환 부담의 급격한 증가에 따른 단기 영업현금흐름 악화 및 부실·한계기업의 도산 우려 증가 ▲레고랜드 사태 등 자금시장 경색에 따른 기업의 재금융 비용 상승 ▲할인율이 상승에 따른 혁신 기업의 자금조달 환경 악화 등을 시장의 주요 불안 요인으로 꼽았다. 

이처럼 고금리에 따른 기업 부담이 가중되면서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를 기대하는 심리도 확산하는 모양새다. 한국은행은 지난 2월부터 기준금리를 3.5% 수준에서 네 차례 연속 동결한 상태다. 시장은 24일 열릴 금통위 회의에서도 동결을 예상하고 있으나, 연내 인하 가능성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식지 않고 있다.

문제는 연내 금리인하 가능성을 확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0.25%포인트의 금리인상을 단행하면서 한미 금리차가 역대 최고 수준인 2%포인트까지 벌어진 상태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상승률이 2.3%로 지난 2021년 6월 이후 25개월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는 등 물가상승세가 둔화되고 있다지만, 한은의 목표인 2%와는 아직 거리가 있는다. 또한 하반기 물가가 반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참석해 “7월 기준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2.3%, 근원 물가 상승률이 3.3%였다”며 “8∼9월 다시 3%대가 될 가능성이 있고, 그 뒤부터 천천히 떨어져 내년 하반기쯤 2% 중반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여느 때보다 급격한 이번의 금리 인상은 탈세계화, 탈탄소화, 인구구조 변화 등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구조적 상승 요인이 촉발한, 중앙은행의 불가피한 물가 대응”이라며 “단기에 상황의 반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인 만큼, 과거의 저금리 기조보다 다소 높은 수준에서 명목균형금리의 유지 가능성을 가정하고 보수적인 시나리오 산정이 필요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다만 최근 악화한 기업부채 리스크가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연구위원은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상장기업의 단기적인 채무불이행 위험을 측정하는 현금 유동성 위험은 비교적 안정적인 범위 내에서 소폭 반등한 정도로 추정된다”며 “장·단기 채무의 불이행 위험을 추정에 모두 반영한 부도 위험 역시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단기 자금압박에 직면할 위험이 있는 기업은 3.17%로 집계됐는데, 이는 지난 2019년(3.22%)과 비슷한 수준이·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6.6%)의 절반 수준이다. 

이 연구위원은 “2022년 하반기부터 기업의 대출 규모가 빠르게 증가한 점은 분명 예의주시할 요인이지만, 회사채 시장의 일시적 경색으로 기업이 사채의 발행보다 대출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부채 구성을 변화한 영향이 크게 작용한 점 또한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최근 시장금리 상승과 기업의 대출의존도 확대 지적에도 불구하고 장단기 채무의 부실화 위험이 시스템적으로 확산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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