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공질서 확립과 국민 권익 보호를 위한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공질서 확립과 국민 권익 보호를 위한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정부·여당이 야간 집회를 제한하는 내용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 개정을 공식화하면서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당정은 더 이상 입법 공백을 방치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은 헌법이 보장한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당정은 지난 24일 오전 국회에서 공공질서 확립과 국민 권익 보호를 위한 당정협의회를 열고 오전 0시부터 6시까지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하는 내용의 집시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헌법재판소가 지난 2009년 야간 옥외 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제10조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뒤 관련 입법 공백이 계속되고 있다며, “법 집행 능력이 약화된 현장 모습은 더욱 참담하다”고 말했다. 윤 원내대표는 이어 “지난 정권에서 시위를 진압한 경찰에게 책임을 묻는 등 불법시위를 방관케 하는 게 관행이 되면서 경찰은 집회 현장에서 종이호랑이가 됐다”고 덧붙였다.

◇ 야간 집회 금지, 다른 나라는?

야간 옥외집회 금지에 대한 해외 주요국의 법제는 서로 다르다. 프랑스의 경우 23시 이후의 심야 집회를 금지하고 있으며, 러시아 또한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의 집회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야간 옥외집회의 금지시간을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6시까지로 규정했다. 

반면, 영국·독일·일본 등은 야간 옥외집회와 관련해 시간적 제약을 명시한 규정이 없다. 다만 영국의 경우 경찰에게 폭넓은 재량권을 부여해 야간 집회가 심각한 무질서를 초래하거나 타인의 재산에 심대한 손해를 입히면 이를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도 야간 집회에 대한 제한이 원칙적으로 없지만, 주별로 필요에 따라 관련 규정을 만든 경우도 있다. 

◇ 집시법 10조, 헌재는 어떻게 판단했나?

국내에서는 이미 헌법재판소가 야간 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제10조에 대해 지난 2009년과 2014년 두 차례에 걸쳐 각각 헌법불합치, 한정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2009년에는 해 뜨기 전, 해가 진 후 옥외집회를 원천적으로 금지한 집시법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관 9명 중 5명이 위헌 의견을 냈으나, 위헌결정에 필요한 정족수 6명을 채우지 못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당시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민형기·목영준 재판관은 집시법 내 다른 조항에도 공공질서를 보호할 수 있는 보완장치가 있다며, 옥외집회가 금지되는 시간대를 광범위하게 설정한 집시법 10조는 침해최소성의 원칙에 반하고 법익균형성도 갖추지 못한 지나친 제한이라고 지적했다. 

2014년에는 2009년과 달리 6(한정위헌)대 3(전부위헌) 의견으로 ‘한정위헌’ 결정이 내려졌다. 집시법의 야간 옥외집회 금지 조항을 ‘해가 진 후부터 같은 날 24시까지의 시위’에 적용할 경우 위헌이라는 것. 당시 헌재는 다수의견에서 도시화·산업화가 진행된 현대 사회에서는 낮·밤의 생활형태가 명확하게 달라지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전통적 의미의 ‘야간’(일출 전, 일몰 후)은 차별성을 가지지 못하는 광범위하고 가변적인 시간대라고 봤다. 헌재는 이처럼 광범위한 시간대의 옥외집회를 전부 금지하는 것은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한 정도를 넘는 과도한 제한이라며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다만 헌재는 주거와 사생활의 평온을 보장하고 옥외집회를 제한해야 하는 ‘심야’ 시간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할지, 즉 24시 이후의 집회를 금지할 것인지 여부는 입법자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봤다. 집시법 개정을 추진 중인 당정이 자정부터 일출 전까지의 옥외집회를 금지하겠다고 나선 이유도 2014년 헌재의 판단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4일 당정협의회에서 헌재의 판단에 대해 “야간 옥외집회가 무조건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라며 “야간 옥외집회나 시위를 제한하는 건 필요하지만, 시간대가 불명확해 좀 더 구체적인 범위로 제한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윤 원내대표는 이어 “본 의원이 19대, 20대, 21대 국회에서 집회·시위 시간제한을 오전 0시부터 6시까지 규정한 개정안을 계속 발의했지만, 매번 민주당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진척을 이루지 못했다”며 “이는 헌재 판결을 무시함으로써 헌재 기능을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야당을 비판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원내대변인 또한 지난 23일 논평을 내고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는 명확하다.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의 옥외집회 시위를 전면 금지할 경우에는 낮 시간이 짧은 동절기의 평일의 경우, 직장인이나 학생은 사실상 집회에 참가할 수 없기 때문에 옥외집회나 시위가 금지되는 시간대를 적절한 범위로 제한하여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 대변인은 이어 “헌법재판소도 사회의 안녕질서 유지와 사생활의 평온을 보호하기 위해 야간 옥외집회와 시위를 금지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했다”며 “국회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진 지 14년이 지났지만 법 개정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명백한 직무유기이자 법치주의의 부정”이라고 강조했다. 

