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GI가 최근 DB하이텍에 보낸 주주서한을 공개했다. 사진=KCGI 홈페이지 갈무리
KCGI가 최근 DB하이텍에 보낸 주주서한을 공개했다. 사진=KCGI 홈페이지 갈무리

[이코리아] 행동주의 펀드 KCGI가 DB그룹의 반도체 계열사 DB하이텍에 대해 지배구조 개선을 요청하는 주주서한을 발송하면서 오너일가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DB하이텍의 오너일가 지분율이 많지 않은 데다 지주사 전환 이슈까지 걸려 있어, 자칫 이번 주주서한이 경영권 분쟁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강성부 펀드’로도 불리는 KCGI는 최근 DB하이텍의 거버넌스 선진화 방안을 담은 주주서한을 공개했다. KCGI는 주주서한에서 ▲지배주주의 사익 추구 ▲불투명한 경영 및 내부통제 미비 ▲주주권익 무시 등을 DB하이텍 주가 저평가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기업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독립적 이사회 구성 ▲내부통제 강화 및 경영투명성 제고 ▲주주권익 증진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KCGI는 또한 지난 13일 DB하이텍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요청한 자료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부적절한 경영을 감시하기 위해 회계장부 및 이사회 의사록의 열람·등사 가처분 신청을 냈다고 밝혔다.

KCGI가 이번 주주서한을 통해 조준하고 있는 것은 DB그룹 창업자인 김준기 창업회장 등 오너일가다. 실제 KCGI이 보낸 주주서한에 따르면, 김준기 창업회장과 김남호 회장은 DB하이텍의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하면서 지난해 총 68억원의 보수를 받아갔다. KCGI는 오너 부자의 보수가 전년 대비 49% 늘어나는 동안 등기임원의 보수는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KCGI는 이어 김준기 창업회장이 과거 가사도우미를 성폭행하고 비서를 성추행해 유죄를 선고받은 사실을 거론하며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던 창업회장이 미등기임원으로 재직할 뿐 아니라, 고액의 연봉을 수령하는 등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DB하이텍의 물적분할 결정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앞서 DB하이텍은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팹리스 자회사 DB글로벌칩의 물적분할 안건을 의결한 바 있다. 물적분할 후 신설 법인을 상장하는 ‘쪼개기 상장’으로 모회사 주주들이 피해를 입은 사례가 적지 않았던 만큼, 당시에도 주가 하락을 우려해 분할을 반대하는 소액주주들의 목소리가 높았다. 

KCGI는 지주사 전환 이슈로 골치를 앓고 있는 DB그룹 오너일가가 DB하이텍 주가를 의도적으로 낮추기 위해 소액주주 의견을 무시하고 물적분할을 강행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특정 회사의 자산총액이 5000억원 이상이고 소유한 자회사의 주식가액 합계가 자산총액의 50% 이상이면 지주사로 자동 전환된다. 또한 지주사로 전환될 경우, 2년 이내에 자회사 및 손자회사 지분을 상장사는 30%, 비상장사는 50% 이상 보유해야 한다. DB그룹 오너일가가 보유한 DB하이텍 지분은 DB Inc(12.4%), 김준기 창업회장(3.6%) 등 약 18% 수준이다. DB하이텍 주가가 올라 DB Inc이 보유한 자회사 주식 가치가 자산총액의 50%를 넘을 경우, 오너일가는 DB하이텍 주식을 12% 가량 추가로 확보해야 하는 부담이 생기게 된다. KCGI는 주주가치와 오너일가의 이해관계가 상충된다며, “DB글로벌칩 물적분할 관련 논란들과 자사주 매입이 지주사 전환을 피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기를 바란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KCGI가 목소리를 높이면서 이번 주주서한이 경영권 분쟁으로 확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김준기 창업회장과 아들 김남호 DB그룹 회장 간의 갈등 때문에 발생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준기 창업회장이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지난 2020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김남호 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했지만, 2021년 김준기 창업회장이 다시 DB와 DB하이텍 상근 경영고문으로 복귀하면서 부자 갈등이 불거졌다는 것. 게다가 김준기 창업회장은 지난해 말 DB김준기문화재단 소유의 DB Inc 보통주 864만주를 전량 매입하며 DB지분을 기준 11.6%에서 15.9%까지 늘렸다. 이 때문에 경영권에 위협을 느낀 김남호 회장이 KCGI와 손잡고 대응에 나선 것 아니냐는 루머까지 돌고 있다. 실제 KCGI는 이번 주주서한에서 김준기 창업회장의 퇴사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KCGI의 비판과 오너일가 내부 갈등설은 지나친 비약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DB하이텍의 주가가 저평가된 것은 지주사 전환 이슈를 의식한 오너일가의 물적분할 강행보다는 반도체 업황 악화 때문이라는 것. 실제 DB하이텍 주가는 반도체 업황 악화로 올해 초까지 고전을 면치 못했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장주와 대동소이한 모습을 보였다. 또한 김준기·김남호 부자 간의 경영권 분쟁에 대한 의혹도 최근 경영체제 개선 과정에서 불거진 오해가 확대·와전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오너일가가 보유한 DB하이텍 지분이 많지 않은 데다 지주사 전환 리스크는 여전이 남아있는 만큼, KCGI의 공세를 무시하기는 어렵다. 현재 KCGI가 보유한 지분은 약 7%로 오너일가 지분의 3분의 1 수준이지만, 소액주주 지분이 큰 만큼 추가 확보에 나설 경우 경영권에 위협이 될 수 있다. 게다가 경영권 분쟁으로 DB하이텍 주가가 오를 경우 DB Inc의 지주사 전환 이슈가 다시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KCGI의 공세에 DB그룹이 어떻게 대응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