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금융감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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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 가계부채 리스크가 점차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가계대출 관리 강화를 요청하고 나섰다. 하지만 정부가 그동안 추진해온 대출규제 완화 정책이 최근 가계대출 증가의 원인이라며 엇박자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7일 은행연합회 및 17개 은행 은행장과 간담회를 열고 향후 가계부채 관리방향 등에 대해 논의했다. 이준수 금감원 은행‧중소서민 부원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향후 금리상승 기대 약화, 자산가격 상승 기대감 등이 확산될 경우 가계대출 증가 속도가 더욱 빨라질 수 있는 만큼 미시건전성 및 거시건전성 측면에서 선제적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최근 증가세가 빨라지고 있는 가계대출이 급격히 확대되지 않도록 관리를 강화해달라”고 말했다.

이 부원장은 이어 “무엇보다 일선 영업현장에서 DSR 등 현행 대출규제가 제대로 적용되지 않거나 우회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점검·관리할 필요가 있다”며 “전체 가계대출 및 특정 차주군에 대한 대출 증가 규모·속도가 해당 은행의 여신정책, 리스크관리 정책, 자본관리 계획 등에 부합하는 범위 이내에서 유지되도록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부원장이 은행에 가계대출 관리 강화를 요청한 이유는 최근 가계대출 증가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강력한 대출규제로 줄어들었던 가계부채는 지난 4월부터 넉 달 연속으로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은 1068조1430억원으로 전월 대비 5조9553억원 증가했다. 이는 6월 증가 폭(5조8296억원)보다도 1257억원 많은 것으로, 지난 2021년 9월 이후 22개월 만에 가장 큰 수준이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올해 1분기 기준 102.2%로 조사대상 34개국 중 가장 높았다. 2위인 홍콩(95.1%)도 100%를 넘지는 않는 수준으로, 가계부채가 GDP보다 많은 국가는 한국뿐이다. 

특히, 부동산 시장 분위기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주택담보대출이 크게 늘고 있다. 지난달 주담대 잔액은 820조7718억원으로 전월 대비 6조원 증가했다. 윤옥자 한은 금융시장국 시장총괄팀 차장은 “수도권 중심 아파트 매매거래 증가로 가계대출이 큰 폭 증가세를 지속하고 있다”며 “아파트 거래량 증가는 2∼3개월 시차를 두고 주담대 실행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주택자금 수요 지속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가계부채 리스크가 다시 악화하면서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대응을 요청했지만, 정부의 정책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가계부채 문제 해결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시민단체 등은 정부의 대출규제 완화가 최근 가계부채 리스크 악화의 주요 원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지난 8일 논평을 내고 “가계부채의 심각한 상황과 한국은행의 축소 방안 제시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는 가계부채를 증가시킬 위험이 있는 부동산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있다”며 “엇박자 정책으로 인해 올 1분기 가계부채 증가가 진정되나 싶다가 2분기에 다시 12.4조원 증가세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주담대가 전체적인 가계대출 증가 추세를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부동산 경기 연착륙 대책이 가계부채 리스크를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정부는 지난 1월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고 서울 강남·서초·송파·용산을 제외한 전국 모든 지역에 대해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해제하는 한편, 전매제한 기간도 강남3구와 용산은 3년, 그 외 지역은 1년으로 대폭 줄이기로 했다. 또한,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고 주택소유자에게 무순위 청약을 허용하는 내용도 부동산 대책에 포함됐다.

특례보금자리론, 50년 만기 주담대 등 정부가 도입한 대출규제 완화 방안 등도 최근 가계대출 반등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영끌족’의 이자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한 특례보금자리론은 소득 제한 없이 9억 미만 주택에 대해 연 4%대 금리로 최대 5억원까지 대출해주는 제도로 가장 까다로운 대출 규제인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이 적용되지 않는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대출규제 완화 공약의 일환으로 도입을 추진한 50년 만기 주담대는 만기가 길어질수록 대출 총액에 늘어나는 구조 때문에 가계대출 증가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제야 50년 만기 주담대가 DSR 규제 회피 수단으로 악용될 것을 우려해 ‘만 34세 이하’의 연령 제한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부의 역전세난 대책이 가계부채에 미칠 영향도 우려된다. 정부는 지난달 전세금 반환목적의 대출규제를 1년간 한시적으로 완화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집주인의 전세자금 반환목적 대출에 대해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40% 대신 DTI(총부채상환비율) 60%를 적용하고, 임대사업자의 경우 RTI(임대업자이자상환비율)를 1.25~1.5배에서 1.0배로 하향조정하겠다는 것. 정부는 역전세난 대응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며 가계부채 관리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규제 완화가 계속된 가계대출 증가 추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정부가 대출규제 완화로 가계부채 리스크를 악화시켜놓고 은행권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가계대출 증가 추세를 둔화시키려면 은행의 심사 강화보다 정부의 대출규제 강화가 우선해야 한다는 것. 

한국은행은 이미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서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하며, 대출규제 강화를 해법 중 하나로 제시한 바 있다. 강환구 한은 경제연구원 금융통화연구실장과 이경태 부연구위원은 지난 17일 발표한 ‘장기구조적 관점에서 본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과 영향 및 연착륙 방안’ 보고서에서 “대부분의 대출을 DSR 산정 대상에 포함시키는 한편, DSR 규제도입 이전 이루어진 대출의 만기연장분에 대해서도 DSR을 점진적으로 적용함으로써 가계 간 DSR 규제 형평성을 제고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며 “LTV 수준별 차등금리 적용, 만기일시상환방식 대출에 대한 가산금리 적용 등을 통해 가계가 과도한 대출을 받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도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한편, 참여연대는 지난 8일 논평을 통해 “정부는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으로 가계부채를 더욱 증가시키는 정책을 중단하고, 한국은행이 제시한 거시정책 방안을 즉각 실시해야 할 것”이라며 “한국은행도 제안만 하고 뒷짐지고 있지 말고 정책당국과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정부의 정책의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가계부채 리스크 해소’와 ‘부동산 경기 연착륙’이라는 두 가지 과제 사이에서 어떤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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