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7일 발표한 역전세 반환대출 규제완화방안 중 일부. 자료=금융위원회
정부가 27일 발표한 역전세 반환대출 규제완화방안 중 일부. 자료=금융위원회

[이코리아] 정부가 세입자들에게 전세금을 반환하려는 집주인에 대한 대출 규제를 완화하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역전세난에서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자칫 가계부채 리스크가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는 지난 26일, 집주인이 전세금 반환 용도로 은행권(인터넷은행 제외) 대출을 이용할 경우 전세금 차액분(기존 전세금-신규 전세금) 등에 대한 전세보증금 반환목적 대출규제를 27일부터 내년 7월 31일까지 1년간 한시적으로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4일 발표된 ‘2023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의 후속조치로 집주인의 전세자금 반환목적 대출에 대해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40% 대신 상대적으로 완화된 DTI(총부채상환비율) 60%를 적용한다. 또한, 임대사업자의 경우 RTI(임대업자이자상환비율)를 1.25~1.5배에서 1.0배로 하향조정했다. 

정부가 전세금 반환대출 규제 완화에 나선 이유는 역전세난 우려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역전세 위험가구는 지난 4월 기준 102만6000가구로 전체 전세 가구의 52.4%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1월(51만7000가구, 25.9%) 대비 2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정부는 “이번 대책은 예상치 못한 전세가격 하락으로 인해 전세금 반환이 지연돼 주거이동이 제약되거나, 전세금 미반환 위험 우려로 인해 불안해하는 세입자들이 원활히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조치”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대출규제 완화 조치가 자칫 가계부채 리스크를 악화시킬 수 있다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금리상승 및 강력한 규제 덕에 감소세를 이어왔던 가계대출 규모는 지난 4월 들어 8개월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1062조3000억원으로 전월 대비 5조9000억원 증가하며 3개월째 증가세를 유지했다. 이는 지난 2021년 9월(6조4000억원)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다. 

한국의 가계부채 리스크는 다른 국가와 비교해도 상당한 수준이다. 한은이 최근 발표한 ‘장기구조적 관점에서 본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과 영향 및 연착륙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4분기 기준 105%로 스위스(128.3%), 호주(111.8%)에 이어 주요 43개국 중 세 번째로 높았다. 한은은 차주 단위 대출 규제가 미비한 것을 가계부채 리스크 악화의 원인 중 하나로 꼽고 DSR 예외대상을 축소하는 등 대출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은은 지난 6월 발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도 “주택시장 연착륙을 위한 정부의 부동산 관련 규제 완화 등의 영향으로 금년 들어 주택가격 하락세가 빠르게 둔화되고 있다”며 “주택 관련 대출을 중심으로 은행의 가계대출도 재차 증가하고 있어 가계부채의 디레버리징이 지연될 수 있는 만큼 이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반환대출 규제완화는 ‘빚 돌려막기’가 될 뿐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참여연대는 지난달 9일 논평을 내고 “주택가격 하락, 전세가격 하락에 따라 임차인 전세 대출은 자연히 줄게 되어 있다. 정부가 가만히 있으면 보증금 반환 능력이 부족한 주택임대인들은 그 주택을 팔게 되어 있다”며 “그런데 정부가 DSR 완화를 통해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 대출을 늘려주면 재무건전성이 좋지 않은 주택임대인들이 주택임대차 시장에서 버티게 되므로 새로운 임차인들의 보증금 반환은 더 어려워지고 주택 임대차 부문의 자산 건전성 악화는 계속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이어 “주택가격 하락기에 임대인들이 임차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그 돈으로 기존 임차인의 보증금을 내주게 되면 새로 들어오는 주택 임차인은 저당대출채권자인 금융기관보다 후순위가 된다”며 “따라서 새 임차인은 2년 뒤 보증금 손실을 입을 우려가 더 커져 소위 ‘깡통전세’로 인한 전세 위기는 악화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정부는 전세금 반환목적 대출 규제를 완화해도 가계부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 반박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 조치로 인해 가계부채가 크게 증가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며 “기본적으로 ‘전세금 차액’에 대해 대출을 지원하는 것이 원칙이며, 불필요한 반환대출 수요는 여러 제도적 장치들을 통해 차단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갭투자자를 구제해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서는 “이번 대책은 최근 역전세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 추진하는 것”이라며 “전세금 반환에 꼭 필요한 만큼만 대출을 지원하고 신규주택 구입 등 타용도로 악용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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