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필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장
이정필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장

[이코리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산업변화를 준비하는 과정에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은 에너지와 사람이다. 즉, 에너지 전환은 '양질의 일자리'로의 전환과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탄소중립을 위한 산업구조 전환으로 그린에너지 관련 신산업이 출현하여 새로운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지만, 새로운 흐름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기업 퇴출과 함께 연관 산업까지 일자리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우리나라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에 관련 정의가 명시돼 있다. 지방자치단체도 관련 조례를 만드는 등 기후위기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이정필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장은 지방정부의 기후위기 리더십 발휘를 위해서는 일정 부분 중앙정부로부터 권한을 이양 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제주특별자치도의 경우 지방 나름의 권한이 있기 때문에 풍력 등 재생에너지 사업 관련 실험을 이것저것 할 수 있다. 국내 몇몇 지방자치단체도 제주사례를 벤치마킹하려고 하지만 상당부분 직접 권한이 없어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렇다고 모든 것을 지방정부에게 맡길 수는 없다. 중앙정부의 가이던스 아래 기존의 중앙정부-지방정부의 역할을 재구성하는 것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소장은 또 "기후위기의 원인과 결과를 분석해보면, 국가별, 세대 간의 기후불평등이 구조적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더 큰 피해를 겪는 저개발 국가보다 선진국이 역사적으로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했다. 미래세대는 현재 우리가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를 겪어야 한다. 이 밖에도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에 대한 취약성이 민족, 소득 격차 등의 요소들의 복합적 작용에서 비롯된 불평등과 소외로 악화된다. 이에  "기후정의 관점에서 탈탄소 사회로의 정의로운 전환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이 연구소장은 말했다. 

그러면서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도 나름의 의미가 있지만, 성장주의를 근본적으로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서는 기후위기와 경제위기 등 복합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코리아>는 3일 기후변화와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행동하는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장을 만나 인터뷰했다.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소개 부탁드립니다. 

2008년 4월, 진보정당과 환경단체 출신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모여 에너지정치센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2009년 8월, 에너지시스템을 기후 친화적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비전과 담론을 개발하며, 장기간의 전환 과정을 관리해 나갈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조직을 확대 개편했습니다. 이렇게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일종의 시민사회 기반 싱크탱크라는 정체성을 갖고, 창립 당시 ‘전환’, ‘정의’, ‘지역’ 세 가지 키워드를 제시하였고, 이후 다양한 실천적 연구를 수행하며 시민과 당사자 참여형 연구 활동의 저변을 넓혀왔습니다.

◇ 어떻게 기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기후 이슈와 관련해 어떤 개인적인 깨달음을 얻은 사건이나 그런 일이 있었나요? 아니면 대학 전공과 연계해 자연스레 이 분야로 오신건지?

2007년, 민주노동당 녹색정치사업단 활동을 하면서 생긴 에너지와 기후변화 이슈에 대한 관심을 새로운 활동 주제로 삼고 에너지정치센터 창립 멤버가 됐습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에서 연구원, 부소장을 거쳐 현재는 소장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에너지·기후변화 주제를 전문으로 하는 시민사회 연구소가 거의 없었습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에너지 전환, 기후정의, 정의로운 전환 등의 담론과 정책을 생산하고 다양한 운동 주체와 함께 현실을 바꾸려는 관점을 유지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원칙과 방향은 학생운동, 학술운동, 정당운동을 경험하면서 쌓아온 것의 연장선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홈페이지 처음에 '기후위기를 헤쳐 나갈 길은 결국 정의로운 전환뿐이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연구소에서 정의하는 '정의로운 전환'의 구체적인 의미를 설명해주세요.   

정의로운 전환은 정책 분야는 산업전환, 노동전환, 지역전환을 포괄하는, 국가를 구성하는 모든 영역을 대상으로 합니다. 실제 정의로운 전환이 ‘파리협정’ 전문에 실린 후에 국제적, 지역적, 국가적, 지방적으로 주류적 담론과 정책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북미와 유럽 등에서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사회운동 차원에서 활성화된 대안적 담론이 점차 정치 의제화되고, 특정 분야의 개별 정책, 민관 거버넌스, 상위 종합계획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탄소중립기본법’에도 일부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본법은 기후정의에 대해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기후정의란 “기후변화를 야기하는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사회계층별 책임이 다름을 인정하고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의사결정과정에 동등하고 실질적으로 참여하며 기후변화의 책임에 따라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 부담과 녹색성장의 이익을 공정하게 나누어 사회적·경제적 및 세대 간의 평등을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정의로운 전환에 대해서는 “탄소중립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적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지역이나 산업의 노동자, 농민, 중소상공인 등을 보호하여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을 사회적으로 분담하고 취약계층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책방향을 말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법적 개념이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 기후위기 이슈와 관련 일을 하시는데 현재 소장님이 일적으로 느끼는 가장 큰 벽이라면 뭐가 있을까요. 

