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리아] 흥국생명이 자회사형 GA(법인보험대리점)를 설립하며 생명보험업계 제판분리(보험상품 제조·설계 및 판매 분리) 흐름에 동참했다. GA를 통한 영업력 강화로 수익성을 개선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최근 불법영업행위가 적발된 상황에서 GA 설립을 강행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앞서 흥국생명은 지난달 20일 판매전문 자회사 ‘HK금융파트너스’를 출범하고, 김상화 전 흥국생명 영업본부장을 신임 대표로 선임했다. 흥국생명은 기존 전속판매채널을 분리해 본사는 보험상품 및 서비스 개발 등 경영 효율화에 집중하고, HK금융파트너스가 상품 판매를 전담해 영업력 강화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HK금융파트너스는 이달 5일부터 영업을 시작한 상태다.

흥국생명의 자회사 GA 설립은 보험업계 전반으로 확산 중인 제판분리 흐름에 동참하기 위한 조치다. 제판분리는 보험상품의 제조와 판매를 분리하는 것으로, 최근 들어 생보업계의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최근 생보사 주력 상품인 변액·종신보험의 인기가 하락하면서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는 데다, 설계사들도 고객 필요에 맞는 다양한 상품을 취급할 수 있는 GA를 선호하면서 생보사로부터 이탈하는 경향이 확산됐기 때문. 

이미 다수의 생보사들은 자회사형 GA를 설립해 제판분리에 나서고 있다. 동양생명이 지난해 1월 텔레마케팅(TM) 전문 자회사 ‘마이엔젤금융서비스’를 출범했으며, 현재는 KB라이프생명으로 통합된 푸르덴셜생명도 지난해 6월 판매전문 자회사 ‘KB라이프파트너스’를 출범했다. 미래에셋생명도 지난 2021년 3월 자회사형 GA ‘미래에셋금융서비스’를 설립했으며, 신한라이프는 지난 2020년 ‘신한금융플러스’를 출범시켰다. 

생보사 빅3 중에서는 유일하게 한화생명이 ‘한화생명금융서비스’, ‘한화라이프랩’, ‘피플라이프’ 등을 GA로 보유하고 있다. 한화생명은 3개의 GA를 통해 약 2만5000명 규모의 설계사 판매채널을 구축하며 가장 적극적인 제판분리 행보를 보이는 중이다. 

흥국생명에 앞서 제판분리에 나선 생보사들은 이미 자회사형 GA의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설립 이후 적자 행진을 계속해왔던 한화생명금융서비스는 올해 1분기에도 171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미래에셋금융서비스 또한 올해 1분기 27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며 출범 이후 2년 만에 흑자로 전환했다. 전속설계사 이탈, 불완전판매 증가 등 부작용도 적지 않지만, 조직의 전문·효율화를 위한 제판분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이다.

문제는 흥국생명의 경우 자회사형 GA 설립을 앞두고 잡음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 흥국생명의 자회사형 GA 설립은 3수 끝에 얻어낸 성과다. 흥국생명은 지난 2018년 처음으로 자회사형 GA 설립을 추진했으나 유동성 비율이 보험업법 기준에 미달해 실패했다. 흥국생명은 지난해 9월 다시 금융감독원에 GA 설립 인가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11월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사태로 금융시장에 끼친 혼란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는 차원에서 인가 신청을 자진 철회했다. 

흥국생명은 올해 4월 다시 GA 설립 인가를 신청해 2주 만에 금감원으로부터 최종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불법영업행위 논란으로 조사받는 도중에 설립 인가를 받은 것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보도자료를 내고, 흥국생명이 올해 3월부터 두 달간 진행된 금감원 정기검사에서 수십 건의 불법영업행위가 드러나 조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최 의원에 따르면, 흥국생명 소속 지점장 8명과 설계사 11명이 보험영업 과정에서 고객보험료 대납, 특별이익제공, 경유 계약 등의 불법영업행위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최 의원은 “흥국생명 임직원들이 특별이익제공에 조직적으로 가담한 정황도 일부 드러났는데 GA 설립으로 제판분리가 이루어지면 이러한 조직적 불법영업행위의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진다”며 “불법행위 검사가 이뤄지는 동안에 GA가 설립될 수 있는 점에 대해서는 제도적 개선이 이뤄져야한다”고 지적했다.

흥국생명의 GA 설립을 인가한 금융당국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금융정의연대와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은 지난달 29일 논평을 내고 “보험설계사 조직을 떼어내어 보험상품의 개발과 판매를 분리하면 불법영업행위를 관리할 수 없을뿐더러 소비자피해가 발생하더라도 흥국생명이 책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내부통제 시스템이 무너진다는 의미”라며 “금융회사의 부실한 내부통제시스템으로 인해 사모펀드 등 금융소비자 피해가 극심했던 것을 고려하면 자회사 설립 과정은 엄격하게 규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어 “흥국생명은 태광그룹의 골프장 회원권 강매 등과 관련하여 업무상 배임과 보험업법 위반으로 수차례 고발당한 바 있다. 태광그룹과 흥국생명의 대주주와의 위법한 거래부터 제재해도 모자란 판국에 흥국생명의 자회사형 GA를 졸속으로 인가한 금감원을 규탄한다”며 “금감원은 이에 대해 해명하고 이 사태로 드러난 자회사형 GA 설립 과정에 대한 제도를 즉각 개선하여 금융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상화 대표는 지난달 HK금융파트너스 출범식에서 “보험산업에서 GA영업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는 만큼 시장 경쟁력을 갖춘 회사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무엇보다 고객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에 집중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흥국생명이 불법영업행위를 둘러싼 논란을 극복하고 제판분리를 통한 영업력 제고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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