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정부 역할 ‘외면’하고 ‘복지 절벽’ 초래하는 재정준칙 법제화 문제 긴급 좌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정부 역할 ‘외면’하고 ‘복지 절벽’ 초래하는 재정준칙 법제화 문제 긴급 좌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재정준칙 법제화 논의가 결국 뒤로 미뤄졌다. 국가재정의 건전성을 위해 재정준칙을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과 소극적 재정정책으로 복지 절벽이 우려된다는 입장이 뚜렷하게 맞부딪히고 있는 만큼 입법 논의가 속도를 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에서는 예비타당성조사 기준을 완화하는 내용의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의결됐다. 개정안은 사회간접자본(SOC)·국가연구개발(R&D)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 대상 기준금액을 ‘총사업비 500억원 및 국가재정지원 규모 300억원 이상’에서 ‘총사업비 1천억원 및 국가재정지원 규모 500억원 이상’으로 상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반면 예타 기준 완화와 함께 처리하기로 한 재정준칙 도입 논의는 결국 미뤄졌다. 재정준칙은 재정수지 및 국가채무 등의 재정지표에 대해 구체적인 목표를 법제화한 재정운용정책을 말한다. 국가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재정지표를 일정 수준 이내로 관리하기 위한 규범으로, 문재인 정부 시절인 지난 2020년부터 도입 논의가 이어져왔다. 

윤석열 대통령 또한 취임 1년 내 재정준칙을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바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7월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이내로 제한하고, 국가채무비율이 60%를 넘으면 적자 한도를 2% 이내로 축소하는 등 문재인 정부안(통합재정수지 3%, 국가채무비율 GDP 대비 60%)보다 강화된 내용의 재정준칙을 발표한 바 있다. 

이날 기재위 경제재정소위에서 예타 기준 완화는 통과되고 재정준칙 도입은 무산되면서 국가재정이 남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예타 기준이 완화돼 총 사업비 1천억원 이하의 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게 된 만큼, 국가재정이 낭비될 위험도 함께 커지게 된 것. 특히 총선이 1년 남은 상황에서 지역구 표심을 관리하기 위해 정치권이 선심성 공약을 남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재정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재정준칙도 함께 도입하기로 했지만, 여야는 결국 논의를 미루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재정준칙 도입에 대한 찬성·반대 측이 각자 뚜렷한 근거를 가지고 있어 합의점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실제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재정준칙 관련 공청회에서는 찬반 의견이 뚜렷하게 엇갈렸다. 찬성 측은 가파른 국가채무 증가율을 고려할 때 국가재정의 건전성 관리를 위한 재정준칙 법제화하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공청회에 참석한 김태일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적자누적과 채무증가는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며, 이는 세대 간 공평성 문제뿐만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문제”라며 “재정준칙은 본원통화 창출에 대한 불안을 제거해 물가안정 등 거시경제 안정성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비율 증가 속도는 다른 국가에 비해 빠른 편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일반정부 부채(D2) 비율은 전년 대비 2.8%포인트 상승했으며, 공공부문 부채(D3) 비율은 전년 대비 2.9%포인트 증가했다. 기재부는 “최근 부채 증가추세 등으로 국제비교로 활용되는 일반정부 부채(D2) 비율이 주요 선진국의 비기축 통화국 평균(56.5%) 수준에 근접했다”고 설명했다. 한국경제연구원 또한 2012~2023년 한국 국가채무비율(D2)의 연평균 증가율은 3.2%로 OECD 평균인 1.8%보다 높다는 분석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고령화·저출산 추세를 고려하면 국가채무 비율 증가 속도는 더욱 빨라질 가능성도 있다. 

반면, 반대 측은 재정준칙이 도입되면 재정정책이 경직되면서 공공투자 및 복지지출이 줄어들 것을 우려하고 있다. 나원준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이날 공청회에서 “공공투자의 혜택은 미래 세대가 향유하므로 오늘 정부가 빚을 내어 전략 과제에 투자하고 미래의 수혜 세대가 이자를 부담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며 “거꾸로 만약 기계적인 재정준칙 때문에 정부가 빚을 못 내고 공공투자의 재원을 당장의 세수로 한정하면, 이는 공공투자 자체를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세대 간의 공정성도 저해하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나 교수는 이어 “재정준칙이 탈탄소, 교육, 보건의료, 인프라 확충을 비롯해 폭넓게 정의된 공공투자를 가로막아서는 안 될 일”이라며 “사회적으로 필요한 공공투자를 재정준칙이 막아 나서는 것은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금리상승에 따른 가계대출 리스크 확대 및 경기둔화를 감안하면 재정정책의 역할을 축소시키는 재정준칙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유호림 강남대학교 세무학과 교수는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 소속 기재위 경제재정소위 위원 및 참여연대, 경실련 주최로 열린 재정준칙 법제화 관련 좌담회에서 “재정준칙 법제화가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서 적극적인 정부의 개입과 대응을 권고하는 OECD의 정책보고서와 상반된 것”이라며 “현재까지 코로나 팬데믹으로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국내 경제상황에서 결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이어 “세계 주요국들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부터 자국의 경제와 산업 보호를 이유로 정부주도 하에 경제전략을 수립했고, 이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취약계층에 대한 정부지출과 조세지원을 확대하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가채무 비율이 비교적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비슷한 경제 수준의 국가들보다 낮은 수준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세은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이날 좌담회에서 “2020년 기준 GDP 대비 총부채가 선진국 평균이 123.2%인데 비해 한국은 48.7%”라며 한국의 부채 상황은 선진국에 비해 안정적이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이어 “국내 상황에서 정부 채무가 증가하는 이유 중 우려해야 할 지점은 감세”라며 “기재부가 정부채무를 과장하도록 허용하는 국가재정법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정부는 재정준칙 도입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1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주요국 대부분 재정준칙을 도입했다고 언급하며 “국회에서 (재정준칙 법제화 논의를) 표류시키고 결론을 못 내주고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실제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106개 국가가 재정준책을 시행하고 있다. OECD 회원국 중 재정준칙을 운영하지 않는 국가는 한국과 터키뿐이다. 

하지만 조급한 정부의 입장과 달리 재정준칙 법제화 관련 여야 합의는 요원한 상황이다. 게다가 야당은 정부가 구매하는 재화·서비스의 10%를 사회적 기업에서 구입하도록 하는 내용의 사회적경제법 통과를 재정준칙 법제화의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여당은 이미 사회적 기업 지원을 위한 개별법들이 존재하는 데다, 공공의 비대화 및 비효율 문제가 악화될 수 있다며 사회적경제법에 반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5월 임시국회에서 재정준칙 법제화 논의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여야가 재정준칙을 둘러싼 이견을 봉합하고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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