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픽사베이
= 픽사베이

[이코리아] AI 등 디지털 기술들이 업무에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AI를 활용한 노동감시 문제도 부상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7일 기업들이 AI를 활용해 근로자를 모니터링하는 실제 사례와 우려에 대해 전했다. 업무용 소프트웨어와 AI 기술을 활용해 직원을 모니터링하면 직원들이 매출을 늘리고 스트레스를 줄이며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지만, 일부 근로자는 데이터 수집과 개인정보 보호에 대해 우려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일부 업무용 소프트웨어 제공 업체들은 모니터링 데이터를 활용해 근로자의 번아웃을 방지하고 스트레스 수준을 낮추며 생산성과 참여도를 높일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또 직장에서의 기술, 복지 및 사회적 관계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공(Gong)' 누리집
= '공(Gong)' 누리집

워싱턴포스트는 현재 서비스중인 업무용 소프트웨어들의 사례를 전했다.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공(Gong)’은 4천여 고객사를 보유한 근로자 모니터링 AI 플랫폼이다. 영업사원과 관리자가 거래를 추적하고, 작업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후속 조치 초안을 작성하고, 통화에서 중요한 키워드와 개념을 메모 및 검색하고, 이전 성공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상의 전략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는 데 챗 GPT의 대규모 언어 모델과 자체 구축한 AI를 활용하고 있다.

해당 플랫폼은 영업사원의 통화 빈도, 통화량, 대화 내용 등을 평가해 작업자가 이를 개선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공을 창립한 아밋 벤도프는 AI 플랫폼을 출시하면서 회사들이 근로자를 감시하는 ‘빅 브라더’ 문제를 우려했지만,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알게 되면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진다고 주장했다. 자신들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 영업사원이 동시에 20~30개의 거래를 관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근로자의 심박수 변화를 모니터링해 스트레스를 관리하도록 돕는 ‘펄스(Pulse)’ 앱의 사례도 있다. 이 앱의 AI가 근로자의 심박수를 통해 스트레스 수치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업무상 큰 스트레스가 발생하면 챗봇 등을 통해 도움이 되는 질문을 근로자에 제공한다. 또 근로자의 업무 스케쥴을 함께 관리해 회사가 근로자의 스트레스가 높아질 수 있는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글루(Glue)’는 근로자 간의 연결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플랫폼이다. 이 플랫폼은 인사 부서가 동료 또는 조직과의 유대감이 떨어진다고 느끼는 직원을 식별하고 도움을 제공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AI는 회사 내 특정 역할에 기반한 참여도 벤치마크를 사용해 직원들이 언제 소외감을 느끼는지 파악한다. 또 챗 GPT를 비롯한 대규모 언어 모델을 사용해 직원의 대화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처럼 미국의 많은 기업이 AI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근로자를 모니터링 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럴 웨스트 브루킹스 연구소 기술 혁신 센터 선임 연구원은 기술이 직장의 역학을 변화시키고 있으며 이는 일부 근로자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근로자가 상사에게 아첨하는 대신, 컴퓨터와 AI에 신경써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근로자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는 기업이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정보를 더 많이 확보할 방법으로 보일 뿐이다. 마치 ‘빅 브라더’가 나를 감시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근로자는 “이런 모니터링 기술의 도입은 직원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용주와 직원 간의 유대감을 형성해야 할 시기에 침입적인 감시로 인해 유대감이 약화되거나 완전히 단절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8월 월스트리트 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팬데믹 이전에는 대기업 고용주의 약 30% 만이 직원 모니터링을 사용했지만, 현재 대기업 고용주의 60%는 AI와 같은 기술을 활용해 직원 중 일부를 추적하고 있다.

로이터 역시 지난 4월 직장에서의 AI 활용 모니터링이 증가하고 있다고 보도하며 AI를 활용한 노동감시 문제에 주목했다. 코로나 19의 대유행으로 지난 몇 년 동안 직장 규범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으며, 많은 고용주는 이러한 요구 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진화하는 기술로 눈을 돌렸다는 것이다.

