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사진=뉴시스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불법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 개인의 책임을 노동조합과 동일하게 물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실상 ‘노란봉투법’과 같은 판결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대법원의 판단에 대한 언론의 평가도 엇갈리는 모양새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지난 15일 현대자동차가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소속 조합원 4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앞서 현대차는 지난 2010년 발생한 파업으로 피해를 봤다며, 파업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낸 바 있다. 1·2심에서는 파업 참여 노동자 4명의 책임을 인정해 현대차가 청구한 20억원을 공동 배상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은 “노조의 의사결정이나 실행 행위에 관여한 정도 등은 조합원마다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라며 “개별 조합원의 책임은 노조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노조의 지시에 따라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 개인은 노조의 지시에 불응하기 어려운 만큼, 조합과 조합원에게 동일한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대법원 현대차 파업 손배소송 판결, 키워드는 ‘노란봉투법’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뉴스 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서 ‘현대차’, ‘파업’, ‘대법원’을 함께 검색한 결과, 지난 15일부터 16일까지 총 201건의 기사가 보도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대법원 판결이 나온 15일 143건의 기사가 집중 보도됐다.

대법원 판결 관련 기사에 가장 자주 등장한 키워드는 ‘손해배상 책임’이었으며, 그다음은 ‘(노란)봉투법’이었다. 이는 재계와 노동계, 언론에서 모두 대법원 판결이 사실상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과 동일한 내용이라는 분석이 나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재 국회 본회의에 직부된 노란봉투법에는 “법원이 조합원 등의 쟁의행위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그 손해에 대하여 각 배상 의무자별로 각각의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범위를 정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는데, 이번 대법원 판결 취지와 비슷한 내용이다. 

이번 판결의 주심 노정희 대법관의 이름도 연관키워드 목록에 포함됐다. 특히 경제지들은 노 대법관의 과거 이력을 문제삼으며 비판적인 기사를 내보냈다. 한국경제는 15일 기사에서 “노 대법관은 1990년 판사로 임관할 당시 2년간 진보 성향 판사 모임으로 평가되는 우리법연구회에서 활동했다. 1995년부터 5년간 변호사로 활동할 때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이었다”며 “선관위원장 취임 후에는 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가 진행된 일부 투표소에서 코로나19 확진자의 투표용지를 소쿠리와 종이가방, 쓰레기봉투 등에 넣도록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거센 비판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매일경제 또한 이날 기사에서 “노 대법관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0년 7월 경기도지사로 재직할 당시 선거법 위반 여부가 문제가 된 전원합의체 사건의 주심이었다. 이때 노 대법관은 무죄 판결을 주도했다”며 “노 대법관은 복귀 이후에도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로부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업무방해죄와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하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15~16일 보도된 대법원 현대차 손배소송 판결 관련 기사의 연관 키워드. 자료=빅카인즈
15~16일 보도된 대법원 현대차 손배소송 판결 관련 기사의 연관 키워드. 자료=빅카인즈

◇ 언론, “친노조 판결” vs “묻지마 손배 방지”

사실상 ‘노란봉투법’ 지지 측의 손을 들어준 것이라 평가받는 대법원 판결을 두고 언론의 평가는 두 갈래로 나뉘고 있다. 보수성향 매체와 경제지들은 대법원의 불법파업을 용인한 것이라며 재계의 우려를 전하고 있는 반면, 진보성향 매체는 정부·여당에 노란봉투법 입법에 협조할 것을 요청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16일 사설에서 “대법원 판례대로라면 이제는 회사가 수많은 조합원들의 불법행위 가담 정도를 일일이 개별적으로 파악해 입증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라고 반문하며 “기업의 부담은 가중되고 배상 범위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사실상 대법원이 기업의 손배 청구를 어렵게 만든 것으로 노조 편을 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이번 판례는 ‘공동 불법행위에 대해선 참가자들이 연대 책임을 진다’는 민법의 대원칙과도 맞지 않는다. 민주당이 노란봉투법을 추진한 것도 이 민법의 대원칙을 피해가기 위한 것”이라며 “기업계는 이 법안을 반대하고 있지만 법안이 통과되기도 전에 대법원이 판례로 사실상 이 법안을 뒷받침하는 입법의 효과를 냈다. 대법원이 정치를 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한국경제 또한 15일 사설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불법 파업을 조장할 편향적인 ‘친노조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한국경제는 “민법(760조)은 교사자나 방조자도 공동행위자이며, 손해가 누구의 행위에 따른 것인지 알 수 없을 때는 연대배상할 것을 명문화하고 있다”며 “이번 판결은 이 ‘예외’를 노조 불법행위에는 ‘원칙’으로 적용하자는 것이어서 모순적이다. 노조원에 대한 특별한 보호는 일반 국민과의 형평성을 저해해 법적 안정성을 위협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경제는 이어 “파업 특성상 개별 불법행위 입증이 어려운 탓에 노조원은 생산라인을 멈춰 세워도 배상에서 면책될 개연성이 커졌다”라며 “파업에 따른 한 해 근로손실일수가 일본의 193.5배, 미국의 5.4배에 달하는 파업 천국임을 외면한 ‘탁상 판결’”이라고 대법원 판단을 비판했다.

반면 한겨레는 이날 사설에서 “그동안 노동 현장에선 개별 조합원에게도 가해지는 무차별적 손배소가 노조를 무력화하는 수단으로 쓰이는 동시에, 경제적 고통이 가중된 노동자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라며 “이번 대법원 판단은 기업의 ‘묻지마’식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앞으로 국회 본회의 문턱에 와 있는 노란봉투법의 입법에도 좀더 힘이 실릴 전망”이라며 “대법원의 새로운 법리 제시로 노란봉투법 없이도 유사한 입법 효과가 발생하는 셈이어서,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명분도 사라졌다”고 내다봤다.

한국일보 또한 16일 사설에서 “여권과 재계는 노조원 책임을 일일이 따지려면 소송 자체가 어려워져 파업이 조장될 수 있다며 노란봉투법에 반대해왔으나 이번 판결로 반대 근거가 약해졌다”며 “대법원이 입법 취지를 인정한만큼 정부·여당은 노란봉투법 논의에 나서고, 야당도 재계 우려에 귀 기울이며 협의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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