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에서 이륙하는 대한항공 비행기 모습. 사진=뉴시스
인천국제공항에서 이륙하는 대한항공 비행기 모습.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유럽연합(EU) 경쟁당국이 오는 8월 초로 예정됐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기업 결합 승인 여부 발표를  2개월여 뒤로 연기하기로 했다. 앞서 미국 법무부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합병을 불허하는 소송을 검토 중이라는 현지 보도도 나오면서 항공 빅딜 무산에 대한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3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이 같은 내용의 합병 심사 일정 변경 방침을 공지했다. 이번 심사기한 연장은 대한항공 측 시정조치 요청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오는 10월에나 승인 여부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한항공 측은 "시정 조치안을 구체화하기 위해 EC와 심사 기한 연장 협의를 진행했다"며 "연장 기간 내에 EC와 원만하게 시정조치 협의를 완료하고 최종 승인을 확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EU 경쟁당국은 지난 5월 17일(현지시간) 대한항공 측에 아시아나 항공과의 합병 심사 예비조사결과를 발송했다. 두 항공사 간의 합병이 시장 경쟁을 제한할 수 있다는 부정적 의견이 담겼다. 구체적으로 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페인 등 4개 노선의 여객운송과 화물 운송의 가격이 상승하거나 품질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한항공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EU 집행위의 중간심사보고서(Statement of Objections·SO) 발행은 2단계 기업결합 심사 규정에 의거해 진행되는 통상적인 절차"라며 "EU 집행위는 정해진 절차에 의해 SO를 발부하되 대한항공과의 시정조치 협의를 지속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 최근 미국 법무부(DOJ)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를 막기 위해 소송을 검토한다는 미국 현지 언론의 보도도 나왔다.

지난 5월 18일(현지시간)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익명의 소식통 3명의 말을 인용해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경우 미국과 한국 간 여객 및 화물 운송 경쟁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이유에 따른 것이지만 소송을 제기할지 여부는 최종 결정되지 않았으며 결정이 임박한 것도 다"라고 보도했다. 소식통들은 이 매체에 “법무부가 최종적으로 아무 조치도 안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한국에 본사가 있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대해 법적 관할권은 없지만, 미국 내 경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기업 결합을 막는 것을 모색할 수 있다고 폴리티코는 밝혔다.

법무부는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발표한 2020년 11월부터 조사를 해왔으며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가 미국 내 중복 노선 경쟁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은 2020년 11월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을 공식화하고 이듬해 1월 EC를 포함해 전 세계 14개국 경쟁당국에 기업결합신고서를 제출했다. 유럽연합, 미국, 일본 등 3개국 승인만 남은 상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합병 승인의 키를 쥔 EU 집행위원회와 미국 법무부가 합병 승인 심사를 각각 미룬 공통된 이유는 독과점에 따른 소비자 피해 등 경쟁제한 우려를 들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지난해 양사의 합병을 조건부 승인하며 슬롯 반납과 운수권 재분배의 조건을 달았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2021년 1월에 발표한 '대형항공사(FSC) M&A 관련 이슈와 쟁점' 보고서에서도 "본건 기업결합 심사과정에서 제기될 수 있는 경쟁제한효과로는 통합항공사의 가격인상 우려, 계열 항공사 간 담합 가능성, 수익성 높은 슬롯 확보에 따른 진입장벽 구축 등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공정위가  '대한항공-아시아나 결합 건 안건 상정'을 통해 밝힌 경쟁을 저해한다고 판단하는 시장점유율은 50%다.

현재 인천발 LA·뉴욕·시카고·시드니·바르셀로나·팔라우·프놈펜행 등 7개 인기노선은 합병 시 양사 점유율이 100%에 달한다. 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운항하는 143개의 국제노선 중 양사가 모두 운항 중(58개)이면서, 통합 시 점유율 50% 이상인 노선은 32개(22.4%)나 된다. 이처럼 인기 노선과 황금 시간대 노선을 한 항공사가 독점하면 자연히 운임 상승 요인은 커질 수 밖에 없다. 

국내 여론플랫폼에서도 이런 우려를 제기하는 여론이 훨씬 높다. 최근 한 온라인 플랫폼에서 진행한 대한항공 아시아나 합병에 관한 설문조사에서 합병 성사로 인한 경쟁력 감소 및 항공료 인상 등의 부정적인 효과가 우려된다에 69.5%가 동의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과 정부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되는 부분이다. 

한편 항공 빅딜 무산에 대한 우려감이 커지는 상황이 반갑지 않은 건 대한항공뿐만이 아니다. 당초 양 사의 합병을 통해 항공업계 재편을 주도하며 아시아나항공에 3조 6000억 원을 투입한 산업은행도 난감해졌다.

산은은 지난 2020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합병을 추진할 목적으로 대한항공 최대 주주인 한진칼에 8000억원을 투입했다. 이 과정에서 한진칼 지분 10.7%를 유상증자 참여와 교환사채 인수 등으로 확보하며 주요 주주가 됐다. 다만 산은은 합병 무산 시 대응책인 플랜비(B)는 준비하고 있는 바가 없다는 상황이다. 

EU가 경쟁제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대한항공 입장에서 대안은 중복 노선 운수권과 슬롯(특정 시간대 이착륙할 수 있는 권리)을 추가로 반납하는 것밖에는 없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국내 항공 산업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이 써왔던 슬롯을 내거는 식의 협상을 진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외항사에 슬롯을 내주더라도 황금노선 등의 알짜 노선은 대한항공이 유지하고 아시아나항공이 갖고 있는 것을 배분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대한항공이 보유 항공기 일부를 티웨이항공, 에어프레미아 등 저비용항공사(LCC)에 대여해 유럽 노선 내 경쟁체제를 구축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는데 EU 경쟁당국 측은 이 같은 안으로는 부족하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유럽연합, 미국 등이 기업결합 승인을 안 해줄거였다면 이렇게 오랜 시간을 끌지도 않았을 것이고, 심사 연장도 해주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국내의 경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합병이 되면 규모의 경제도 있고, 국내 타 항공사의 경우 장거리 노선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도 될 수 있는 만큼 대한항공 측에 대안을 마련할 시간을 준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원도 "EU와 미국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한 불편함을 표현하고 있으나, 노이즈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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