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전 언론인.
임순만 전 언론인.

[이코리아] 직접 혹은 영화나 TV에서 빙하의 갈라진 좁고 깊은 틈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틈을 크레바스(crevasse)라고 한다. 크레바스는 주로 빙하의 운동이 급격하게 일어나는 곳에 생기는데 그 깊이가 최소 10m 이상으로 매우 깊고, 폭은 좁게는 뛰어넘을 수 있는 수십cm에서 넓게는 수백m에 이른다고 한다. 쩍 갈라진 모습이 훤히 보이는 것도 있지만, 눈으로 살짝 덮여 숨겨진 것들도 있어 자칫 잘못했다가는 크레바스인줄 모르고 발을 딛다가 추락해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유명한 산악인들도 크레바스에 빠져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가끔 전해진다. 실족사하게 되면 현대 기술로도 너무 위험하고 어렵기 때문에 시체도 찾기 어렵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갈등을 극복하고 화합을 이뤄내는 일이다. 측량되지 않는 깊이를 지닌 크레바스가 얼음 평원을 가르고 있듯, 무시무시한 얼음구덩이가 이쪽 진영과 저쪽 진영 사이에 건너갈 수 없는 틈을 벌리고 갈라져 있다.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이 윤석열 대통령 집권 1년 차 지지율이 낮은 이유 중 하나로 “언론이 기울어진 운동장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수석은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국 당협위원장 워크숍에 강연자로 나서 집권 1년 차 윤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의 이유로 “저희가 느끼기에 언론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평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사례로 김준영 한국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금속노련) 사무처장의 전남 광양제철소 앞 고공농성 방송 보도를 들었다. 매체에 따라 극심하게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그런 보도로 인해 1년 차 지지율이 낮았던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김 사무처장은 지난달 31일 오전 전남 광양제철소 쪽 철제구조물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던 중 경찰이 휘두른 진압봉에 1분여간 머리를 맞고 피를 흘린 채 진압된 바 있다. 이 수석의 발언을 접하며 과연, 이 사회의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인식의 차이는 거대한 크레바스 이상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언론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주장하는 이 수석과는 달리 진보 진영 및 언론학계에서는 정반대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언제부턴가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라는 말로 불리고 있는 전통의 종이신문들은 전국적으로 10% 이내의 소수를 제외하고는 철저하게 보수화 되어 있다. 시민운동권에서는 우리나라의 카르텔화 된 수구언론이 사회개혁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언론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고 외쳐온 지가 오래다. 윤 정부들어 기울어진 정도는 더욱 심각하다고 보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대다수의 시민단체들과 언론학계에서는 이명박 정부 당시 탄생한 4개의 종편방송들이 보수정치세력을 두둔하고 진보정치진영을 향해서는 공격 일변도의 방송을 한다고 파악한다. 전통 미디어들이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 편향 일색임에도 불구하고 교통방송의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김어준은 진보진영 편향이라고 하차당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언론 문제를 보는 양측의 시각에는 극복하기 어려운 인식의 차이가 있다. 

언론이 정치적 편향에 가담하면서 언제부턴가 언론이 권력으로부터 언론자유를 침해당해도 이를 강력히 비판하는 언론사가 없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정준희 교수(한양대) 등 5명의 학자들이 펴낸 <언론자유의 역설과 저널리즘의 딜레마>(멀리깊이)는 “오늘의 한국 언론의 현실은 언론자유뿐 아니라 시민의 자유에도 도통 관심이 없어 보인다.”고 지적한다. “언론자유는 시민에게 보장되는 표현의 자유와 이를 대행하는 언론기관에 주어진 자유로 분리되는데, 언론기관의 자유가 증진될수록 시민의 자유가 확장되는 것이 언론자유의 존재 목적이다. 그러나 오늘 대한민국은 언론이 더 많은 자유를 향유할수록 시민 특히 약자의 권리가 침해된다. 언론을 억압하는 권력에는 자유를 헌납하는 반면, 약자들에게는 자유를 남용한다. 특히 자본이나 사주가 통제하는 자유에는 침묵한다.”

