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 시내의 은행 대출 창구에서 한 시민이 대출 상담을 받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11일 서울 시내의 은행 대출 창구에서 한 시민이 대출 상담을 받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가계대출 증가 폭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가계부채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정부의 대출규제 완화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은행이 지난 9일 발표한 ‘7월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은 1068조1430억원으로 전월 대비 5조9553억원 늘어났다. 이는 전월 증가 폭(5조8296억원)보다 1257억원 많은 것으로 지난 2021년 9월 이후 22개월 만에 가장 컸다.

급격한 금리상승과 규제로 줄어들었던 가계대출 규모는 올해 들어 점차 반등하는 추세다. 실제 은행 가계대출은 지난 4월 이후 4개월째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는 데다, 증가 폭 또한 매달 확대되는 추세다. 

가계대출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은 주택담보대출이다. 지난달 주담대 잔액은 820조7718억원으로 전우러 대비 6조원 늘어났다. 지난 6월 증가 폭보다 약 1조원 줄어든 것이지만 여전히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윤옥자 한은 금융시장국 시장총괄팀 차장은 “수도권 중심 아파트 매매거래 증가로 가계대출이 큰 폭 증가세를 지속하고 있다”며 “아파트 거래량 증가는 2∼3개월 시차를 두고 주담대 실행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주택자금 수요 지속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계속되면서 가계부채 리스크에 대한 우려도 점차 커지고 있다. 이미 한은은 지난달 발표한 ‘장기구조적 관점에서 본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과 영향 및 연착륙 방안’ 보고서에서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세가 국제적으로 비교해봐도 가파른 수준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실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4분기 기준 105%로 스위스(128.3%), 호주(111.8%)에 이어 주요 43개국 중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 선진국의 가계부채 비율이 감소한 것과는 반대되는 움직임을 보이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대출규제 완화가 가계부채 리스크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참여연대는 지난 8일 논평을 내고 “윤석열 정부는 올해 초 규제지역 대부분 해제, 분양가상한제 적용 해지, 전매제한 대폭 완화, 주택소유자의 청약 허용과 실거주 의무 폐지 등 부동산 투자 규제를 완화했다”며 “정부는 또다시 다주택자와 임대·매매사업자에 대해 주택담보대출도 허용했다. 더욱 문제인 점은 ‘특례보금자리론’을 통해 소득 제한 없이 1주택자에게도 9억원 미만 주택에 대해 대출한도 5억원까지 DSR 적용을 배제하는 특혜를 줘가면서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고 가계부채를 증가시키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정부는 지난달 26일 역전세난에 대응하기 위해 전세금 반환목적의 대출규제를 일시적으로 완화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집주인의 전세자금 반환목적 대출에 대해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40% 대신 상대적으로 완화된 DTI(총부채상환비율) 60%를 적용하고, 임대사업자의 경우 RTI(임대업자이자상환비율)를 1.25~1.5배에서 1.0배로 하향조정하겠다는 것. 전체 전세가구의 절반이 역전세 위험에 노출된 만큼 불가피한 조치라는 해석도 있지만, 자칫 대출규제 완화가 가계부채 리스크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참여연대는 “가계부채의 심각한 상황과 한국은행의 축소 방안 제시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는 가계부채를 증가시킬 위험이 있는 부동산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있다”며 “엇박자 정책으로 인해 올 1분기 가계부채 증가가 진정되나 싶다가 2분기에 다시 12.4조원 증가세로 돌아섰다”고 지적했다. 실제 한은은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서 차주 단위 대출 규제가 미비한 것을 가계부채 리스크 악화의 원인으로 꼽으며, DSR 예외대상을 축소하는 등 대출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한 바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 또한 지난 13일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올해 103%로 내려왔는데, 이 비율이 계속 늘어나면 우리 경제에 큰 불안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이를 더 키울 수 없는 것은 사실”이라며 “단기적으로 부동산시장 연착륙을 위해 자금 흐름 물꼬를 트는 미시적 대응이 필요한 동시에 중장기적으로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줄여나가는 거시적 대응도 균형 있게 추진하는 접근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8일 경기 광명시에서 열린 민주당 민생채움단의 취약차주 소상공인·자영업자 보호 간담회에서 “가계부채 문제가 임계점에 도달했고, 실물경제에 심각한 충격을 가할 수 있는 상황이 도래하고 있는데,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며 “실질적인 대책도 제대로 마련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역전세난과 가계부채 리스크라는 문제에 직면한 정부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