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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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 정부가 은행권 과점 폐해를 지적하며 경쟁 촉진을 통해 효율성을 제고하겠다고 나섰지만, 해외에서 시작된 은행 위기로 인해 제동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경쟁 촉진을 위해 지나치게 규제를 완화할 경우 오히려 은행권의 공공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김동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발표한 ‘경쟁제한적 금융규제 완화를 위한 제언’에서 “경쟁제한적 금융규제 완화를 통해 효율성을 제고하는 데에만 신경을 쓰다 보면 때로는 안정성이나 공정성이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출범 이후 과도한 이자수익과 성과급, 불투명한 지배구조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은행권을 강도 높게 비판해왔다. 최근에는 은행권의 과점체제가 이러한 문제의 원인이라고 지목하며 경쟁 촉진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열린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우리 은행 산업의 과점 폐해가 크다”고 강조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금융·통신은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고 정부에 의해 과점 형태가 유지되고 있다”며 실질적인 경쟁시스템 강화를 위해 조치를 마련하라고 당부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지난 15일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 운영계획’을 발표했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은행권·학계·법조계·소비자 전문가로 TF를 구성하고 ▲은행권 경쟁촉진 및 구조개선 ▲성과급‧퇴직금 등 보수체계 ▲손실흡수능력 제고 ▲비이자이익 비중 확대 ▲고정금리 비중 확대 등 금리체계 개선 ▲사회공헌 활성화 등 6개 과제별 실무작업반을 함께 운영하겠다는 것.

금융당국은 지난달 말까지 전체회의 2차례, 실무작업반 회의 4차례를 열고 예대금리차 공시확대 방안을 비롯해 스몰라이센스, 소규모특화은행 도입, 인터넷전문은행·지방은행·시중은행 추가 인가, 비은행 금융사의 지급결제 허용 등의 방안을 논의했다. 

문제는 TF가 구성돼 논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미국·유럽발 은행 위기가 터졌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실리콘밸리은행(SVB)을 포함해 세 곳의 은행이 일주일 만에 문을 닫는 한편, 유럽에서는 크레딧스위스(CS)가 유동성 위기에 몰려 UBS에 인수됐다. 최근에는 독일 최대 은행인 도이치방크까지 위기설에 휩싸이는 등 은행 위기로 인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은 계속 확대되는 추세다. 

특히 SVB는 지난달 3일 열린 1차 실무작업반 회의에서 벤치마킹 대상으로 거론된 곳이다. 당시 TF는 은행이 수행 중인 업무범위를 세분화해 중소기업, 소상공인, 벤처기업대출 전문은행, 주택담보대출, 지급결제 특화은행, 중‧저신용자 전문은행 등의 설립을 추진하자는 내용이 논의됐다. 이 자리에서 SVB는 별도 인가단위에 따른 특화은행은 아니지만, 사실상 고위험 벤처기업만을 고객으로 상대하는 특화은행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소개됐다. 

하지만 SVB 은행이 금리상승의 여파로 유동성 위기에 몰려 무너지자 은행권 경쟁 촉진이라는 정부의 금융정책 기조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실제 SVB가 폐쇄된 뒤인 지난달 15일 열린 3차 실무작업반 회의에서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번 TF는 금융안정과 소비자 보호를 전제로 은행권내 실질적 경쟁을 촉진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은행권 경쟁 촉진을 위해 과도하게 기존 규제를 허물 경우, 자칫 은행의 공공성과 안정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금융시장의 효율성은 금융시장이 완전시장이라는 전제 하에서 시장에 참여하는 모든 경제주체 간 자유로운 경쟁이 보장될 때 자동적으로 달성된다”면서도 “현실적으로 완전한 금융시장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경제주체 간 자유경쟁은 금융시장의 효율성을 보장해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효율성과 안정성, 효율성과 공정성은 상충(trade-off)의 여지가 있는 바, 경쟁제한적 금융규제 완화를 통해 효율성을 제고하는 데에만 신경을 쓰다 보면 때로는 안정성이나 공정성이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빅테크 등 비금융기업이 소비자 편의를 증진시킨다는 명분으로 결제망에 직접 참여하거나 금융플랫폼을 장악해 갈 경우에는 금융시장의 안정성이 위협받을 가능성이 있다”며 “또한 은행보다 소유· 지배구조 규제나 금융감독이 느슨한 비은행이나 비금융회사에게 은행업무를 허용해 주는 등 업무영역 규제를 완화해주면 이들은 이러한 규제차익을 이용하여 금융시장의 공정성을 훼손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TF 논의에서도 관련 기관에서 은행권 경쟁 촉진 방안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달 29일 열린 2차 TF 회의에서는 카드·보험·증권 등 비은행 금융사에 대한 지급결제 업무 허용 방안이 논의됐으나, 한국은행은 “전 세계에서 엄격한 결제리스크 관리가 담보되지 않은 채 비은행권에 소액결제시스템 참가를 전면 허용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며 “비은행권의 소액결제시스템 참가 확대시 고객이 체감하는 지급서비스 편의 증진 효과는 미미한 반면, 지급결제시스템 안전성은 은행의 대행결제 금액 급증, 디지털 런 발생 위험 증대 등에 따라 큰 폭 저하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밝혔다.

은행권 경쟁 심화가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은행이 지난 2016년 발표한 ‘은행산업의 경쟁도 현황 및 금융안정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은행 산업의 경쟁이 심화될수록 은행의 무수익여신비율과 부도확률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은 은행 대출시장의 경쟁이 확대될 경우 대출을 주요영업 기반으로 하는 우리나라 은행들의 건전성과 수익성에 부정적 영향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은행권 경쟁 촉진을 추진하더라도 은행의 공공성을 해치지 않도록 세심한 조정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경쟁제한적 금융규제를 완화할 경우에는 금융시장의 공정성과 안정성을 저해하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업무나 행위를 적절히 규제·감독할 필요가 있다”며 “업무범위에 관한 경쟁제한적 금융규제 완화로 인해 금융시장의 공정성과 안정성이 저해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업권별 고유업무의 위탁을 금지하거나, 부수업무·겸영업무 운영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오는 12일 5차 실무작업반 회의를 열고 은행의 사회공헌 활성화 방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해외에서 시작된 은행 위기로 제동이 걸린 은행권 경쟁 촉진 논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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