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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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 플랫폼 노동자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을 보호해야 할 사회안전망은 여전히 부실한 상황이다. 해외 주요국에서도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사회보장 혜택을 강화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제도 정비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달 발표한 ‘최근 플랫폼종사자 노동시장의 변화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플랫폼 노동자 수는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보고서는 최근 3개월 간 스마트폰 앱이나 웹사이트 등 온라인플랫폼의 중개·알선을 통해 일자리를 구하고 수입을 얻은 적이 한 번 이상 있는 사람을 ‘광의의 플랫폼종사자’로 정의하고, 이 가운데 플랫폼이 일방적으로 일감을 배정하는 경우를 제외한 나머지를 ‘협의의 플랫폼종사자’로 규정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광의의 플랫폼종사자는 2021년 219만7000명에서 2022년 291만9000명으로 72만2000명(32.9%) 늘어났으며, 협의의 플랫폼종사자는 같은 기간 66만1000명에서 79만5000명으로 13만4000명(20.3%) 증가했다. 이 기간 플랫폼종사자가 전체 취업자(15~69세)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광의 8.5%→11.0%, 협의 2.6%→3.0%로 늘어났다.

이처럼 플랫폼 노동자 규모가 커지고 있지만, 정작 이들을 보호해야 할 제도적 울타리는 여전히 허술한 상태다. 고용정보원 조사에 따르면, 플랫폼업체를 이용할 때 작성한 계약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어떠한 계약도 맺지 않았다”고 답한 응답자가 남자 41.7%, 여자 57.4%로 가장 많았다.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고 답한 응답자는 남자 18.1%, 여자 13.9%에 불과했다. 계약변경 절차에 대한 질문에서는 “플랫폼업체가 종사자에게 계약변경 내용 및 이유, 시기 등을 사전 통보한다”는 응답이 남자 39.2%, 여자 47.0%로 가장 많았지만, “플랫폼업체가 일방적으로 결정해 통보한다”는 응답도 남녀 각각 39.0%, 21.8%로 적지 않았다. 

플랫폼 노동자의 고용보험 가입률도 아직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정부는 지난 2020년 12월 예술인을 시작으로 2021년 7월 특수고용직 12개 직종으로 단계적으로 고용보험을 확대 적용해왔다. 지난해 1월 1일부터는 배달라이더 등 퀵서비스기사와 대리운전기사 같은 플랫폼 노동자도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또한 지난해 4월부터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저소득 플랫폼 노동자가 납부한 고용보험료 중 80%를 환급해주는 제도를 시행 중이다. 

정부의 노력으로 플랫폼 노동자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상승하는 추세지만 아직 절반을 넘지 못하고 있다. 고용정보원에 따르면, 플랫폼 종사자 중 고용보험에 가입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2021년 29.1%에서 지난해 46.4%로 17.3% 증가했으며, 산재보험 가입률 또한 같은 기간 30.1%에서 36.5%로 6.4% 늘어났다. 하지만 아직 정규직 근로자의 가입률(2021년 기준 고용보험 94.2%, 산재보험 97.8%)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게다가 지난해 플랫폼 노동자의 고용보험 가입률이 늘어난 것은 대부분 지난해 고용보험을 배달·배송·운송직에 확대 적용한 덕분이다. 최근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가사·청소·돌봄, 미술 등 창작활동, 데이터입력 등 다른 부문의 플랫폼 노동자들은 여전히 사회보장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해외 주요국은 이미 변화하는 노동환경에 발맞춰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사회보장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보험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사회보장 확대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이미 지난 2020년 플랫폼 노동자를 일반 노동자로 분류하는 법안이 발효돼 플랫폼 노동자도 최저임금·건강보험·노후대비연금 등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또한 오는 2027년부터는 시간제 직원,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등 저소득 노동자도 퇴직연금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고, 연방정부가 기여금의 50%를 지원하기로 했다. 

영국에서도 지난 2021년 우버(Uber) 운전자는 독립 계약자가 아닌 노동자로 분류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사회보장제도가 강화되고 있다. 당시 영국 대법원은 우버가 운전자에 대해 서비스 요금, 고객 수락 여부, 운전자의 서비스 제공 방식 등에 대한 엄격한 통제권을 행사하는 만큼 운전자를 일반 노동자로 분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우버는 같은 해 처음으로 운전자를 위한 퇴직연금제도를 시행하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도 지난해 12월 후생연금·건강보험의 적용 범위를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 프리랜서 및 플랫폼 노동자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또한 올해 4월 프리랜서 보호법이 가결되면서 위탁사업자에 대해서도 급여, 출산・육아휴직 등과 관련된 계약 조건의 명시가 의무화됐다. 위탁사업자에는 우버이츠와 같은 플랫폼업체도 포함될 수 있는 만큼,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보호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주요국 정부가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사회보장 강화에 서두르는 것은 이들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미국 생명보험마케팅연구협회(LIMRA)의 지난 2019년 조사에 따르면, 플랫폼 노동자는 일반 노동자보다 소득이 낮을 가능성이 높으며, 건강·생명보험 및 연금 가입률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도 정규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설계된 사회보장제도의 범위 안에 플랫폼 노동자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권오성 성신여자대학교 교수는 지난달 30일 열리 ‘플랫폼노동자 최저임금 권리 보장 방안 토론회’에서 “유급으로 노동을 제공하는 직업인으로서의 플랫폼 노동자는 모두 헌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며 “국회는 헌법 제32조 제1항의 취지에 따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는 문턱을 넘지 못한 ‘헌법상 근로자’를 위하여 현행 최저임금법과 유사한 별도의 입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정부도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사회보장 확대를 추진 중이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7일, 오는 7월 1일부터 산재보험 전속성 요건이 폐지됨에 따라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및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이 대폭 확대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전에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가 산재보험에 가입하려면 특정 업체에서 일정 시간과 소득을 채워 ‘전속성’ 요건을 충족해야 했다. 하지만 전속성 요건이 폐지되면서 여러 업체에서 일을 하는 플랫폼 노동자 등도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됐다. 정부는 전속성 폐지로 인해 약 92만5000명의 노동자가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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