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물가지수 등락률 추이. 자료=통계청
소비자물가지수 등락률 추이. 자료=통계청

[이코리아] 물가 상승세가 둔화하면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재차 동결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유가가 다시 상승세로 돌아선 데다 근원물가는 여전히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어, 한은 결정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통계청이 지난 4일 발표한 ‘2023년 3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0.56으로 전년 동월 대비 4.2% 상승했다. 이는 전월 상승률(4.8%)보다 0.6%포인트 낮은 것으로, 지난해 3월(4.1%)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 7월 한때 6.3%까지 치솟았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이후 둔화하기 시작해 올해 2월 4%대로 진입했다. 3월도 둔화세가 계속되면서 금리인상의 가장 큰 명분이었던 ‘물가상승’에 대한 우려가 완화된 만큼, 이달 열릴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다시 기준금리가 동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예상도 나온다. 

실제 금통위는 지난 2월 23일 열린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기존 3.50%로 동결한 바 있다. 당시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기준금리) 수준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물가 경로로 가느냐를 확인해 보기 위해서 (동결)한 것”이라며 “경기나 금융시장 안정도 고려하지만, 디스인플레이션(물가 둔화) 경로상의 효과를 지켜보면서 가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물가상승폭이 줄어들면서 통화정책 효과를 지켜볼 여유도 늘어난 만큼, 금통위가 2차례 연속 동결을 선택할 가능성도 작지 않다. 

게다가 미국 고용시장이 냉각 분위기를 띠면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동결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미국 노동부의 2월 구인·이직보고서(JOLTS)에 따르면, 2월 구인건수는 993만건으로 전월 대비 63만2000건 감소했다. 구인건수가 1000만건 이하로 떨어진 것은 지난 2021년 5월 이후 처음이다. 실업자 1명당 구인건수 비율도 1월 1.9명에서 2월 1.7명으로 낮아졌다. 아직 코로나19 이전 수준(1.2명)보다는 높지만, 물가상승 원인 중 하나로 꼽혔던 고용시장의 열기가 식고 있는 만큼 연준도 내달 열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변수는 유가다. 석유수출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플러스’(OPEC+)가 지난 2일(현지시간) 하루 116만 배럴 규모의 자발적 추가 감산을 예고하면서 유가가 상승세로 돌아선 것.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OPEC+의 결정에 대해 “세계 경제 성장에 긍정적이지 않고, 인플레이션이 이미 높은 상황에서 불확실성과 부담을 증가시켰다”며 비판했다. 석유 감산이 물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경우 연준도 쉽게 금리 동결을 선언하기는 어렵다. 

국내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둔화되고 있지만, 근원물가의 상승세는 유지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근원물가지수는 유가 및 날씨 등의 영향을 크게 받아 변동성이 큰 식료품, 에너지 등의 품목을 제외해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지표다. 실제 지난 3월 근원물가 지표인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와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 상승률은 각각 4.8%, 4.0%로 전월과 같은 수준이었다. 

증권가에서는 여러 변수에도 불구하고 한은이 한 번 더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최근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 경계감이 높아졌지만 글로벌 금융 불안과 경기 하강 우려 등에 따라 금리 인상보다는 금리동결기를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 연구원은 “여전히 근원 물가의 하락폭은 제한된다는 점에서 금통위원들이 물가에 대한 경계감을 유지하는지가 관건”이라며 “지난 회의 의사록을 통해 3명의 위원은 물가 경계감 속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언급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회의에서도 물가에 대한 경계감을 언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 연구원은 이어 “이번 OPEC+ 결정이 국제유가 급등을 초래할 요인은 아니라고 판단하나, 수요 둔화에도 70~80 달러 수준의 유가가 유지된다는 점에서 인플레 경계감이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며 “이를 감안할 때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동결하나 인상 소수의견이 1명 정도 등장하면서 매파적인 스탠스를 유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