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은행 원화대출 연체율 추이. 자료=금융감독원
국내은행 원화대출 연체율 추이. 자료=금융감독원

[이코리아] 각국 중앙은행이 긴축 속도조절에 나섰지만, 금리인상의 여파가 계속되면서 금융권 건전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늘어난 이자부담으로 연체율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은행 건전성 악화 위험에 대한 선제적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시중은행의 연체율은 지속적인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5월 신규 연체율(잠정) 평균은 0.09%로 전년 동월(0.04%) 대비 0.05%포인트 높아진 것으로 집계됐다. 신규 연체율은 매달 새로 발생한 연체 금액을 전월 말 대출잔액으로 나눈 것으로, 연체 추이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다. 

금리인상의 여파로 인한 연체율 상승세는 가계와 기업을 가리지 않는다. 실제 지난달 가계 신규 연체율은 전년 동월(0.04%) 대비 2배 오른 0.08%였으며, 기업 신규 연체율은 같은 기간 0.05%에서 0.11%로 2배가 넘게 상승했다. 기업 실적 회복은 더딘데 이자 부담은 가중되면서 한계기업(3년 연속 이자비용이 영업이익보다 많은 기업)도 늘어나는 추세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2347개를 조사한 결과, 국내 상장사 중 17.5%가 한계기업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코로나19 이전인 지난 2016년(9.3%)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자영업자들도 이자부담에 짓눌리고 있다.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말 자영업자의 전체 금융기관 대출 잔액은 1033조7000억원으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자영업자 연체율 또한 전분기 대비 0.35%포인트 오른 1.00%포인트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2015년 1분기(1.13%)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자영업자 연체율 상승폭 또한 지난해 3분기(0.06%포인트)와 4분기(0.12%포인트)에 이어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이 때문에 은행이 선제적으로 건전성 악화 위험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발표한 ‘국내은행 건전성 위협 요인 및 향후 대응방안’ 보고서에서 “금융권의 건전성이 악화된 것은 경기침체에도 원인이 있으나 시장금리 상승으로 대출금리가 큰 폭으로 오르면서 가계와 기업 등 차입자들의 이자부담이 크게 증가한 것이 주요 요인”이라며 “특히 최근의 금리 상승세는 짧은 기간에 높은 상승률을 보여 기업들이 고금리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데다, 이전 수준으로 복귀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거나 복귀가 어려울 수도 있어 한계기업들의 부실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의 금리상승기에는 약 3년 간 금리가 천천히(약 60.6%) 올라 기업들이 고금리에 적응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데다, 금리가 최고점에 오른 뒤 단기간에 원래 수준으로 하락해 기업들의 이자 부담이 크지 않았다. 반면, 최근에는 약 2년 3개월간 금리가 급격하게(약 410.8%) 오른 데다, 단기간에 금리가 원래 수준으로 하락할 것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이달 금리동결을 선언했지만, 연말 금리전망치를 지난 3월 대비 0.5%포인트 오린 5.6%로 상향조정하면서 추가 인상 가능성을 암시한 바 있다. 이미 한미 금리차가 역대 최대 수준인 상황에서 연준이 추가 인상을 단행할 경우 한국은행도 금리동결을 고집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국내 물가가 안정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근원 물가상승률(식료품·에너지 제외)은 여전히 목표치를 웃돌고 있다. 한은은 지난 19일 발표한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보고서에서 “앞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기저효과의 영향으로 올해 중반까지 뚜렷한 둔화흐름이 이어지면서 2%대로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근원물가 상승률은 올해 중반경까지 소비자물가에 비해 더딘 둔화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로나19 금융지원의 착시효과도 사라지고 있다. 실제 지난 2020년 4월부터 운영돼오던 ‘중소기업·소상공인에 대한 대출 만기연장 및 원금·이자에 대한 상환유예 제도’ 중 상환유예가 올해 9월 종료될 예정이다. 이미 국내 은행 원화대출 연체율은 올해 1분기말 기준 0.33%로 코로나19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물론 상환유예 지원대상 여신은 전체 잔액의 7.7% 수준에 불과하지만, 만약 고금리 및 경기둔화가 장기화될 경우 금융권, 특히 은행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금융당국은 최근 은행 건전성에 대한 점검을 시행하고 관련 제도를 정비하는 등 은행 건전성악화에 잘 대비해 왔다”면서도 “그러나 앞서 보고서에서 제시한 요인들로 인해 은행 건전성이 예상보다 더 나빠질 수 있으므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예상치 못한 문제 발생에 대한 대비책도 미리 마련하는 등 은행 건전성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이어 “국내은행들 역시 그간 건전성이 지속적으로 개선되어 왔기 때문에 건전성 악화라는 상황이 익숙하지는 않지만, 수익이 많이 늘어난 지금이 오히려 리스크를 축소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점을 인식하고 건전성 관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아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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