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금융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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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 코로나19와 함께 감소했던 보이스피싱 범죄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수법이 고도화되고 피해 규모도 커지고 있는 만큼, 당국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인천 삼산경찰서는 지난 22일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원 21명을 검거하고, 이 가운데 환전책을 포함한 5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저금리로 대환대출을 해준다며 기존 대출금을 상환하라고 피해자들을 속여 현금을 탈취한 뒤 이를 환전소를 통해 중국으로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3~4월 피해자 49명에게 69차례에 걸쳐 약 10억1400만원을 편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10억원이 넘는 피해를 초래한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이 검거되면서, 코로나19 기간 가라앉았던 보이스피싱 범죄가 다시 기승을 부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제 국내 보이스피싱 피해는 지난 2006년 처음 발생한 이후 점차 증가하다 코로나19가 시작된 2020년부터 감소 추세로 전환됐다.

경찰청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범죄 건수는 지난 2019년 3만7667건으로 최대치를 기록한 뒤, 2020년 3만1681건, 2021년 3만982건, 2022년 2만1832건으로 3년 만에 1만5835건(-42%)이나 줄어들었다. 보이스피싱 피해금액 또한 2006년 106억원에서 2021년 7744억으로 크게 늘어났으나, 2022년 5438억원으로 전년 대비 29.8% 줄어들며 기세가 한 풀 꺾였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해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의 사기 활동이 어려워진 데다 정부의 대응도 강화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수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발표한 ‘보이스피싱 피해 현황 및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서 “이는 코로나19로 인해 사기조직의 활동이 위축된 상황에서 2021년 12월 보이스피싱 대응 범정부 TF를 구성해 통신·금융분야 특별대책을 시행하고, 2022년 7월부터 5개월간 경찰청과 정부합동수사단을 중심으로 강력한 단속과 수사를 실시한 데에 힘입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형별로 보면, 코로나19 기간 가장 많이 감소한 것은 대출 상담 알선을 가장해 수수료 명목으로 금전을 요구하는 대출사기형 보이스피싱 범죄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출사기형 범죄 건수는 지난해 1만2902건으로 2019년(3만448건)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반면, 대면 사기가 어려워지자 메신저 등을 통해 가족·지인을 사칭한 뒤 개인정보를 빼내는 사칭형 범죄는 급증해 지난해(8930건) 처음으로 8000건을 돌파했다. 

수법별로는 보이스피싱 범죄 5건 중 4건을  차지하던 계좌를 통한 송금방식(계좌이체형)이 줄어들고, 오히려 피해자를 직접 만나 현금을 전달받는 대면편취형 비중이 증가했다. 실제 지난해 전체 보이스피싱 범죄 중 대면편취형 비중은 66.9%에 달했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대면편취형 범죄가 증가한 원인에 대해 보고서는 “2012년부터 시행된 지연인출제도의 도입 및 강화, 사기이용계좌(대포통장)에 대한 규제와 처벌 강화 등에 따른 사기집단의 범죄 수법 변화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가 전반적으로 줄어들고 있다고 해서 안심하기는 이르다. 오픈뱅킹, 간편송금, 악성 앱(APP) 등을 활용한 신종사기수법이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는 데다, 건당 피해 규모도 점차 커지고 있기 때문. 보고서에 따르면, 악성 앱을 통한 휴대폰 원격조종이 가능해지면서 보이스피싱 1건당 피해 금액은 2016년 862만원에서 2022년 2491만원으로 세 배 가까이 증가했다. 

탈취한 금액을 단기간에 여러 계좌를 거쳐 이전하는 방식으로 범죄가 이뤄지는 만큼, 보이스피싱 피해금의 환급률도 저조한 상황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적용대상인 자금의 송금·이체형 보이스피싱에 대한 피해 금액 대비 환급액 비율은 2020년 48.5%에서 2022년 26.1%로 급락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과학기술·통신 발전에 따른 다양한 신종 범죄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데에 한계가 있는 만큼 해외처럼 피싱 예방 전화기 구입 보조, 사기방지 예방 교육 강화 등을 통해 보이스피싱 사기 취약층에 대한 예방 조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른 피해자 구제의 실효성이 낮으므로 보이스피싱 보험 활성화, 금융회사 등의 배상책임 강화 등을 통해 피해자 구제에 적극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금융당국도 휴가철을 맞아 보이스피싱 범죄가 다시 늘어날 것을 우려하며 대책 마련에 나섰다. 앞서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은 지난 13일 보도자료를 내고 카드사 사칭 비밀번호 요구, 해외결제 빙자 스미싱, 가족납치 명목 금전요구 등 휴가철을 앞두고 예상되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유의할 것을 당부했다.

금융당국은 ▲카드사 콜센터를 가장해 본인인증이 필요하다며 ARS 음성 안내멘트를 통해 비밀번호 앞 두자리를 입력하라고 요구하거나 ▲해외결제 승인 문자메시지를 빙자해 통화를 유도한 뒤 구매내역 확인을 위해 필요하다며 악성 앱 설치를 유도하는 등의 보이스피싱 범죄가 예상된다며, 민관합동 대응체계를 구축해 피해 예방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보이스피싱 피해 방지를 위한 입법 논의도 전개되고 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8일 ‘통장협박’ 사기 근절 대책을 담은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행법은 보이스피싱 범죄 연루가 의심되는 모든 계좌에 대해 지급정지 조치를 하도록 했다. 그러자 이를 악용한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이 자영업자·소상공인 계좌에 돈을 입금해 해당 계좌를 정지시킨 뒤 돈을 주면 계좌를 풀어주겠다고 협박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상대방의 은행 계좌번호를 몰라도 아이디나 연락처만 알면 돈을 입금할 수 있는 간편송금서비스가 보편화되면서, 이를 악용한 보이스피싱 범죄도 증가 추세다. 실제 간편송금을 악용한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금액은 지난 2018년 7800만원에서 지난해 6월 기준 42억원으로 급증했다. 

윤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계좌명의인이 해당 계좌가 보이스피싱에 이용된 계좌가 아니라는 사실을 객관적인 자료로 소명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계좌잔액 중 피해금에 대해서만 일부 지급정지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해 통장협박 사기 유인을 줄였다. 또한, 전자금융업자와 금융회사 간에 사기이용계좌에 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해 최종수취계좌에 대한 신속한 지급정지 및 피해금 환급이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윤창현 의원은 “억울하게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됐음에도 구제 수단이 부족해 무고함을 직접 밝혀야 하고 이마저도 오랜 시일이 소요되는 등 현행법에 한계가 있어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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