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이코리아] 윤석열 대통령이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가능성을 언급해 논란이 되고 있다. 언론도 윤 대통령 발언을 두고 다양한 측면에서 외교적 영향을 전망하며 엇갈린 평가를 내리고 있다. 

로이터통신이 지난 19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만약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나 대량할살, 또는 중대한 전쟁법 위반과 같이 국제사회가 용납하기 어려운 사안이 발생한다면, 우리가 인도주의적 지원이나 재정적인 지원만 주장하기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국제법적이든 국내법이든, 불법적인 침략을 받은 나라를 지키고 회복시키기 위한 지원을 제한할 수는 없다”며 “하지만 전쟁 당사국과의 관계 및 전쟁의 진행 상황을 고려해 가장 적절한 방식을 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언론, 러시아 반발과 대통령실 대응에 주목

윤 대통령의 발언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가능성을 암시한 것으로 해석되면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자, 언론에서도 해당 발언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뉴스 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서 ‘윤석열’과 ‘우크라이나’를 검색하자, 로이터통신이 윤 대통령과의 인터뷰를 보도한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642건의 기사가 보도된 것으로 집계됐다. 

윤 대통령의 로이터통신 인터뷰 관련 기사에서 가장 자주 등장한 연관키워드는 역시 ‘러시아’였다. 러시아가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면서 언론도 해당 소식을 앞다퉈 보도했기 때문. 실제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러시아 대통령실) 대변인은 지난 19일(현지시간)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무기 공급을 시작한다는 것은 이 전쟁에 일정 부분 개입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러시아 외무부 또한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에 대한 어떠한 무기 제공도 반(反)러시아 적대 행위로 간주하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실’도 관련 기사에 높은 빈도로 등장한 연관키워드였다. 이는 대통령실이 로이터통신의 윤 대통령 인터뷰 보도 이후 러시아의 반발이 거세지자 대응에 나섰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19일 대변인 명의의 입장문을 내고 무기 지원은 전쟁 개입이라는 러시아 측의 반발에 대해 “윤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우리 정부가 한러 관계를 고려해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점과 함께,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라든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대량 학살 등의 사안이 발생한다면 우크라이나를 어떻게 지원할지 검토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며 “윤석열 대통령의 로이터통신 인터뷰 내용을 정확히 읽어볼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또한, 20일에는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용산 청사 브리핑에서 “대통령 말씀은 상식적이고 원론적인 대답이었다”며 “러시아 당국이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해서 코멘트하게 되는데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향후 러시아의 행동에 달려있다고 거꾸로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로이터통신 인터뷰와 관련해 국내 언론에서 19~21일 보도한 기사의 연관키워드. 자료=빅카인즈
윤석열 대통령의 로이터통신 인터뷰와 관련해 국내 언론에서 19~21일 보도한 기사의 연관키워드. 자료=빅카인즈

◇ 언론, “尹, 민감한 사안에 섣부른 발언” vs “우리도 6·25 때 도움받은 나라”

윤 대통령의 로이터통신 인터뷰에 대한 언론의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일부 매체는 윤 대통령의 발언이 외교·안보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는 반면, 윤 대통령 발언을 비판하는 측이 오히려 침략국인 러시아의 편을 들고 있다며 반박하는 매체도 적지 않다. 

동아일보는 윤 대통령이 외교적 사안의 민감성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동아일보는 21일 사설에서 “대통령실 측 설명대로 윤 대통령 발언은 상식적이고 원론적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대외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민감한 사안에 대해 그런 발언을 굳이 했어야 했는지 아쉬움이 남는다”며 “대통령의 발언이 갖는 무게를 생각했다면 원론적 발언이라도 신중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정부가 직접 지원 가능성을 열어둔 것은 내주 윤 대통령의 미국 방문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크라이나 문제는 피하기 어려운 의제일 것”이라며 “북핵에 맞선 확장억제 강화를 위해 우리의 기여를 보여줄 필요도 있다”고 윤 대통령의 발언 의도를 분석했다.

동아일보는 이어 “그렇다고 직접 전쟁에까지 끼어들어 한-러 관계를 위험에 빠뜨려야 하는지는 냉철히 판단해야 한다”며 “국제적 보편 가치도, 동맹으로서의 기여도 중요하지만 우리 교민과 기업의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신중하고 정교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향신문은 살상무기 수출은 불가하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경향신문은 19일 사설에서 “한국이 ‘살인을 수출하는 국가’ 대열에 합류하는 것을 반대한다. 더 많은 무기 투입은 더 많은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평화국가로서 살상무기 수출은 안 된다’는 원칙적 입장을 쉽게 포기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이어 “윤 대통령은 방미를 앞두고 미국 도청 문제에 저자세를 취하지만 정작 필요한 건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최근 발표한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에 여전히 한국산 제품은 제외돼 있다”며 “미국 방문은 국가 목표를 달성하는 한 수단이다. 우리가 한·미 정상회담 때까지만 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한·러 관계가 더욱 나빠질 경우 남북관계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정부가 재빨리 수습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일보는 21일 사설에서 “정부가 ‘전략적 명확성’으로 외교안보 노선을 전환한 터라 일부 국가와 전에 없던 갈등을 빚는 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그 대상이 러시아라면 다르다.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적으로 고립됐지만 한반도와 동아시아 안보에 미치는 영향력은 여전한 나라”라고 말했다. 

한국일보는 이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전 수행으로 여력이 없을 거란 관측도 있지만, 보복 위협이 현실화한다면 상황이 간단치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군사강국 러시아가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를 돕는다면 우리에게 치명상”이라며 “한때 동맹이던 북러 관계를 견제해온 30년 북방외교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교역 규모가 크진 않지만 에너지, 원자재, 수산물 등 핵심 품목의 수입 의존도가 높은 현실도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조선일보는 윤 대통령 발언에 대한 비판이 지나치다는 입장이다. 조선일보는 21일 사설에서 “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는 러시아와 맺은 관계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다른 나라는 몰라도 대한민국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이런 이익 관점에서만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우리나라가 6.25 전쟁 당시 다수 국가의 도움을 받은 점을 언급하며 “만약 그때 이 16국의 야당들이 우리 민주당처럼 들고일어나 ‘그런 알지도 못하는 나라를 왜 돕느냐’고 반대했으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국제사회의 지원과 희생 위에 나라를 세운 대한민국이 같은 처지가 된 가련한 나라와 그 국민을 위해 어떤 희생도 하지 않으려 하면서 주판알만 튕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직접 무기 지원을 않더라도 ‘자살골’이니 ‘철회하라’는 등의 야박하고 매몰찬 말이라도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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