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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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 앞선 글들에서, 대학이 상당한 수준의 자율권을 갖고 입학생을 선별하는 동안 정부의 할 일은 대학 입시가 공정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대학을 기술적으로 돕고 행정적으로 감시하는 것이라 했다. 이는 ‘소극적’인 차원에서 정부의 역할이라 할 수 있겠다. 

재차 언급하지만, 필자는 정부가 대학 입시 제도의 모든 것을 관할하는 일에는 긍정적이지 않다. 관료가 모든 것을 기획하고 지배하는 사회는 상상력이 부족하고 지루하다. 혁신이 늦어지며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는 대학이 자기 할 일을 잘 하리라 믿고 기회를 주는 일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교육 및 대학 입시와 관련해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영역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믿는다. 사실상 그것은 국민에게 권한을 위임 받은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첫째로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놓고 그것을 유지하는 일이다. 

한 밭에서 난 감자 중에 큰 감자만 종자로 남겨서 다음 해에 심으면 모두 큰 감자만 열릴 것 같지만 유전의 원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단순하지 않다. 막상 수확할 때 보면 큰 감자 작은 감자 모두가 섞여 있다. 반대로 작은 감자를 종자로 삼는다 해도 절대로 작은 감자만 열리지 않는다. 역시나 큰 놈 작은 놈이 섞여 나온다. 

슈퍼 옥수수를 개발하고 기아 해결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상 후보에도 여러 번 올랐던 김순권 박사에게 슈퍼 옥수수를 육종하는 과정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특정 지역의 토양과 기후에 맞는 슈퍼 옥수수를 개발하려면 우선 여러 대륙에서 종자를 가져다가 원래 그 땅에 있던 종자와 교잡을 하여 종자를 개량해 간다. 유전학적 지식을 토대로 매 해 기술적인 교잡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해 슈퍼 옥수수가 탄생하는데, 흥미로운 일은 슈퍼 옥수수 바로 이전 세대의 종자는 암수 모두 크기가 매우 작은 (평균 이하의) 종자라는 것이다. 

키 작은 종자가 없으면, 슈퍼 옥수수도 없다는 것이 자연의 가르침이다. 

다소 거친 비유가 될 수 있겠으나, 교육에 있어서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놓는 일은 우리 사회의 작은 감자와 옥수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일과 같다. 그들이 늘 작은 감자에만 머물지 않고 다양한 크기의 감자가 되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는 것만 해도 얼마나 보람차고 기쁜 일이겠는가? 그런데 그 일(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놓는 일)은 단순 개인의 보람과 기쁨 그 이상의 무엇이기도 하다. 사회 전체적으로 보자면 어느 순간 슈퍼 옥수수의 출현을 가능케 하여 우리 사회의 큰 진보를 가져오는 유익이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회일수록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는 일에 인색하지 않다. 그런 사회에서는 바로 그 관용의 문화가 다시 양분이 되어 사회를 더 건강하게 하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입시 제도에서 시행되고 있는 농어촌 특별전형, 마이스터고 특별 전형, 소득 분위 특별 전형, 장애인 특별 전형 등은 큰 의미가 있다. 반대로, 그 선순환의 고리가 깨지고 모든 것이 소위 ‘능력주의’로 치달으며,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희미해져 갈 때 그 사회는 점차 시들어 간다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대학 강단에 서고 행정 업무도 해 본 입장에서 미국 대학들의 입시 제도를 생각할 때, 십 수 년에 걸쳐 오래도록 상고해 보아도 도저히 수긍하기 어려운 것은, 다름 아닌 기부금 입학제도다. 그것은 교육 시장에서 통용되는 ‘실력’이라는 무형의 화폐를 ‘돈’이라는 물리적 화폐로 바꾼 저급한 제도이며, 불공정을 제도 안에 들여 공인해 주겠다는 모순적 시도이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을 넘어서 상층에서만 다니는 전용 열차를 놓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이기도 하다. 그러한 불합리한 제도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다수의 서민들에게는 정서적 절망을 주어 장기적으로는 사회 발전에 큰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최근 미국 교육부는 하버드대의 동문자녀 입학 우대제도(레거시 입학제도)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레거시 입학제도라 하면, 운동선수, 동문 자녀, 기부자의 친인척, 교직원의 자녀 등에게 입학 우선권을 부여하는 제도인데, 그 속을 들여다 보니 아니나 다를까 결국은 백인 부유층에게 유리한 입시 제도로 운영되고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하버드대의 경우, 레거시 입학제도 총지원자 수는 전체의 5%에 못 미치는 반면, 합격생 중에선 레거시 입학제도 출신이 30%를 차지했다. 또한 레거시 입학 지원자의 약 70%가 백인으로 평균보다 40% 높게 나타났으며, 레거시 입학 지원자는 비(非) 레거시 입학 지원자보다 입학 가능성이 5배 이상 높았다.

이런 류의 상황에 대한 꾸준한 문제 제기가 있었고, 지난해 코네티컷주 의원들은 공립 및 사립대학의 레거시 입학을 금지하는 법안을 제출했으며, 지난 2021년 콜로라도주에서는 미연방 최초로 공립대학의 레거시 입학을 금지하기도 했다.

우리 사회는 미국의 레거시 입학제도 같은 것은 본받지 말고, 오히려 반면교사 삼아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더욱 활성화 시키는 입시 제도를 구비하였으면 한다. 

(다음 글에서 계속)

[필자 소개] 이송용 순리공동체홈스쿨 교장, 전 몽골국제대학교  IT 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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