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해 12월 1일 벨기에 브뤼셀 EU 집행위원회에서 게라시모스 토마스(Gerassimos Thomas) EU 집행위원회 조세총국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산업통상자원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해 12월 1일 벨기에 브뤼셀 EU 집행위원회에서 게라시모스 토마스(Gerassimos Thomas) EU 집행위원회 조세총국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산업통상자원부

[이코리아] 유럽연합(EU)이 오는 10월부터 보조금 규제를 대폭 강화하면서 유럽 진출을 추진 중인 한국 기업에 비상이 걸렸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10일(현지시간) 역외보조금 규정(FSR)의 이행법안 최종안을 보도자료 배포를 통해 발표했다. 

역외보조금규정은 EU가 아닌 국가의 기업이 정부·공공기관으로부터 과도한 보조금을 받고 EU 내 기업 인수합병이나 공공 입찰에 참여하는 것을 '불공정 경쟁'으로 간주하고, 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골자다. 

EU 내 매출액 5억유로(약 7000억원) 이상, 보조금 규모 3년 5000만유로 이상의 대기업·공기업은 현지 사업 추진 과정에서 EU 당국에 보조금 내역을 사전 신고하고 허가를 받아야야 한다. 

EU는 회원국 간 보조금 경쟁을 막는 기존 규정이 자국 보조금 지원을 받는 외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불리해진다는 EU 기업의 불만을 반영해 이번 법안을 만들었다.

오는 10월부터 EU에서 기업결합이나 공공 입찰에 참여하려는 외국기업은 과거 받은 '제3국 보조금'을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 EU집행위는 역내 시장 왜곡 여부를 판단해 기업 인수합병이나 공공 입찰 참여를 불허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산업통상자원부는 11일 성명을 통해 "이번 최종안이 기존 초안 대비 우리 정부와 업계 의견이 상당히 반영됐다"고 평가했다. 

산업부는 "기업의 자료 제출 범위가 일부 축소됐으며, 제출면제 인정기준도 완화됐다"며 "집행위가 기업이 제출한 기밀정보를 공개하기로 결정한 경우 사전 이의제기 절차가 마련되는 등 기업의 방어권도 강화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역외 보조금에 따른 '시장 왜곡'이 어떤 것인지를 규정할 가이드라인이 아직 발표되지 않는 등 일부 불확실성은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경쟁 왜곡 여부를 판단하는 가이드라인은 2026년 1월 전 발표될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부는 "그간 EU 역외보조금 규정 설명회 개최 등으로 업계와 소통하고 각종 계기에 EU 측에 우리 의견을 제시해 왔다"며 "앞으로도 무역협회 온라인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산업계와 긴밀히 소통하고 우리 기업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EU와 협의를 지속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공개된 이행법안은 지난 1월 12일 발효된 역외보조금 규정의 형식·절차 및 자료제출 서식 등을 규정한 법안이다. 올 2월에 초안이 공개되고 의견수렴 절차를 걸쳐 최종안이 결정됐다.

한편, EU 역외보조금 규정은 EU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 기업에 대한 대응을 배경으로 한다. 앞서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 2021년 9월 연례 정책연설에서 역외보조금 입법안을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대응(Dealing with China and Russia)'이라는 목차에서 소개한 바 있다.

1차 타깃은 중국 기업이라지만 유럽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도 안심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2021년 12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역외보조금 규정의 일차적 적용 대상은 중국일 것으로 보이나, 중국 외 국가의 대EU 투자 또는 보조금 공여 현황에 따라서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EU 교역국으로 실질적인 적용대상이 확대될 가능성도 현 시점에서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실제 국내 기업들이 현지서 추진 중인 원전 건설이나 방위산업 수출도 영향권에 들어간다. 이들 사업 상당수는 역외보조금 규정에 따라 신고 의무가 있는 공공입찰 사업이다. EU 집행위가 각종 정부 지원을 문제 삼아 사업을 불허할 가능성도 있다.

EU 역외보조금 규정은 왜곡 가능성이 가장 큰 보조금 중 하나로 "보조금으로 인해 기업이 과도하게 유리한 입찰서를 제출할 수 있었고, 해당기업이 공공계약을 체결하게 되는 경우"를 거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체코, 폴란드 등 유럽시장에서 수출입은행 등 공공기관들의 금융지원에 힘입어 경쟁하는 한국의 원전 수출 전략 또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조선업 역시 안심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폴리티코는 지난해 7월 14일 기사를 통해 역외보조금제도가 겨냥하는 산업으로 철강, 알루미늄 등 기초산업과 인프라 등을 지목했다고 보도했다. 기사에서는 해당 산업의 중국 기업들을 주로 언급했지만, 한국의 조선업도 지목했다. 

유럽조선협회는 "한국과 중국의 부실 조선소들이 대출을 받았다고 지적했다"며 EU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구조조정 계획없이 부실기업에 대한 무제한 보증이나 보조금이 왜곡을 일으킬 가능성이 가장 큰 해외보조금"이라고 말했다.

오태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유럽팀 선임연구원은 12일 <이코리아>와 한 통화에서 "분야를 특정할 필요 없이 결과론적으로 어느 기업이든지 보조금에 있어서 EU 회원국에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는 게 중요해졌다"면서 "직접보조금뿐만 아니라 조세면제, 대출보조 등도 모두 EU 역외보조금에 해당되는 만큼 기업의 사전 신고의무 부담이 커졌다.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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