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전 언론인.
임순만 전 언론인.

[이코리아] 해마다 광복절이 되면 되풀이되는 것이 대한민국 ‘건국절 논란’이다. 건국절 논란이란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되었다’는 주장을 말한다. 이 논란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때 정부에서 “2008년이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이 되는 해”라며 건국6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조직하면서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 당시 1948년 건국절을 주장한 논자들은 “광복절은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벗어난 광복만을 기념하는 것이므로 광복절보다 건국을 더 중요시해야 한다”며 “대한민국이 건국된 1948년 8월 15일을 기념해야 하고, 이를 위해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고 주장해 건국절 불씨를 붙였다. 

나라의 건국에 대한 이런 새로운 주장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역사학계에서는 일제히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논란의 핵심은 ‘대한민국 건국이 1948년 8월 15일에 이루어진 것이 사실인가, 아닌가’에 달려있다. 

‘1948년 건국절’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우리 역사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언제, 어떻게 수립되었으며, 국민이 주권을 갖게 된 것은 언제이고, 민주공화제는 언제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등에 대한 논의와 검토가 있어야 마땅하다. 한시준 독립기념관장은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되었다는 주장은 근거도 논리도 없는 역사농단”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1948년 건국절’ 주장에는 근거나 논리가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건국절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1948년 제헌헌법이 우리의 국가 역사에서 처음으로 ‘국민주권’을 선포했다는 점 ▲국민 모두의 신체의 자유를 보장했다는 점 ▲제헌헌법으로 민주공화국이 탄생했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국민주권을 선포한 것은 제헌헌법이 아니다. 국민주권은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적시된 개념이다. 임시정부는 수립 당시 헌법으로 ‘대한민국임시헌장’을 제정 공포했는데, 그 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고 명시했다. 1948년에 민주공화국이 탄생했다는 논리도 사실에 부합되지 않는다. 1919년 4월 ‘대한민국임시헌장’ 이후 임시정부는 5차례에 걸쳐 헌법을 개정했는데, 1925년 4월 개정한 ‘대한민국임시헌법’과 1944년 4월에 개정한 ‘대한민국임시헌장’의 제1조도 모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이라고 밝히고 있다. 

‘신체의 자유’도 이미 임시정부에서 제정한 헌법에 보장된 내용이다. 대한민국임시헌장에 남녀평등과 함께 인민의 자유(종교, 언론, 저작, 출판, 결사, 집회, 주소이전, 신체, 소유), 선거의 권리, 의무(교육, 납세, 병역)등을 규정해 놓았다. 또한 1919년 9월 11일에 공포한 ‘대한민국임시헌법’에는 신체의 자유와 더불어 거주, 언론, 출판, 저작, 신앙, 집회, 시위, 통신 등을 비롯해 참정권, 선거권, 피선거권, 노동권, 휴식권, 피구제권, 피보험권 등 국민의 권리를 상세하게 규정했다. 

따라서 1948년 건국론과 건국절 주장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존재와 그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역사의 기원을 따지면서 임시정부의 존재와 역사를 외면하는 것은 지극히 비역사적인 자세다. 정부에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기념일을 정해놓고 기념행사를 하고 있을뿐 아니라 국가보훈처에서는 1999년 임시정부 수립 80주년을 기념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80주년기념논문집’을 발행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50권을 발행했다. 이렇듯 임시정부는 분명히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 인정되고 있다.

