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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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 금융당국이 증권사들을 향해 다시 ‘최고경영자(CEO) 책임론’을 꺼내 들었다. 부실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에 이어 차액결제거래(CFD) 사태, 주가조작 논란, 자전거래 의혹 등 자본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태에  책임을 묻기 위해서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5일 27개 국내외 증권사 CEO를 소집해 증권사 영업관행 개선을 위한 간담회를 열고, 증권사의 불법적 영업관행은 CEO의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간담회를 주재한 함용일 금감원 부원장은 “더 이상 고객자산 관리‧운용과 관련한 위법행위를 실무자의 일탈이나 불가피한 영업관행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며 “특히, 컴플라이언스, 리스크관리, 감사부서 등어느 곳도 위법행위를 거르지 못하였다면 이는 전사적인 내부통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은 매우 심각한 문제로써, 내부통제의 최종 책임자인 최고 경영진과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CEO 책임론을 다시 꺼낸 이유는 주가조작 논란 등 최근 증권업계에 겹친 악재 때문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4월에는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차액결제거래(CFD) 사태로 약 2500억원 규모의 미수채권이 발생했고, 지난달에는 코스피 4개, 코스닥 1개 등 5개 종목이 동시에 하한가를 기록해 다수의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해당 사태가 일부 주가조작 세력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증권사의 내부통제 부실에 대한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실제 금감원 조사 결과 일부 증권사에서는 CFD 계좌 개설 과정에서 고객의 본인 확인 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키움증권의 경우 임원의 지인이 폭락 직전 일부 종목을 매도한 사실이 밝혀졌고, 교보증권에서는 CFD 담당 임원에 대해 마케팅 대금 배임 혐의가 제기돼 검찰에 수사자료가 넘겨진 상태다.

불법 자전거래 의혹도 증권업계의 신뢰도에 흠집을 내고 있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 5월 랩(Wrap)·신탁 시장의 불건전한 영업관행과 관련해 KB·하나증권에 대한 현장검사를 진행했다. KB증권은 단기 투자 상품인 랩어카운트와 신탁 상품으로 유치한 자금을 만기가 긴 장기채에 투자했다가, 금리인상으로 장기채 가격이 하락해 손실이 발생하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하나증권에 있는 KB증권 신탁계정으로 자사 법인 고객 계좌에 있는 장기채를 평가손실 이전의 장부가로 사들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KB증권은 지난 5월 23일 입장문을 내고 “자본시장법에서는 수익자가 동일인인 경우 계좌 간 거래는 자전거래를 인정하고 있다”며 “새로운 고객의 자금이 입금되는 경우 직전 고객의 자산을 이전하는 것이 아닌 운용자산을 시장에서 매수해 대응한다”고 해명했으나, 금감원은 바로 다음 날 보도참고자료를 내고 “일부 증권사들이 만기 미스매칭을 통해서 과도한 목표수익률을 제시하게 되면 자금시장경색 및 대규모 계약해지 발생 시 환매 대응을 위해 연계거래 등 불법·편법적인 방법으로 편입자산을 처분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불법 자전거래 관련 금감원 조사는 KB·하나증권뿐만 아니라 한국투자·교보·유진투자증권 등으로 확대된 상태다. 

이처럼 일련의 사태들로 증권사를 향한 금융소비자의 불신이 커지면서 금융당국도 CEO 책임론을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금융당국은 지난달 22일 금융사고 예방을 위해 금융사 임원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의 ‘금융회사 내부통제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해당 개선안에 따르면, 금융사는 앞으로 임원별로 내부통제 책임을 배분한 ‘책무구조도’를 작성해야 하며 CEO는 책무구조도 작성 및 내부통제 총괄 관리의 책임을 지게 된다. 특히, 조직적으로 장기간 반복되는 금융사고가 발생하는 등 내부통제의 시스템적 실패에 대해서는 CEO에게 책임을 묻기로 했다.

문제는 해당 개선안이 기존 논의에 비해 상당 부분 완화되면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11월 금융위가 발표한 내부통제 개선안에는 중대한 금융사고 발생 시 CEO에게 중징계를 내리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금융당국이 ‘금융판 중대재해법’을 내놓을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지난달 발표된 개선안에는 중대 금융사고의 규정 및 CEO 제재 수위 등의 내용이 빠졌다. 중대 금융사고의 범위가 모호한 데다, 모든 금융사고의 책임을 CEO에게 물어 중징계를 내리는 것은 지나치다는 금융권의 입장이 반영된 셈이다. 일각에서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금융지주사 회장이 대거 교체되고 금융권의 과점체제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이 반복되는 등 ‘관치’ 논란이 불거지면서 금융당국도 한발 물러선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한편, 함용일 금감원 부원장은 “증권사 직원의 주가조작 개입 혐의와 애널리스트 및 펀드매니저의 사익추구 등 불법행위까지 더해져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 전반의 신뢰가 크게 훼손되고 있다”며 “이제부터는 우리 모두가 긴장감을 가지고 잘못된 관행을 유발하는 부적절한 인센티브 체계를 재설계해야 하며,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자본시장에서의 자금중개 및 공급’이라는 증권사 본연의 기능을 강화하는데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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