이 책을 집필한 학자들은 결론적으로 “언론의 영리를 줄이면 시민의 권익이 늘지만, 자본에 기대어 생존을 선택하면 민주주의가 죽는다”고 본다. 이들은 언론자유가 마치 언론기관에 부여된 우월적 자유인 것처럼 오용되는 도그마를 타파하기 위해 시민의 언론자유와 언론의 언론자유를 상호존중의 관점에서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풀 기자가 취재한 ‘바이든’이라는 말을 기자단이 공동으로 확인하고 나서도 권력이 ‘날리면’이라고 주장하면 어떠한 반박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 오늘의 대한민국 언론의 현주소다. 이런 언론은 각사가 지향하는 편향에 의해 시민사회를 더욱 완강하게 억압하고 폭력적으로 분리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뿐이다.

지난 5월 9일 서울 인사동 관훈클럽의 ‘좋은 기사 연구모임’에서 퓰리처상을 2회 수상한 재미언론인 강형원 기자가 ‘민주주의와 저널리즘’을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먼저 미국 언론의 기본자세에 대한 일화를 소개했다. <LA타임스>의 편집장이 사임했다. 왜냐하면 LA의 ‘스테이플스 센터’ 개관 소식을 알리는 기사와 그곳의 광고가 같은 날 신문에 실렸기 때문이다. <LA타임스>의 한 기자가 이 사태를 조사하기 위해 편집장과 CEO를 직접 취재했고, 그들이 해당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막지 못했음을 폭로하는 분석기사를 내보냈다. 결국 편집장은 직무 유기로 판명돼 사임했다. 한국에서는 광고와 그 업체의 기사가 같은 날짜의 신문에 실리는 것은 ‘당연하기까지’한 상황이다. 이를 놓고 기자가 자기 회사 CEO와 편집장을 취재한다는 것은 꿈꾸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를 폭로하는 기사를 자사 신문에 보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강 기자는 말했다. “이상적인 사회는 언론의 독립에 달려있다. 최근 한국 대통령실은 기자들에게 행사를 공개하기보다는 사진자료 등을 직접 제작해 공개하고 있다. 조명이나 구도가 연출된 사진들이 너무나 많이 공개되고 보도되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일단 대통령실을 통해서 공개된 연출된 사진은 ‘뉴스’라고 할 수 없다. 사진 기자들은 연출하지 않는다. 제가 평생을 바쳐온 포토저널리즘은 언제 어디서 어떤 맥락으로 사건이 벌어졌는지 사진 한 장으로 보여줘야 한다.” 

이 수석이 한국의 언론상황을 ‘(진보진영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말하며 그 때문에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다고 말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지금 한국사회는 객관성이 제멋대로 춤추는 심각한 편향성에 취해있다. 그 자리를 대체한 것은 일방성과 노골적인 막말이다. 대통령은 취임 1주년을 맞고도 기자회견 없이 지나가며, 맘에 드는 언론을 골라 인터뷰를 한다. 그래도 언론에서는 문제 제기를 못한다. 국경없는기자회가 발표한 2023년 세계 언론자유지수(World Press Freedom Index)는 47위로 순위가 밀려나 있다. 문재인 정부(2018~2022년)때 41~43위를 기록했던 지수가 윤석열 정부 출범 2년 차인 올해 전년 대비 4단계 주저앉았다.

이 정부들어 우리사회에서 ‘통일’이라는 말이 사라졌으며, 70년 전에 강대국이 그어놓은 선이 그대로 유지될만큼 우리의 정체성은 희박해져 있다. 우리는 협상국으로 끼지도 못한 정전협정을 바꾸자는 주장은 꺼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어느 한쪽만 보면 안 된다. 한쪽만 보는 지점에 서 있으면 국민통합은 불가능하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은 48.56%,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은 47.83%였다. 지금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이 득표율을 한참 밑돈다. 밀어붙이기 식의 물리력으로는 이 갭을 메울 수 없다. 통합의 묘수를 찾지 못하면 어떤 개혁도, 어떤 치적도 이루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일방적으로 치닫기 불가능한 다원화 선진화를 이루고 있다. 

임순만 작가 · 전 국민일보 편집인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