◇ 야당·시민단체, 집시법 개정 반대 이유는?

반면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은 당정이 추진 중인 집시법 개정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헌재가 자정부터 일출 전까지의 집회에 대해서는 입법자의 재량에 맡긴 것은 맡지만, 2009·2014년 두 차례 모두 집회의 자유에 대한 침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만큼 특정 시간대의 집회를 원천 금지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4일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정의 집시법 개정 추진에 대해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명백한 위헌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민생경제가 파탄 지경이고, 나라 안보가 백척간두다. 이런 위기들이 국민의 삶을 위협하는데, 지금 한가하게 집시법 개정을 논할 때인가”라며 “집회의 자유를 포함한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핵심적인 기본권이다. 이를 제한하려는 어떤 시도도 민주주의에 대한 훼손이고 공격”이라고 강조했다.

참여연대 또한 24일 성명을 내고 당정에 야간 집회 금지 시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참여연대는 “특정시간대의 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던 야간집회금지 조항은 집회 시위에 대한 허가제에 해당하여 이미 지난 2009년 9월 헌법재판소가 위헌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라며 “1962년 집시법 제정부터 48년간 존속했던 야간집회금지 조항이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역사의 장막 뒤로 사라진 후에, 야간집회로 인해 사회적 혼란이 야기되거나 폭력이 발생하여 문제가 되었던 경우는 없었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이어 “밤샘집회나 농성 역시 정당한 집회의 한 방식이며, 집회의 본질적 내용인 집회 방식 선택의 자유”라며 “심야집회 또는 농성이 일부 시민에게 불편을 줄 수도 있지만 그 불편은 민주사회에서 시민들이 관용해야 하는 헌법적 의무인 만큼, 그 자체로 불온한 것처럼 매도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적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에 대한 기본적 이해조차 결여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정이 비판하고 있는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16~17일 총파업 결의대회도 집시법 개정의 근거로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동혁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해당 집회에 대해 “서울 도심 한복판을 쓰레기장과 화장실로 만든 민노총에 대해 국민들은 분노했다. 집회를 빙자한 ‘한밤의 술판’에 국민들은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며 “불법 집회와 불법 시위가 법치를 무너뜨리고 국민들의 삶을 파괴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반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지난 24일 낸 성명에서 “집회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집회의 자유의 본질적인 내용이므로, 이에 대한 침해는 원천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며 “집회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일부 제한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제한될 수 있을 따름”이라고 말했다.

민변은 “여당이 내세우고 있는 개별적인 무질서 행위들은 ‘야간 옥외집회’를 전면적으로 금지하지 않더라도, 이미 존재하는 현행 법규를 통해서도 충분히 규제할 수 있는 것들”이라며 “이는 구체적으로 특정된 무질서한 행위에 대한 개별적 규제를 통해서 예방해야 하는 것이고, 국민의 기본권 행사인 집회의 개최·참가 자체를 사전에 금지할 수 있는 근거로 동원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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