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5월 2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5월 2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년 3개월만에 금리인상을 중단하면서, 선제적으로 긴축 속도조절에 나선 한국은행도 한숨을 돌리게 됐다. 다만 연준이 추가 인상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는 데다, 아직 물가인상 여력도 충분한 만큼, 한은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연준은 지난 14일(현지시간) FOMC 정례회의를 마친 뒤 성명을 통해 기준금리를 기존 5.00~5.25%로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연준은 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지난해 3월부터 올해 5월까지 10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해왔다. 특히 연준은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는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을 4차례 연속 단행하는 등 긴축 속도를 올렸으나, 최근 들어 물가상승세가 둔화되고 과열된 고용시장 또한 진정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속도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연준이 금리를 동결하면서 한은의 통화정책 결정에도 한결 여유가 생겼다. 한은은 이미 지난 2월, 4월, 5월 회의에서 세 차례 연속 금리동결을 결정하며 속도조절에 나선 바 있다. 그새 연준이 3연속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밟으며 한미 금리차가 역대 최대 수준인 1.75%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여러 차례 한미 금리차가 환율을 형성하는 결정적 요인은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벌어진 금리차로 인한 자본 유출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연준의 금리동결로 인해 한은은 시간적 여유를 벌게 됐다.

계속되는 가계부채 리스크 및 경기둔화에 대한 부담도 연준의 금리동결이 반가운 이유다. 실제 국제금융협회(IFF)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올해 1분기 기준 102.2%로 조사대상 34개국 중 1위를 차지했다. 국내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 또한 3월말 기준 0.33%로 전년 동월 대비 0.11%포인트 오른 상태다.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해 가계의 이자 부담이 늘어나면, 그동안 국내경제 회복을 이끌어온 민간소비마저 위축되 경기가 더욱 악화될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연준이 여전히 연내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FOMC가 발표한 점도펴(dot plot)에 나온 연말 금리예상치는 5.6%로 지난 3월 전망치(5.1%) 대비 0.5%포인트 높아졌다. 이는 올 하반기에 두 차례의 기준금리 인상(0.25%포인트 기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 또한 FOMC 후 기자회견에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여전히 높은 상태” “대부분의 FOMC 위원들이 물가상승률을 2%로 낮추려면 연내 추가 인상이 적절할 것 같다는 견해를 보였다”라고 말했다.

반면, 증권가에서는 연준의 연내 추가 인상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승훈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핵심물가가 버티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거비와 중고차를 제외하면 새로 추가되는 인플레 압력은 크게 경감되어 있다”며 “파월 의장이 디스인플레이션의 초기 징후만이 보인다고 언급했던 주거비 제외 핵심서비스 CPI 상승률도 5월 들어 전년대비 5.4%까지 내려 오면서 디스인플레이션 확산에 힘을 보태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이어 “연준이 점도표에서의 추가 인상을 시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데이터에 기반했을 때 연내 추가 인상 유인이 크지 않다”며 “연준의 금리인하는 올해보다는 내년 1분기에 현실화될 공산이 크다”고 내다봤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 또한 “(파월 의장의) 발언을 종합해볼 때 7월 인상을 확실시하는 것은 과도하다”며 “파월 의장의 주요 발언 내용처럼 이미 충분히 제약적인 금리 수준에 도달했고, 지금까지의 금리인상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완전히 평가하려는 시간이 필요하다는게 이번 6월 FOMC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이어 “인플레이션을 추가로 더 낮추기 위해서는 낮은 성장률과 높은 실업률이 일부 수반되어야 하는데 성장률 전망치는 오히려 상향, 실업률은 미미하게 하향조정됐다”며 “향후에도 강력한 금리인상 단행보다는 인상의 효과 및 데이터를 주시하며 통화정책 기조를 운영하겠다는 연준의 의지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국내 물가상승 여력이 아직 높다며 한은이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펴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반론도 나온다. 박춘성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발표한 ‘팬데믹 시기의 소비 여력에 대한 평가와 정책 시사점’ 보고서에서 “애초의 우려와는 다르게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중 가구 소득이 크게 감소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팬데믹에 대응한 완화적인 통화·재정정책은 가구의 소비 여력을 상당히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가계 순저축률은 팬데믹 전인 2019년 6.9%에서 2021년 11.6%로 급등했다. 소득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소비 여력은 늘어나면서 팬데믹으로 소비할 곳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 겹쳐 저축률이 크게 늘어난 것. 실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이후 민간소비 증가율은 계속해서 GDP 증가율을 앞지르고 있다. 

박 연구위원은 “최근의 높은 금리 수준에도 불구하고 가계의 소비 여력에 따른 수요측 압력이 상당 기간 인플레이션의 상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음에 따라, 현재의 긴축적인 통화·재정 정책이 당분간 지속될 필요가 있다”며 “향후 성장률 하락 우려 등에 대응하는 완화적 정책은 결국 정부·민간 부채를 증가시키고 물가를 더욱 자극할 수 있으므로 신중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오는 7월 13일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열고 기준금리 인상 여부를 논의할 계획이다. 연준의 금리동결로 시간을 벌게 된 한은이 다음 회의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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