그동안 미국에는 직원과 커뮤니케이션을 모니터링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직장 내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우려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 때문에 고용주는 키보드 입력, 근로자의 컴퓨터 화면, 심지어는 시선 추적 소프트웨어까지 활용해 원격 근무자를 전례 없는 속도로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야니스 바루파키스 전 그리스 재무장관은 마켓워치에 올린 기고문을 통해 AI가 대기업이 노동 운동을 방해하는 등 근로자 억압에 활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마존은 AI를 활용해 근로자의 특성과 행동이 친노조 성향과 상관관계가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분류했으며, 노조 합류의 가능성이 있는 근로자를 감시하는데 이용했다는 주장이다. 바루파키스는 “이제 대기업은 노동자들의 힘이 거의 없는 세상에서 노동조합이라는 유일한 권력을 부여할 수 있는 기관을 없애기 위해 AI를 활용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 백악관 누리집 갈무리
= 백악관 누리집 갈무리

이런 노동감시 문제는 최근 미국 정치권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백악관 과학기술정책국은 지난 5월 1일 근로자의 날을 맞아 고용주가 자동화 도구를 활용해 근로자를 모니터링하는 ‘디지털 노동감시’에 대한 국민의 의견을 청취한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고용주는 근로자를 모니터링하고 추적하는 기술에 점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있으며, 해당 정보를 바탕으로 직장 내 의사 결정을 내리고 있다. 이런 기술은 경우에 따라 근로자와 고용주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근로자에게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또 이런 지속적인 성과 추적은 작업자가 업무에서 너무 빨리 움직이도록 내몰아 안전과 정신 건강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으며, 대화 모니터링은 근로자가 고용주와 단체를 조직하고 단체 교섭을 할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자동화된 감시가 급여, 징계, 승진에 대한 고용주의 결정과 결합될 경우 근로자는 차별 대우를 받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고용평등기회위원회(EEOC)는 지난 5월 19일 현재 기업들이 사용하고 있는 AI 기반의 모니터링 도구가 차별법에 위배될 수 있다고 경고하며 고용 또는 승진 대상자와 같은 고용 결정에 자동화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최신 지침을 발표했다.

EEOC는 기업이 모니터링 도구를 주의 깊게 사용하지 않으면 임신한 여성, 일정한 시간에 기도하는 무슬림 등 특정한 상황에 놓인 직원을 차별하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샬럿 버로우스 위원장은 "첨단 기술을 이용해 차별을 일삼는다고 해서 민권법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 뉴시스
= 뉴시스

디지털 노동감시 문제는 국내에서도 몇 차례 논란이 되었다. 지난 3월에는 여성 콜센터 노동자들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함께 회견을 열어 콜센터 사업장의 근무 여건 개선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 과정에서 AI가 콜센터 노동자를 감시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상담사가 고객에게 “안녕하세요”가 아니라 “여보세요”라고 하면 AI가 상담사 점수를 깎는 식이다. 

이날 회견에 참여한 한 노동자는 “상담사 노하우를 수집해 AI를 개선하더니 이제는 AI가 음성을 잘못 인식해도 감점한다. AI 오류까지 보고하라 하는데 스스로 일자리를 없애는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개인정보위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지난 1월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국내 기업 118곳 중 88.1%가 CCTV를 설치하고 있으며, 61%가 생채인식 장비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안전 목적으로 설치한 CCTV가 근로 감시 목적으로 사용되거나 회사가 개인정보 처리 동의를 강제하는 등의 사례가 나타났으며 채용 면접 시 활용되는 인공지능(AI) 신뢰성 문제와 위치정보 수집‧감시 문제도 부각 되었다.

지난해 3월에는 강은미 정의당 국회의원이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전자적 노동감시를 규제하는 근로기준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전자적 감시설비는 시설 보호, 노동자 안전, 영업비밀 보호 등 사용자의 정당한 경영상 필요를 명분으로 도입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의 위치나 이동 경로, 이메일이나 SNS 활용 내역, 개인적 취향이나 성향, 노동조합 활동 등 민감한 개인정보를 수집하여 노동자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고 또한 노동조합 활동을 방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 제안의 이유다.

이에 개정안을 통해 전자적 근로자 감시를 금지하고, 사업 목적 달성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만 노동자의 권리 침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노동조합 또는 노동자 대표와의 합의를 통하여 도입하도록 해 감시설비로 인한 근로자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권리 침해를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 해당 개정안의 골자다. 해당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서 위원회 심사과정에 머물러있다.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