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405회국회(임시회) 제5차 본회의에서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재적 300인, 재석 260인, 찬성 173인, 반대 44인, 기권 43인으로 통과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405회국회(임시회) 제5차 본회의에서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재적 300인, 재석 260인, 찬성 173인, 반대 44인, 기권 43인으로 통과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벤처기업의 경영권을 보장하기 위해 복수의결권을 도입하는 내용의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하 벤처기업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벤처업계 활성화를 통한 경제효과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편법 승계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된 벤처기업법 개정안은 비상장 벤처기업·스타트업이 1주당 여러 개의 의결권을 가진 복수(차등)의결권 주식을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앞으로 비상장 벤처기업이 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창업자 의결권 비중이 30% 이하로 하락하게 되면, 창업주에게 1주당 최대 10개의 의결권을 갖는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복수의결권이 상법상 1주 1의결권 원칙에 위배되는 데다, 자칫 재벌·대기업의 경영권 강화 및 편법 승계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어 입법 논의는 오랫동안 지연돼왔다. 이 때문에,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개정안에는 복수의결권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도 포함됐다. 

우선 복수의결권 주식 관련 정관 개정 및 발행은 주주총회에서 발행주식 총수의 4분의 3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가능하다. 창업주의 사적 이해관계와 관련된 안건, 복수의결권 주식 존속기한에 대한 정관을 변경하려는 경우 등에 대해서는 복수의결권 주식이라해도 의결권이 1주당 하나로 제한된다. 또한 발행된 복수의결권 주식의 존속기한은 최대 10년으로 상장 시 3년까지 단축되며, 존속기한이 지나면 보통주로 전환되도록 했다. 

아울러 이번 개정안은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한 기업이 관련 내용을 공시하고 중요사항을 중소벤처기업부에 보고하도록 했다. 또한, 중기부가 복수의결권 관련 위반 혐의를 직권 조사할 수 있도록 했으며, 허위발행 시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 형사처벌이 가능한 법적 근거도 마련했다. 

◇ 복수의결권 도입 효과, GDP 0.63% 성장?

벤처업계는 투자유치과정에서 창업주 지분이 희석돼 경영권이 보장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복수의결권 도입이 필수라고 주장해왔다. 2년 4개월의 오랜 입법 논의를 거쳐 숙원이 해결된 만큼, 벤처업계는 이번 벤처기업법 개정안 국회 통과에 높은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혁신벤처단체협의회는 이날 논평을 내고 해당 개정안에 대해 “비상장벤처기업 창업자가 외부자본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지분비율 희석으로 인한 경영권 위협과 적대적 인수합병(M&A) 걱정 없이 안정적으로 경영 활동을 지속하는 데 꼭 필요한 법안”이라며 “이번에 국회가 복수의결권 제도를 통과시킨 것은 대한민국 경제위기 극복과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벤처기업의 역할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 했음을 의미한다”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복수의결권(1주당 2개 의결권) 도입에 따른 주요 파급효과. 자료=파이터치연구원
복수의결권(1주당 2개 의결권) 도입에 따른 주요 파급효과. 자료=파이터치연구원

복수의결권 도입에 따른 벤처업계 활성화로 경제성장이 기대된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됐다. 파이터치연구원은 지난 2일 발표한 ‘혁신기업에 복수의결권 도입 효과’ 보고서에서 “혁신기업에 복수의결권(1주당 2개 의결권)을 도입하면, 실질국내총생산(GDP), 총실질자본, 총실질소비, 실질설비투자가 각각 0.63%(11.7조원), 1.23%(93.7조원), 1.23%(10.5조원), 1.23%(2.1조원) 증가한다”고 말했다. 복수의결권 도입으로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혁신기업이 늘어나면 노동·자본수요가 늘어나 임금·자본공급량이 증가하면서 소비도 촉진된다는 것. 

보고서는 “복수의결권을 도입하면, 실질GDP와 실질설비투자가 증가하면서 기업의 총혁신능력이 향상된다. 더구나 경제 전체 구성원의 편익을 나타내는 사회후생도 늘어난다”며 “복수의결권을 도입하면, 대리인 문제가 발생되거나 주주의 가치가 훼손되는 문제점이 생길지 모르나 본 연구의 거시경제적 관점에서 분석해보면, 적어도 혁신기업에 복수의결권을 도입하는 것은 국가 경제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고 강조했다. 

◇ 시민단체, “복수의결권 규제 폐지 후 대기업 확대 적용 우려...”

반면 복수의결권 도입을 반대해온 시민단체들은 벤처기업법 개정안 국회 통과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무엇보다 악용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추가된 규제 사항이 향후 기업들의 요구로 폐지되면서, 복수의결권이 대기업까지 확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크다. 참여연대는 지난달 28일 논평을 내고 개정안에 포함된 규제조항에 대해 “이러한 조건들로 인해 법 자체가 이종 혼용의 법률이 되어버렸으며 향후 이런 규제를 완화 또는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이 빗발칠 것이 자명하다”며 “벤처투자 활성화와 성장을 보장하기보다는 대주주의 지배력 공고화와 소수주주 및 투자자의 권리 침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복수의결권은 벤처기업 전 과정에 걸쳐 필요하다기보다는 이미 상당히 성장해 기업공개(IPO)를 앞둔 유니콘기업 수준의 회사 대주주가 상장시 지분희석으로 지배력을 상실하는 것을 막는 의도로 활용될 수 있는 제도”라며 “이 제도가 창업 초기의 혁신가가 아니라 상당한 규모를 갖춘 회사의 지배주주에게 특혜를 제공하는 법이니만큼 재벌을 포함해 다른 기업들과의 형평성 논란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곧 벤처기업 외 다른 회사에도 복수의결권 도입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복수의결권이 벤처업계 활성화와 무관하다는 반론도 나온다. 경제개혁연대 또한 지난달 27일 논평을 통해 “복수의결권주식은 스타트업 단계에서 발행되기보다는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하고 난 다음에 상장을 앞둔 시점이 되어서야 비로소 발행되어 왔다”며 “다시 말해, 복수의결권주식은 벤처활성화의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일 뿐”이라고 말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어 “상장회사에게도 복수의결권주식의 발행을 허용해 달라는 요구는 더 거세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복수의결권주식이 보통주로 강제 전환되어 지배권을 잃게 될 창업자들은 일몰조항 삭제를 위해 결사적으로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로비할 것이 예견된다”며 “우리나라의 정치경제 환경을 고려했을 때, 현재 개정안에 있는 안전장치들은 추풍낙엽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개인투자자들의 반발도 거세다.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는 지난달 20일 보도자료를 통해 “법으로 보장받아야 할 소액주주의 권리가 지배주주에 의해 훼손되는 경우가 많은 상태에서 일부 벤처기업 지배주주에게 특혜를 주는 법안이 통과된다면 소액주주 권리는 더욱 침해될 소지가 크다”며 복수의결권 도입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오랜 입법 논의 끝에 도입된 복수의결권이 국내 벤처업계 활성화를 위한 마중물이 될지, 아니면 시민단체와 개인투자자들의 우려가 현실화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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