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왼쪽)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사진=삼성전자, 현대자동차그룹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왼쪽)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사진=삼성전자, 현대자동차그룹 

[이코리아]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그룹 등 주요 그룹을 중심으로 해외법인 소득을 국내로 투자하는 '자본 리쇼어링'이 본격화되고 있다. 반도체·자동차 등 주력산업의 국내 투자가 활기를 띨 뿐만 아니라 경상수지 개선, 환율 안정에도 기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4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그룹이 해외법인이 벌어들인 돈 59억 달러를  연내(상반기 중 79%) 국내로 가지고 오기로 했다. 국내로 유입되는 약 7조 8000억원을 국내 투자 재원으로 활용한다고 발표했는데, 현대차는 약 2조8000억원, 기아는 4조4000억원, 모비스는 약 2500억원이다. 기업 해외 자금을 국내 본사로 이전하는 이른바 '자본 리쇼어링'이다. 

리쇼어링(re-shoring)은 생산비와 인건비 절감 등을 이유로 해외로 생산시설을 옮긴 기업들이 다시 자국으로 돌아오는 현상을 말한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스마트 팩토리의 확산과 정책적인 측면에서 보호무역주의의 확산으로 인해 리쇼어링이 최근 활성화되고 있다. 여기에 국내 투자 확대를 위해 해외 자회사가 거둔 소득을 국내로 들여오는 것을 자본 리쇼어링이라고 한다. 

이번 자본 리쇼어링 추진 배경에는 정부가 국내 투자 활성화 취지로 개편한 법인세법 영향도 있다. 

지난해 법인세법 개정으로 올해부터 해외에서 이미 과세된 배당금에 대해서 배당금의 5%에 한해 국내에 과세되고 나머지 95%는 면제된다. 정부는 "해외 자회사 배당금에 대한 이중과세 조정을 확대해 기업이 해외에 유보한 소득의 국내 유입 유도할 것"이라며 개편 취지를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이 배당금으로 현대차의 울산 전기차 전용공장과 기아 오토랜드 화성의 고객 맞춤형 전기차 전용 공장 신설 등에 이용한다고 밝혔다. 

현대차만이 자본 리쇼어링을 하는 게 아니다. 삼성전자도 올 1분기 8조 원이 넘는 배당금을 해외에서 들여왔다. 

삼성전자의 경우 연초부터 해외 법인이 보유 중인 유보금을 대거 국내로 들여왔다. 삼성전자 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4분기 배당금수익은 8조4400억원으로, 전년 동기(1275억원)보다 무려 60배가 늘었다. 

SK, LG 등 다른 기업들도 동참을 저울질하고 있다. 포스코홀딩스(5202억원), SK이노베이션(3702억원), SK하이닉스(933억원) 등도 1·4분기 자본 리쇼어링에 가세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우리 해외투자법인이 내부 유보로 갖고 있는 소득은 2021년 기준 총 902억달러(누적)로 추산된다. 이 중에 국내로 들여오는 이익배당수입이 급증하면서 해외자회사의 내부 유보 잉여금은 감소하는 중이다. 국제수지표상의 ‘재투자수익수입’이 그것인데 올해 1~4월에 13억달러로, 같은 기간으로 보면 2022년(48억달러)과 2021년(41억달러)에 견줘 크게 감소했다.

그간 한국기업이 해외에서 번 돈을 한국에 들여오지 않고 해외에 쌓아두는 해외유보금 형태가 한국경제, 특히 국내 일자리를 늘리지 못하는데 큰 맹점이 되어 왔다.

해외 유보금을 국내 투자 재원으로 활용하게 되면, 기업들로서도 국내 차입을 줄일 수 있어 재무건전성 관리가 한층 쉬워진다. 대규모 배당 유입으로 경상수지 개선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대규모 달러 자금 유입으로 환율 상승 압박을 완화시킬 것이란 기대감도 나온다.

