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단위: %) 자료=한국은행
주요국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단위: %) 자료=한국은행

[이코리아] 정부는 역전세난 대책으로 대출규제 완화를 추진 중인 가운데, 한국은행이 가계부채 리스크에 대응하려면 대출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진단을 내놨다. 

강환구 한은 경제연구원 금융통화연구실장과 이경태 부연구위원이 지난 17일 발표한 ‘장기구조적 관점에서 본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과 영향 및 연착륙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가계부채 리스크는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실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4분기 기준 105%로 스위스(128.3%), 호주(111.8%)에 이어 주요 43개국 중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11년 14위에서 11계단이나 오른 것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 선진국의 가계부채 비율이 감소한 것과 대비된다.

가계부채가 이처럼 급증한 것은 가계대출이 기업대출보다 수익성과 안정성이 높아 금융사가 상대적으로 선호하는 데다, 저금리 기조 장기화로 자산 투자 및 전세 수요가 확대된 것이 이유로 꼽힌다. 

보고서는 또한 규제 측면에서 차주 단위 대출 규제가 미비한 것을 가계부채 리스크 악화 원인으로 지목했다. 주요국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차주의 총체적 상환부담을 측정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2012~2014년 도입한 반면, 국내에서는 DSR이 여신관리지표로서 뒤늦게 활용된 데다 도입 후에도 여전히 대출시점, 대출종류에 따라 상당수의 대출이 DSR 적용을 받지 않고 있다는 것. 

보고서는 가계부채 규모를 적정 수준으로 연착륙시키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대출을 DSR 산정 대상에 포함시키는 한편, DSR 규제도입 이전 이루어진 대출의 만기연장분에 대해서도 DSR을 점진적으로 적용함으로써 가계 간 DSR 규제 형평성을 제고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며 “LTV 수준별 차등금리 적용, 만기일시상환방식 대출에 대한 가산금리 적용 등을 통해 가계가 과도한 대출을 받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도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보고서는 이어 “가계부채 증가를 완화하기 위한 정책대응 과정에서 저소득층은 DSR 규제, 통화정책 정상화 등으로 인하여 자금조달에 있어 애로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며 “금융접근성이 낮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초장기 정책모기지 및 소액대출상품을 제공하되 수혜대상이 과도하게 확대되지 않도록 정책자금 대상 및 목적을 명확하게 설계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은이 가계부채 리스크 대응을 위해 대출규제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지만, 최근 정부의 정책기조는 이와 대비된다. 실제 정부는 지난해 생애최초 주택 구입 시 주택가격 및 소득과 상관없이 담보인정비율(LTV)을 80%로 상향하고, 대출한도도 4억원에서 6억원으로 확대했다. 최근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는 임대차 시장 리스크 관리를 위해 이달 말부터 1년간 한시적으로 보증금 차액에 대한 반환목적 대출에 한해 대출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개인에 대해서는 DSR 40% 대신 총부채상환비율(DTI) 60%를 적용하기로 했다.

이는 최근 부동산 경기침체로 전세보증금이 집값보다 높아지는 역전세난 위험이 커졌기 때문이다. 실제 한은에 따르면, 역전세 위험가구는 올해 4월 기준 102만6000가구로 전체 전세 가구의 52.4%를 차지했다. 이는 지난해 1월(51만7000가구, 25.9%) 대비 2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전체 전세 가구의 절반 이상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에 직면한 만큼, 보증금반환 대출규제를 풀어 리스크를 관리하겠다는 것. 하지만 이는 대출규제 예외대상을 축소해야 장기적으로 가계부채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다는 한은의 주장과 반대되는 움직임이다. 

다만 부동산 시장 상황이 어려운 만큼 정부의 규제완화가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창용 한은 총재 또한 지난 13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부의 역전세 대응은 분명 가계부채를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는 미시적으로 자금시장 물꼬를 틀 필요가 있어서 하는 정책이고 이 자체가 (거시적 통화정책과) 상충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부동산시장 연착륙을 위해 자금 흐름 물꼬를 트는 미시적 대응이 필요한 동시에 중장기적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줄여나가는 거시적 대응도 균형 있게 추진하는 접근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가계부채와 역전세라는 두 가지 리스크를 모두 관리해야 하는 정부가 균형 잡힌 해법을 내놓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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