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령별 보이스피싱 피해금액 현황.(단위: 억 원, %) 자료=금융감독원
연령별 보이스피싱 피해금액 현황.(단위: 억 원, %) 자료=금융감독원

[이코리아] 비대면 금융거래가 일상화되면서 모바일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 대상 금융사기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고령층 금융사기 방지를 위한 법 제정 등 다양한 대책을 추진 중인 만큼, 국내에서도 관련 논의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보영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지난 3일 ‘주요국의 고령층 금융사기 피해 방지 노력’ 보고서를 내고 “모바일 금융서비스 이용 증가와 함께 고령층을 대상으로 메신저피싱 등 관련 금융사기가 급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메신저피싱은 카카오톡 등 타인의 메신저 아이디를 도용해, 등록된 지인에게 메시지를 보내 금전을 편취하는 범죄수법을 말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최근 보이스피싱 관련 피해는 점차 줄어들고 있는 반면, 메신저피싱 피해규모는 급격히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21년 보이스피싱 피해금액은 1682억원으로 전년 대비 671억원(-28.5%) 줄어들었지만, 메신저피싱 피해금액은 991억원으로 오히려 같은 기간 618억원(+167.5%) 늘어났다. 메신저피싱 피해가 전체 보이스피싱 피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9년 5.1%에서 2021년 58.9%로 급증했다. 

비대면채널을 이용한 메신저피싱에 가장 취약한 잠재적 피해자는 금융취약계층으로 분류되는 고령층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60대 이상 고령층의 보이스피싱 피해금액은 614억원으로 전체 피해금액 중 37%를 차지했다. 피해규모 자체는 전체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지만, 고령층 비중은 2019년 26.5%에서 지난해 37%로 크게 늘어났다. 비대면 금융거래가 일상화되면서, 그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으로 금융사기 피해가 집중되고 있다는 것. 

김 선임연구원은 “고령층의 스마트폰 보급률 증가 등의 영향으로 피해금액 중 60대 이상의 비중이 2019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주로 가족, 지인, 특히 자녀를 사칭한 범죄자가 피해자에게 휴대폰 파손, 신용카드 분실 등 불가피한 상황을 알리며 부모의 이성적 판단을 와해시켜 악성링크에 연결 유도한 후 개인정보를 탈취하는 방법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해외 주요국들은 이미 고령층 금융사기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관련법 제정 등 다방면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지난 2018년 ‘고령자안전법’(Senior Safe Act)을 제정해 65세 이상 고령자의 금융착취가 의심될 때는 금융기관 및 직원 등이 고령자 동의 없이 금융당국에 의심사례를 보고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지난해에는 ‘사기 및 스캠 방지법안’(Fraud and Scam Reduction Act)」이 하원을 통과했는데, 이 법안은 미국 연방공정거래위원회, 재무부, 법무부 등 관계 부처장과 소비자단체 대표 등으로 고령층 사기방지 자문그룹을 구성하고 고령층 보호 정책을 수립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찍 고령화 사회에 들어선 일본 또한 지난 2005년 제1기 소비자기본계획 수립 당시부터 고령층 관련 정책을 별도로 추진·확대해왔다. 지난 2019년에는 ‘오레오레 사기 등 대책플랜’을 발표하고 고령층 대상 특수사기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한편 ▲자동녹음기능이 탑재된 보이스피싱 예방 전화기 구입비 보조 ▲고령자 고액 출금 시 경찰 통보 ▲고령자 ATM 인출한도액 축소 등 고령층을 위한 맞춤형 사기방지 대책을 실시했다. 

국내에서도 고령층 금융사기 방지를 위한 다양한 대책이 추진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020년 고령층 금융접근성 제고, 고령층 맞춤 금융상품 개발, 고령층 금융사기 대응 강화 등의 내용이 담긴 ‘고령친화 금융환경 조성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금융위는 고령층 금융착취 감시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노인금융피해방지법’(가칭)을 제정해 고령층 금융사기 방지를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난해에는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함께 ‘고령자 친화적 모바일 금융앱 구성지침(가이드라인)’을 자율규제로 신설하기도 했다. 

 

'2022 금융이해력 조사'에 따른 연령별 금융이해력 점수 분포. 자료=한국은행
'2022 금융이해력 조사'에 따른 연령별 금융이해력 점수 분포. 자료=한국은행

법 제정 및 제도 개선뿐만 아니라, 고령층에 대한 금융 교육도 병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고령층의 낮은 금융이해도는 금융사기 피해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이 실시한 ‘2022 전국민 금융이해력 조사’ 결과에 따르면, 70대 이상의 금융이해력 점수는 61.1점으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낮았으며, 그 다음도 60대(64.4점)였다. 30대가 69점으로 가장 높은 금융이해도를 보였으며, 연령이 높아질수록 이해도가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금융당국도 고령층의 금융이해도 제고를 위해 금융교육 계획을 추진 중이다. 금융위는 지난해 12월 제2차 금융교육협의회를 개최하고 생애주기별 맞춤형 금융교육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가 밝힌 금융교육 추진 계획에는 ▲보이스피싱 등 금융피해 예방교육 ▲‘착오송금 반환제도’, ‘상속채무 해결방법’, ‘채무자구제제도’ 등 신용교육 ▲키오스크 이용법, 온라인·모바일 뱅킹 활용법 등 디지털역량 강화 교육 등 고령층에 특화된 교육 내용이 담겼다. 고령층을 금융사기 피해에서 보호하기 위한 금융당국의 노력이 효과를 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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