1948년 건국론자들은 임시정부가 국민·주권·영토의 요소를 갖추지 못했다고 하는 주장하는데, 이것도 사실과 다르다. 임시정부는 1919년 9월 11일 제정공포한 ‘대한민국임시헌법’을 통해 제1조 대한민국은 대한인민으로 조직함, 제2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대한인민 전체에 재함, 3조 대한민국의 강토는 구한제국의 판도로 정함이라고 국가구성의 3요소를 규정하고 있다. 혹자는 ‘임시정부가 헌법에 영토를 규정했지만 중국에 있어서 실효적으로 지배하지 못했기 때문에 국가로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현 대한민국 헌법에 그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38선 이북지역을 실효적으로 지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을 국가로 인정할 수 없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1948년 건국론자들이 임시정부를 외면하면서 대한민국 건국의 기원을 주장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문제점은 지금의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한다는 것이다. 1948년에 공포된 제헌헌법은 전문에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고 했고, 현재의 헌법인 1987년에 개정된 제6공화국 헌법은 그 전문에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밝히고 있다. 즉 대한민국 헌법에서는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간다고 한 반면, 그 어느 부분에서도 1948년에 대한민국을 건국했다고 밝힌 곳이 없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됐다는 주장은 반 헌법적이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론자들은 이승만을 ‘건국대통령’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 역시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과 역사인식을 왜곡하는 것이다. “이승만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말은 맞지만, “대한민국을 건국했다”는 말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이승만은 제헌국회의 국회의장으로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결정한 것과 국회단원제, 대통령중심제 등 제헌헌법을 제정하고 정부를 수립하는데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1948년 5월 31일 개원한 제헌국회에서 이승만은 국회의장 개회사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이 민국(民國)은 기미년 삼월 일일에 우리13도 대표들이 서울에 모여서 국민대회를 열고 대한독립민주국임을 세계에 공포하고 임시정부를 건설하야 민주주의에 기초를 세운 것입니다. 이 국회에서 건설되는 정부는 즉 기미년에 서울에서 수립된 민국의 임시정부의 계승에서 이날이 29년 만에 민국의 부활일임을 우리는 이에 공포하며 민국연호는 기미년에서 기산할 것이요.” 

이렇듯 이승만은 제헌국회에서 헌법을 제정하고 대한독립민주정부를 재건설하는 민국은 1919년 수립된 임시정부를 계승하는 것이며, 이는 임시정부에서 사용한 연호를 그대로 사용하되 ‘재건설’ ‘계승’ ‘부활’의 기점을 1919년부터 계산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제헌국회에서 재건설하는 정부가 임시정부를 계승한다는 것을 관철시킨 사람도 이승만이고,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결정하는데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이 이승만이다. 그의 분명한 논리는 ‘임시정부를 계승한다’는 것이고, 헌법 전문에 이를 명문화시킨 사람도 이승만이다. 

그리고 이승만은 1948년 7월 7일 헌법기초위원회에서 헌법 전문을 직접 제안해 백관수, 김준연, 최국현, 이종린, 윤치영 등 5명의 특별위원과 함께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민국은 기미삼일독립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는 최종안을 마련했다. 이 안은 제헌의회 본회의 표결에서 재석 157명 중 가 91명, 부 16명으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7월 24일 대통령 취임선서와 7월 31일 국무총리 이범석 임명 정부문서, 8월 5일 김병로 대법원장 임명 승인 정부문서에서 ‘대한민국 30년’이라고 연호를 표기했다. 국가가 바뀌면 연호를 달리 쓴다. 동일한 연호를 쓴다는 것은 같은 국가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한시준 독립기념관장은 이승만이 헌법 전문에 임시정부 법통에 대한 문구를 넣자고 한 이유에 대해 “외세에 의한 정부수립, 즉 미국이 세워주는 민주주의 정부 수립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 독립기념관장은 “미국은 일본에 민주정부를 세웠고, 조선에 와서도 그렇게 하려고 했지만, 이승만은 우리는 이미 1919년에 민주공화제 정부인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하여 민주정권을 유지·운영한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전문에 넣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이승만은 1925년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통령에서 탄핵당한 사실이 있다. 그런데도 그는 대한민국이 미국에서 세워준 정부가 아니라 우리가 1919년에 세운 정부라는 역사인식을 분명히 했다. 역사의 올바른 정립은 오로지 사실과 사료에 기초해서 이루어진다. 막강한 권력의 힘을 배경으로 한 주장일지라도, 아무리 목소리가 큰 주장일지라도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역사적 주장은 의미가 없다. 우리의 역사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부정하면서 자국의 역사를 비틀고,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주장을 8.15 광복절마다 이어가는 것에 신중해야 할 것이다. 

 

임순만 작가 · 전 국민일보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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