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업권별 연체율 추이. 자료=금융위원회
금융업권별 연체율 추이. 자료=금융위원회

[이코리아] 금리상승 및 대출규제의 영향으로 꾸준히 감소해온 가계대출이 지난달 증가세로 전환하면서, 가계대출 리스크에 대한 우려도 다시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국내 은행권의 손실흡수능력이 충분하다는 입장이지만, 부실채권비율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금융권 가계대출 잔액은 2천억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월 대비 1.5% 감소한 수준이지만, 지난해 8월 이후 8개월 만에 처음으로 증가세를 기록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금리인상의 영향으로 금융권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해 9월부터 꾸준히 감소해왔는데, 특히 올해 1~3월에는 가계대출 잔액이 총 18.1조원이나 줄어들면서 감소세가 더욱 빨라졌다. 하지만, 4월 들어 감소 중이던 가계대출 규모가 갑자기 증가세로 전환하면서 금융권의 경계심도 높아지는 모양새다. 

실제 한국의 가계대출 규모는 다른 국가와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다. 국제금융협회(IIF)가 발표한 ‘세계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전년 동기 대비 3.3%포인트 하락한 102.2%로 조사 대상 34개국 중 가장 높았다. 이는 가계부채가 경제 규모를 넘어섰다는 뜻으로, 해당 비율이 100%를 넘는 국가는 한국뿐이다. 그 뒤는 홍콩(95.1%), 태국(85.7%), 영국(81.6%), 미국(73.0%), 말레이시아(66.1%), 일본(65.2%), 중국(63.6%) 등의 순으로, 대부분의 국가가 80% 이하였다. 

가계대출 규모가 지나치게 큰데다 금리상승까지 겹치면서 부실 위험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국내은행 가계대출 리스크 예측’ 보고서에서 고정이하여신비율(NPL 비율, 전체 여신 중 3개월 이상 연체된 부실채권 비율)이 지난해 4분기 0.18%에서 올해 말 0.33%까지 두 배가량 급등할 것으로 전망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고정이하 가계여신이 지난해 말 1.7조원에서 올해 말 3조원 수준으로 늘어난다는 뜻이다. 

연체율 또한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3월말 기준 국내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은 0.33%로 전월말 대비 0.03%포인트 하락했으나, 전년 동월말 대비 0.11%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가계대출 중 주택담보대출을 제외한 신용대출 등의 연체율은 전년 동월말 대비 0.28%포인트나 높아졌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리스크가 금융시스템 위기로 전이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금융위는 지난 25일 열린 ‘가계대출 동향 및 건전성 점검회의’에서 “현재의 연체율 수준은 대체로 팬데믹 발생 직전(은행, 여전) 또는 2014∼2016년(상호금융, 저축은행)과 비슷한 수준으로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나 저축은행 사태 등의 시기에 비해서는 양호하다”며 “코로나19 시기 대출이 급증하면서 2021년 사상 최저치로 하락한 연체율이 대출 위축과 함께 과거 수준으로 회귀하는 측면도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금융위는 지난달 가계대출 잔액이 증가세로 전환한 것에 대해 “실수요 중심 정책모기지(특례보금자리론)가 4.7조원 증가했기 때문”이라며 “정책모기지를 제외한 집단·전세·신용 등 은행권 여타 대출과 제2금융권 가계대출은 4월에도 감소세를 지속했다”고 설명했다. 

국내은행의 손실흡수 능력도 부실채권 규모를 상회하고 있다. 실제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3월말 국내은행의 대손충당금 적립률(총대손충당금잔액÷부실채권)은 229.9%로 전분기말 대비 2.7%포인트, 전년 동기 대비 48.3%포인트 증가했다. 대손충당금 잔액은 24조원으로 전년 동기(19.6조원) 대비 4.4조원 늘어났다. 

보고서를 작성한 이지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또한 “2022년 말 국내은행 자기자본이 279조원이고, 2022년 당기순이익이 18조원을 상회하는 점을 고려하면 은행산업 전체의 손실흡수능력은 충분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다만 이 연구위원은 “2012년 이후 급락하던 NPL 비율이 갑자기 급등으로 전환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어느 정도의 기간과 수준까지 진행될 것인지가 문제”라며 “은행권은 거시변수에 대해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NPL 비율 변화도 예의주시하는 한편 가계대출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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