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개원의협의회 김동석 회장, 실손보험대책TF 김승진 위원장 및 위원들이 15일 서울 대한의사협회에서 '재벌 보험사 배불리는 실손보험 간소화법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한개원의협의회 김동석 회장, 실손보험대책TF 김승진 위원장 및 위원들이 15일 서울 대한의사협회에서 '재벌 보험사 배불리는 실손보험 간소화법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보험업계의 숙원이었던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이 입법 절차의 첫 문턱을 넘었다. 여야 간 의견 차이가 없어 입법 논의가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되지만, 의료계·환자단체의 반발과 처벌조항 부재로 인한 실효성 논란이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 16일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실손보험 청구 절차를 간소화하는 내용의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여야 합의로 의결했다. 기존에는 실손보험 가입자가 병원에서 종이서류를 발급받은 뒤 보험사에 직접 제출해야 보험금을 받을 수 있었다. 절차가 복잡해 소액의 보험금에 대해서는 가입자들이 아예 청구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 절차를 개선할 필요성이 줄곧 제기돼왔다.

개정안은 실손보험 청구 절차를 전산화해 금융소비자의 불편을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우선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종이서류는 전자서류로 대체된다. 실손보험가입자가 보험금 청구를 위해 의료기관에 관련 자료를 요청하면, 의료기관→중계기관→보험사의 순으로 해당 자료가 전산망을 통해 전송된다. 병원에서 종이서류를 발급받아 보험사에 제출하는 과정이 생략되는 만큼, 소비자 불편도 해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손보험 청구절차 간소화는 이미 지난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에서 권고한 사항인데다, 지난 대선에서는 윤석열·이재명 당시 대통령 후보가 모두 공약으로 제시한 내용인 만큼 여야 간의 의견 차이도 없다. 게다가 지난해 8월 열린 ‘제1차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는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로 포함돼 정부의 추진 의지도 뚜렷하다. 

문제는 의료계와 환자단체 등의 반발이 거세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실손보험 청구절차가 전산화·간소화되면 보험사가 환자의 자세한 진료정보를 축적해 수익성 극대화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한국루게릭연맹회·한국폐섬유화환우회·보험사에 대응하는 암환우 모임·한국다발성골수종환우회·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 등은 지난 17일 공동 성명을 내고 “이 개정안의 본질은 민간보험사들이 환자들의 내밀한 진료 정보를 모조리 전자적 형태로 받아 축적하고, 이를 이용해 개인들을 특정하는 것”이라며 “(보험사는) 이를 통해 수익성 좋은 보험상품을 개발하고, 질환 가능성이 높은 환자들의 가입을 막고, 기존 가입자들에게는 보험료 차등 인상, 지급 거절을 통해 이윤을 대폭 늘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이어 “청구 간소화는 전혀 본질이 아니다. 청구 간소화는 민간보험사들이 환자들의 내밀한 진료 정보를 축적할 수 없는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보험사들은 이를 한사코 거부했다. 이렇게 하면 보험금 지급만 늘고 자신들에게 이익이 없기 때문”이라며 이번 개정안이 “민간보험사들에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험업법 개정안 논의의 핵심 쟁점이었던 ‘중계기관’ 또한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다. 기존에는 의료기관과 보험사 사이에서 전산체계를 구축·운영할 중계기관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을 활용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하지만 의료계는 공공기관인 심평원이 민간보험사의 업무를 대신하는 것은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 심평원이 공공보험뿐만 아니라 민간보험 관련 자료까지 보유하게 되면 이를 비급여 진료비 관리 수단으로 활용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 등을 이유로 이를 반대해왔다. 

의료계의 반발을 의식한 국회가 선택한 대안은 중계기관을 심평원으로 확정하는 대신, 추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한 것이다. 현재는 보험개발원이 유력한 대안으로 꼽히고 있지만, 의료계는 이마저도 불신하는 모양새다. 보험개발원이 축적한 자료가 언제든지 심평원으로 넘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개정안에 처벌 규정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손보험가입자가 요청할 경우 의료기관은 의무적으로 관련 자료를 보험사에 넘겨야 한다. 하지만 의무를 위반하더라도 의료기관을 처벌할 조항은 이번 개정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도 의료기관이 자료 전송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것. 의료계 반발이 심각한 상황에서 처벌조항까지 추가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보험업법 개정안은 향후 정무위 전체회의,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여야가 의료계와 환자단체, 보험사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실손보험 간소화 입법에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