몇몇 여론조사를 보면, 시민들의 기후위기 인식은 상당히 높게 나옵니다. 시민들의 일상적인 실천도 조금씩 확산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서 개인주의적 접근이 탄소중립 에너지 전환에 미치는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후위기, 기후비상사태, 기후재난에 걸맞는 대전환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에너지 다소비, 탄소 다배출, 지속 불가능한 경제구조와 생활양식을 바꿀 수 있는 기후정치는 사실상 부재합니다. 오히려 정권 교체 이후 전환의 백래시(backlash, 반격)라고 할 만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탄소중립 에너지 전환은 정해진 시간표를 따라가야 한다는 점에서 전환 기획과 실행에 낭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기후위기의 또 다른 이름은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방정부에도 바람직한 기후정치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 정부도 지난해 탄소중립 기본법을 통해 정의로운 전환에 대해 언급했는데요. 구체적으로 △정의로운 전환 특별지구 지정 △녹색산업 분야로의 사업전환 지정 △정의로운 전환 지원센터 설립·운영 등을 실천할 예정이라고요. 

이와 관련해 연구소에서 지원 혹은 직접 관여하는 서비스가 있을까요? 

기본법에 ‘기후위기 사회안전망’ 조항들이 있습니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연구소가 정의로운 전환을 담론에서 계획과 정책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검토하거나 제안했던 내용 일부가 기본법이나 정부 정책에 포함되었다고 판단합니다. 특히 충남 탈석탄 정의로운 전환을 설계하면서 어느 정도 수렴된 내용이기도 합니다. 최근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노동조합과 지역사회와 함께 법안, 계획과 정책에 개입하거나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출처=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홈페이지 갈무리 
출처=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홈페이지 갈무리 

◇ 또 해외 선진국 사례랑 비교했을 때 국내 정책은 어느 정도 '납득할'만한 수준이라고 보십니까? 

기본법에 따라 운영되고 있는 기후대응기금에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과 녹색성장의 추진을 위한 산업·노동·지역경제 전환 및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활동 지원”와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경제적·사회적 여건이 악화된 지역이나 피해를 받는 노동자·계층에 대한 일자리 전환·창출 지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의 그린뉴딜이나 정의로운 전환에 비해 예산, 정책, 조직 및 거버넌스 등 모든 측면에서 매우 소극적이고 제한적입니다. 

특히 이해당사자 참여 등 정의로운 전환 거버넌스의 비민주성과 폐쇄성이 거론될 정도로 정의로운 전환의 정책 방향과 제도 기반이 취약한 상황입니다. 다만 국회에서 ‘산업구조 전환에 따른 노동전환 지원에 관한 법률안’, ‘산업 전환 시 고용안정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과 ‘정의로운 일자리 전환 기본법안’ 등 정의로운 전환 관련법 논의가 있어 앞으로의 변화를 지켜봐야겠습니다. 

◇ 에너지 전환은 결국 그 사회의 고용, 노동 변화를 일으키는데요. 지난해 탄소중립기본법 시행 전후로 지방자치단체들도 탄소중립기본조례를 제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지역사회에서 변화된 움직임이 있나요? 

현재 17개 모든 광역 지자체는 탄소중립기본조례를 제정했습니다. 기초 지자체의 경우는 절반 이상 제정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외 정의로운 전환 조례 제정 흐름도 발견됩니다. ‘충청남도 정의로운 전환 기본 조례’, ‘충청남도 정의로운 전환 기금 설치 및 운용에 관한 조례’, ‘충청북도 정의로운 전환 조례’, ‘태안군 정의로운 에너지전환 민·관 협의회 구성 및 운영 조례’ 등이 그런 사례입니다. 정의로운 전환에 특화된 별도 조례를 제정할 만큼 그 중요성과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당장에는 ‘탈석탄’ 쟁점이 있는 충남 등에서 상대적으로 앞서나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경기도 탄소중립을 위한 ‘정의로운 전환’ 플랫폼 구축 기초 연구‘(경기연구원, 2022), ’탄소중립 전환 취약지역 지원방안 연구‘(국토연구원, 2022), 이런 연구 작업도 의미 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종합적으로 보면, 정부와 지방정부 모두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위기 적응 분야에 비해 정의로운 전환에 대해서는 정치적 지원과 관심을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방정부는 산업전환과 노동전환을 추진할 수 있는 권한과 예산, 역량이 거의 없다는 것도 한계로 작용합니다.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의 향후 목표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연구소가 선도적으로 제기한 여러 개념과 정책 과제들은 이제 사회 담론과 정부 정책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 개념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수용되면서 주류화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보수화되고 있습니다. 모든 개념의 운명이기도 하지요. 그런 점에서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관점과 입장 역시 분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한편, 국내외적 에너지·기후 정세는 낙관적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국내외 시민사회와 운동진영은 이런 비상사태를 맞아 급진적인 요구를 주장하면서 대중적인 직접행동을 기획·실천하고 있습니다. 에너지, 산업, 노동, 교통, 건물, 농축산, 폐기물, 생활 등 전 분야에서 구체적이고 실효적인 변화를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연구소는 최근 정세적 요구를 반영하여 연구 주제와 방법을 갱신하고, 사회적 소통과 연대 네트워크의 질적 확대를 추진하고자 합니다. 에너지·기후 이슈에 특화된 시민사회 및 민간 연구소가 활성화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여, 연구소는 자체연구와 공동연구, 기초연구와 현안연구, 실천연구와 정책연구, 장기연구와 단기연구 등을 적절히 배치하고, 특히 지역현장의 정의로운 전환 이슈를 발굴·조사하는 데 주력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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