전문가들도 국내 기업의 해외 수익의 자본 리쇼어링을 통한 경상수지 개선, 일자리 창출 효과 등의 역할을 실제로 하리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이주선 연세대 경영대학 산업협력교수는 14일 <이코리아>와 통화에서 "자본 리쇼어링은 외국인 투자 유치보다 더 대단한 돈이다. 외국인 투자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 특혜를 줘야 하지만 국내 기업의 경우 플러스 알파적인 특혜를 주지 않아도 자신들의 투자에 쓰는 만큼 유효성이 더 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또 외부의 경영환경이 과거보다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들이 리쇼어링이 낫다는 생각이 늘어나는 것"이라면서 "이럴 때 정부가 규제도 낮추고 더 경쟁적인 법인세율로 리쇼어링을 도와 기업 환경을 좋은 쪽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리쇼어링 관련 경쟁국들의 상황은 어떨까. 

미국은 법인세 인하 등 과감한 유인책으로 지난 2020년 한해에만 1480개 이상의 기업이 복귀했고, 일본도 과감한 사업 보조금 지원 정책으로 해외 생산 기업 중 약 14%가 일본으로 생산 거점을 옮긴 것으로 나타난다.

이와 관련 대만이 첨단산업인 반도체 관련 대기업이 한국보다 2배 이상 많이 보유한 것은 정부가 규제를 풀어주고, 전폭 지원하는 정책을 펼친 데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해 9월 '대만의 산업정책 특징 및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대만의 성공비결은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만한 첨단·미래산업에 대해 정부가 규제를 풀어주고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산업정책을 펼친 데 있다"고 밝혔다.

중국에 2년 이상 투자한 대만 기업 중에 리쇼어링을 하는 경우, 대만 정부는 5000억대만달러(약 22조 3800억원) 규모의 국가발전기금을 활용해 대출 및 대출이자 등 각종 지원을 제공한다. 외국인 근로자 고용 비율도 최대 40%까지 허용하며 토지와 수력, 전력 등 인프라 관련 우대 혜택을 제공한다. 

우리나라도 2013년 8월 6일 ‘해외진출기업의 국내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유턴법)’을 제정하면서 본격적으로 리쇼어링 정책을 추진하면서 조세감면 및 보조금 지원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도 지난해 12월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제1차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2023년부터 생산기지를 해외에서 국내로 옮기는 유턴 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내용의 ‘2023년 경제정책방향’을 확정·발표했다. 계획안에 따르면 리쇼어링 기업이 중고 설비나 기존 공장을 매입해도 투자로 인정해 세금 감면 혜택이 주어진다.

국내 리턴 기업수는 2013년 유턴법이 도입된 첫해 많았다가 점차 감소추세였다. 그러다 2018년 이후 다시 국내로 돌아오는 기업 수가 증가하고 있고, 유턴법 도입 첫해 기업 숫자만큼 양적으로 도달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8년 8개 사에 그쳤던 국내 복귀 기업은 2019년 14개 사로 늘어난 데 이어 2020년에 23개 사로 증가했다. 2021년에도 증가세가 이어져 26개 사를 기록했고, 2022년에는 24개 사를 나타냈다. 

민혁기 산업연구원 통상정책실 연구위원은 "유턴법 첫해 국내로 복귀한 기업들의 경우 노동집약적인 중소기업들이 많이 돌아왔는데, 최근에는 흐름이 바뀌어서 2018년 이후 현대모비스, LG 등 중견기업들이 많이 돌아왔다"며 "전반적으로 국내복귀 기업의 사이즈도 커지고 있고 투자규모도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 연구위원은 "무엇보다 미·중 디커플링, 공급망 재편 등의 이슈로 우리나라도 공급망 관련 분야 기업의 국내 유턴이나 첨단산업의 유턴에 있어서 유턴기업 선정 요건을 완화해줬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만 글로벌 및 국내 경기가 정체된 상태라 투자를 즉각적으로 많이 하긴 어려운 상황이고, 국내 유턴 정책을 실행한다고 해도 미국이나 유럽연합(EU) 등에 비해 작은 규모의 시장 한계가 있어서 대대적인 유턴은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첨단산업의 기업들이 돌아오면서 관련 기업 분야의 생태계를 갖출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유턴 정책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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